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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요즘은 김경희 작가의 <괜찮아, 아저씨>에 꽂혀 있다. 표지에 있는 아저씨의 표정만 봐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머리카락이 열 가닥뿐인 괜찮아 아저씨. 머리카락이 빠져도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다. 남은 머리카락으로 늘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연출하는 아저씨.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서 마지막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도 활짝 웃었다. 이제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아저씨는 숲속에서 몰래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그건 바로 화관! 화관을 쓴 아저씨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화관을 쓴 모습 괜찮아 아저씨
▲ 화관을 쓴 모습 괜찮아 아저씨
ⓒ 황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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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9년째 난소암 투병 중이다. 기운이 없어서 휠체어를 탄다. 화장실에 갈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집에만 있는 엄마에게 자주 책을 빌려다 준다. 엄마가 좋아하는 역사소설과 시집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엄마도 보게 된 <괜찮아, 아저씨>. 엄마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웃었다.

"엄마가 봐도 이 아저씨 참 유쾌하고 재치 있지?"
"그러네. 재밌네. 이 책 보니까 나 머리 다 빠졌을 때가 생각나네."


아, 나는 <괜찮아 아저씨>의 머리를 보면서 엄마의 머리 생각은 못했다. 미안해진 나는 엄마 손을 살포시 잡았다.

"엄마, 이젠 괜찮아?"
"뭐가?"
"그냥, 지난 일들 다. 그리고 지금도."
"괜찮다가 안 괜찮았다가 뭐 왔다 갔다 하지. 원망도 했다가 또 어떤 날은 이만한 게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너한테 미안하다가 고맙기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진 엄마는 밖에 나가는 걸 꺼려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밖에서 학부형들과 마주치는 걸 특히 힘들어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예쁜 가발을 사다 주었지만 엄마는 그 가발을 잘 쓰지 않았다.

젊고 건강했던 시절, 예쁜 원피스만 입었던 엄마는 스스로 차려입고 나갈 수가 없게 됐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갈 때도 편한 옷만 입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모자 선물을 자주 했다. 며칠 전, 아산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도 모자만 눈에 들어왔다.

"엄마, 모자 한 번 써 볼까?"

나는 챙이 넓고 뒤에 리본이 달린 연갈색 모자를 엄마 머리 위에 씌워주고 거울을 보여줬다. 두상이 작은 엄마는 언제나 모자가 참 잘 어울렸다.

"챙도 넓고 시원하고 가벼워서 좋으네."
"그래? 색도 너무 이쁘네. 그럼 이걸로 낙찰!"


계산하고 뒤돌아봤을 때 엄마는 계속 거울을 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저씨'가 화관을 머리에 썼을 때의 표정과 엄마의 표정과 오버랩 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엄마는 평소에 일부러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며 건강 박수를 친다. 머리카락이 빠져도 멋진 머리 스타일을 연출하며 "괜찮은데?"라고 외치는 긍정 캐릭터 '괜찮아, 아저씨'와 닮은 우리 엄마. 나는 모자를 쓴 엄마를 보고 '괜찮아, 아저씨'처럼 말했다.

"엄마, 오! 괜찮은데?"

엄마가 오랜만에 깔깔깔 웃었다.
  
엄마의 뒷 모습 <새로 산 모자를 쓰고>
▲ 엄마의 뒷 모습 <새로 산 모자를 쓰고>
ⓒ 황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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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저씨>는 재미있는 책만은 아니다. 잠시라도 근심 걱정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내가 힘들 때마다 그림책에서 힘을 얻은 것처럼, 엄마도 <괜찮아, 아저씨>를 보며 슬며시 웃으면서 살아갈 힘을 내면 좋겠다.

나는 이 그림책을 한 권 더 사서 엄마의 침대 옆에 놓아주기로 했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엄마, 항암약이 독해서 그런지 머리카락 안 난다고 속상해 했잖아.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있어. 우리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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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소박한 선생님으로, 엄마로, 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