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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 화양면 백야도 최병수 작가의 작업실인 메탈정육점에 세워진 한열이를 살려내라 작품
 여수시 화양면 백야도 최병수 작가의 작업실인 메탈정육점에 세워진 한열이를 살려내라 작품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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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민주항쟁 32주년을 맞아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대형 걸개그림과 판화작품을 그렸던 최병수 작가를 8일 만났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그린 여수시민 최병수 작가
 
 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에 맞고 쓰러진뒤 자신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과 영정 작품을 설명하는 최병수 작가. 그의 작품은 현재 백야도에 방치되어 있다
 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에 맞고 쓰러진뒤 자신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과 영정 작품을 설명하는 최병수 작가. 그의 작품은 현재 백야도에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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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로 유명한 최병수 작가의 작업실은 전남 여수 화양면 백야도에 있다.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그가 여수시민이 된지 어언 7년이 흘렀다. 가정 형편이 안 좋아 중2때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한지 어느덧 60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여수로 내려와 백야도로 귀촌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2004년 위를 2/3 잘라냈어. 환경단체 사무국장 조환익씨가 문자를 남겨 놨기에 2~3일 쉬로 여수로 내려왔지. 그런데 12월에 와서 두 달 동안 구경시켜 주면서 백야도에 있는 농가주택을 보여줬어.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집을 샀지. 여기가 내 작업실이 된 셈인데 그동안 블랙리스트로 찍혀 힘들었지. 얼마 전부터 작업실을 열심히 꾸미고 있어."


최병수 작가하면 이한열 열사의 대형 걸개그림이 떠오른다. 당시 목수였던 그는 86년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데 사다리를 짜주러 갔다가 경찰에 끌려가 관제화가가 됐다. 당시에도 정권에 의한 문화예술을 억업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셈이다. 목수에서 '1호 관제화가'가 된 사연은 이랬다.  
"조사과정에서 직업을 묻기에 목수라 했더니 목수는 안 된다 해서 타이핑치면서 나의 직업을 '화가'라고 쓰더라고. 독재정권 때문에 1호 관제화가 된 거야. 이후 화가 나면 난 무작정 그림을 그렸지."

그 후 87년에 민족미술협의회 회원에 가입한지 3~4개월 만에 이한열 열사의 판화와 걸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가로7.5m, 세로10m의 대형 걸개그림은 그의 손에서 탄생됐다.

백야도에 방치된 이한열 열사 대형 영정사진
 
 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에 맞고 쓰러져 3~4주기 추모식때 그렸던 칼날테러를 당한 대형 영정사진은 현재 백야도에 방치된채 곰팡이가 쓸어 있다
 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에 맞고 쓰러져 3~4주기 추모식때 그렸던 칼날테러를 당한 대형 영정사진은 현재 백야도에 방치된채 곰팡이가 쓸어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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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을 연상케하는 작업실에 들어서자 쇠로 만든 작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는 작업실을 '메탈 정육점'이라 불렀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아먹듯 자신도 쇠로 만든 작품을 팔아먹는다는 의미란다. 그가 비계와 파이프를 타고 오르는데 위험천만해 보였다. 작업실 곳곳에는 보수정권과 싸운 흔적들이 즐비했다. 박근혜퇴진, 블랙리스트, 환경운동 관련 작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큰방에는 칼날 테러를 당한 이한열 열사의 대형 영정사진 등 몇몇 작품들이 방하나를 차지했다. 여기저기 카터 칼로 난자된 상흔이 눈살을 찌푸렸다.
 
 백야도 최병수 작품실에 발견한 박근혜 퇴진 관련 여러 자료들의 모습
 백야도 최병수 작품실에 발견한 박근혜 퇴진 관련 여러 자료들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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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사진에 칼자국이 난자하다. 어떤 사연이 있나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희생되었지. 87년에 그린 영정사진 첫 번째 작품은 스프레이를 얼굴에 뿌리고 사과탄 두개를 터트리는 테러를 당했지. 최루탄으로 희생된 사람 사진에 또다시 최루탄을 터트리는 아주 잔혹한 행동을 했어. 이 영정은 추모식 3~4주기때 그린 두 번째 작품인데 추모식때 연대 도서관 앞에 세워놨는데 새벽에 카터 칼로 난도질을 당했지. 이한열의 정신을 반대한 사람들에게 영정테러를 당한 작품인데 이후 광주비엔날레때 다시 붙여 트럭에다 재현했던 그 작품이야."

- 역사적인 가치있는 작품인데 이렇게 방치된 이유가 뭔가
"블랙리스트로 있다 보니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어. 그동안 지원이 끊겼고 이렇게 남아있는 것만으로 어찌 보면 기적이야 .이 그림은 개인 그림이라 보면 안 돼.이한열 열사가 희생된 거니까. 열사한테 초상권 애기도 못 듣고 그린 거야. 박물관에 소장해서 후손들이 계속 민주화를 상기하기 바랄뿐이야."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고통 겪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핍박받은 것을 표현한 작품을 들어보이는 최병수 작가. 블랙리스트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면도칼을 목에다 들이댄 격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핍박받은 것을 표현한 작품을 들어보이는 최병수 작가. 블랙리스트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면도칼을 목에다 들이댄 격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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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이후 88년부터 그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작가로 관리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이렇게 털어놨다.
"4~5년 전 김해시에서 봉화마을을 비롯 십여군데 마을에 자음과 모음으로 마을을 꾸미기 작업을 했지. 그런데 공사계약에 김해시장이 도장까지 찍었는데 문체부에서 잘라버렸어. 그 이유가 내가 블랙리스트였던 거야. 세월호 진상규명하라 외치고, 민주적인 후보를 지지했더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지원금을 끊은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1만 명을 관리했던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는 "정권이 엄청난 사건을 꾸미고 있었다"면서 "국민세금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금 낸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게 독재요, 나치즘하고 똑같다"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 청산해야할 적폐들이 수두룩하다"면서 "610 민주항쟁 32주년을 맞아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독재타도와 호언철폐를 외치던 그런 마음으로 다시 싸워야 한다"라며 가슴벅찼던 610 민주항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중은 바다이기에 배를 뒤집을 수 있죠. 당시 임계점이 다다르니 '넥타이부대' 직장인들이 거리로 튀어나오는걸 보며 민중들이 화가 나면 권력을 뒤집는구나라고 실감했지. 하지만 야권이 분열되어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됐지.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가 사고 친 것을 민중들이 다시 수습하는 것을 보고 우리사회가 아직 희망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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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