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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업에 몰두하는 김미경 옥상화가 ⓒ 김미경 화가
 
(*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 옥상 저 옥상을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고, 옥상의 전경을 한 작품에 많게는 100시간 이상 들여 그릴 정도로 애정을 쏟은 덕분에 2015년에는 첫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그림이 한 점이라도 팔릴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그림은 매 전시 때마다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저는 굉장히 서구적인 그림을 그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어요. 근데 여기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이런 그림이 나온 거예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멋있다!'는 평가를 해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그건 내가 아니다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거나, '따뜻한 감성이 살아있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제 그림의 의도가 제대로 읽힌 것 같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죠."
  
오늘도 걷는다2, 2014년, 펜, 29.4x84cm ⓒ 김미경 화가
     
서촌의 다양한 그림 속 배경에는 청와대가 등장하는데, 서촌 옥상도들은 청와대가 너무 잘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지 못할 뻔했던 일화도 있다. 보안상 청와대 근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국민신문고에 공공장소에 앉아 그림 그릴 권리를 주장하는 민원을 넣으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결국 얼마 뒤에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그림을 그려도 좋다는 허가 공문을 받은 후에야 당당하게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제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거나, 특종감을 내놓아야 한다는 습성이 남아 있어요. 영추문 앞 보도블록 앞에서 낚시 의자를 놓고 앉아서 며칠을 그리는데 경찰이 오더라고요. 그때 '이거 특종이구나!' 하는 촉이 왔죠. 경찰이 제지하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를 그린 적이 없던 거예요. 새벽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다 화가로서 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나 들라면, '여기서 그림 그릴 권리는 찾았구나!' 하는 거였어요."

비록 같은 곳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 맞닥트리는 풍경은 생소할 때가 있다. 그녀의 시선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습 자체도 계속 변해온 까닭이다.

"변화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요"
 
옥인동 47번지, 2014~2017년, 펜, 72x53cm ⓒ 김미경 화가
 
"일단은 제 눈도 달라져서 나무를 더 높이 그리기도 하고, 예전과는 달리 드라마틱하게 풍경을 담아내기도 하죠. 저는 여기서 계속 살 수 있다면, 변화된 모습들을 계속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옥인동 47번지가 개발 논란이 있었을 때, 더 열심히 그렸었어요. 개발이 되면, 과거의 흔적을 벗고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행히 개발은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되었지만요. 같은 곳이라고 해도 5~6년 후에 다시 그리면 아무래도 그 풍경은 많이 변해 있겠죠."

2015년 첫 전시 이후로, 올 9월에는 '창성동실험실'에서 네 번째 전시를 준비 중에 있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춤에 빠지면서 전시 주제를 춤으로 하려고도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이제까지 그렸던 나무의 모습을 담아내기로 결정지었다.

"이번 전시 주제는 나무예요. 동네 풍광 속을 그리면서 예전엔 배경으로만 그려졌던 나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거죠. '도시 속 성황당', '내 마음 속 성황당'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서촌의 나무들을 그렸어요.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나무는 서촌뿐만 아니라 지난 2년간 제주도, 강진, 경주, 포항, 괴산, 강릉 등을 여행하며 그린 나무 그림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서촌 역사책방에 전시되고 있고, 올 1월에는 그녀의 책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 북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종로의 다양한 곳들과 좋은 협업 관계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역사책방과 함께 그림에 있는 장소 열 군데를 실제로 방문해 보는 답사프로그램을 곧 진행할 예정이라며 싱긋 웃었다.
 
창성동 맨드라미, 2016년, 펜&수채, 53x33cm ⓒ 김미경 화가
 
그녀는 54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직하기까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온 만큼 한 줌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말한다. 안정과 여유를 포기한 끝에 얻은 가치로 삶을 충만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60을 맞이한다는 그녀의 모습이 이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워 보일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이유도 그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앞으로 그녀가 세상에 내놓을 작품들이 삶을 더욱 아름답게 바라보게 해주는 '발견의 예술'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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