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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곧 '가연(佳緣)'은 사제(師弟)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와 문화는 이 사제관계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제자들의 초청을 되도록 자제해 왔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니 이나마 건강할 때 만나 차담(茶談)을 나누면서 그들과 추억을 얘기하고,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것은 한 훈장으로서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마무리이리라. - 기자 말
 
 자작나무숲속의 반창회(앞줄 왼쪽 부터 박탁균, 박용준, 박상균, 기자, 안효성, 서동진, 신유철 뒷줄왼쪽부터 전상욱, 전창선, 김도훈, 김명인, 곽정진, 윤선영, 김희숙, 김현, 현병선, 매승원, 김미진)
 자작나무숲속의 반창회(앞줄 왼쪽 부터 박탁균, 박용준, 박상균, 기자, 안효성, 서동진, 신유철 뒷줄왼쪽부터 전상욱, 전창선, 김도훈, 김명인, 곽정진, 윤선영, 김희숙, 김현, 현병선, 매승원, 김미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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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 날'

지난 토요일(6월 1일)은 쾌청한 날이었다. 그동안 기승을 부리던 이른 더위도 한풀 꺾인 데다가 미세먼지도 가셨다. 게다가 신록은 절정으로 강원도의 산과 들은 온통 진초록으로 짙게 물들었다. 때마침 모내기철로 논마다 물을 가득 담아 두었기에 언저리 풍경들은 더욱 상쾌했다.

이즈음 나는 몹시 저기압이다.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졌다. 며칠 전에는 그동안 앓던 어금니를 모두 뽑았다. 그러자 시원함은 있었지만, 가장 소중함을 잃어버린 허전함에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이제는 꼼짝없이 노년 쇠퇴기로 접어들었다는…

멀리서 이런 내 모습을 천리안으로 읽은 듯, 1982년에 고1 신입생으로 만났던 이대부고 25기 졸업생 17명이 옛 담임을 찾아왔다. 그들은 굳이 내가 사는 고장으로 찾아와서 후줄근한 늙은 훈장에게 생의 활기를 불어주는 덕담을 쏟아냈다. 그러자 나는 마치 시든 나무가 단비를 맞은 듯했다. 그들과 지낸 유쾌한 하루는 나를 37년 전 청년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그들 가운데는 동기동창끼리 결혼한 한 쌍의 부부도 참석했다. 그들이 예비 부부이던 때, 고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어느 날 학교 앞 이화당 빵집으로 찾아왔다. 신랑 전창선 군은 당시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서 살고 있었던 바, 고교 시절 클라스메이트였던 현병선 양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굳이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식 날 신랑신부도 선생님 제자요, 사회자도 하객도 대부분 제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날 담임 선생님이 주례를 맡으면 완전히 한 세트가 된다고 간청했다.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거절치 못해 생애 처음 주례를 섰다.

그때 주례사 주제는 "한 눈만 뜨고 살아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나의 단골 주례사로 이후 30여 쌍 주례를 선 바 있었다. 그 주례사 탓인지 내가 주례를 선 부부 가운데 파경했다는 후문을 여태 듣지 못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 부부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늘 마음에 있었지만, 찾아뵙지 못해…."
"무슨 말씀? 그동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네."
  

그들은 결혼 후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다시 미국에 가서 살다가 한국으로, 또다시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산다고 말했다. 이즈음 고국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장모님)를 미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일시 귀국 차 왔단다. 그런 중, 올 반창회는 옛 담임이 사는 고장에서 한다는 얘기를 듣자 만사 제쳐두고 찾았노라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저희 어머니는 늘 선생님을 찾아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선생님 만나 뵌 얘기를 자랑스럽게 전해 드릴 겁니다."

그들 부부가 합창하듯 말했다.
 
 동기동창 부부와 함께(왼쪽부터 현병선, 기자, 전창선)
 동기동창 부부와 함께(왼쪽부터 현병선, 기자, 전창선)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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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이날 17명 친구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 왔다. 서울, 일산, 천안, 평택, 동해 등지에서 승용차로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나는 그들 현재의 모습에서 옛 모습을 더듬고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자, 곧 그들은 환호와 함께 악수만으로 부족하여 가볍게 포옹했다. 그 순간 늙은 훈장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37년 전 10대 소년소녀들이 그새 반백의 장년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강원도 토속 음식 막국수로 마음의 점을 찍었다. 그런 다음 내가 귀한 손님이 오면 늘 모시고 가는 횡성군 우천면의 가까운 '미술관자작나무숲'으로 가서 커피타임을 가졌다. 그 시간, 이즈음 반장을 맡고 있는 전상욱 대표가 나에게 '마지막 수업'을 청했다.

나는 쑥스럽게 그 청을 받아들였다.
 
"오늘 날씨 참 좋습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날씨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습니다. 춥지 않으면 덥고, 또는 눈 내리거나 비가 오고, 황사현상에다가 요즘은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고... . 

 '청춘은 희망에 살고 노년은 추억에 산다'라는 말처럼, 이즈음 나는 지난 추억을 되삭임질하면서 깊이 반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날 좋은 추억에는 미소를 짓지만, 나쁜 추억이 떠오르면 그렇게 괴로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젊은날 부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바랍니다. …"
   
 1982년 걔네 고1 생활훈련 때 학급 단체사진(맨 오른쪽 기자)
 1982년 걔네 고1 생활훈련 때 학급 단체사진(맨 오른쪽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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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종례사항 없습니다

이밖에도 "좋은 것만이 꼭 좋은 게 아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라",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늘그막에 맨홀에 빠지지 말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등 골동품 훈장 얘기로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이어서 우리는 미술관 자작나무숲 뜰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특히 여제자들은 한 다리를 드는 등, 갖은 포즈를 취하면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다. 그런 다음 삼림욕을 하면서 제1전시실의 자작나무 유화작품, 제2전시실의 자작나무 사진작품을 감상했다. 수려하고도 싱그러운 미술관자작나무숲을 한바퀴 돈 뒤, 정문 앞 주차장에서 마침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반장 전상욱 대표가 나에게 그날 종례 말씀을 부탁했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하랴. 그 순간 문득 걔네들의 재학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종례는 없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그 말에 17명의 제자들은 옛날처럼 환호하면서 승용차에 올랐다. 유난히 싱그럽고 쾌청한 유월 초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박도 지음 푸른사상사 발행 <마지막 수업> 책이 막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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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