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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십층석탑 상층부(좌) 원각사지 십층석탑 상층부(우)
▲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십층석탑 상층부(좌) 원각사지 십층석탑 상층부(우)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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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부분의 탑은 홀수를 지향한다.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수직적인 의미에서 홀수가 영원한 생명의 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드물게 짝수로 이루어진 탑이 있다. 서로의 외형이 꼭 닮아서 쌍둥이 탑이라 불리는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그것이다.

두 탑의 건립 기간은 약 120년 정도 차이를 두고 있으나, 석탑의 동일한 층수, 亞형의 기단, 불교와 관련된 탑신의 조형물 등 매우 흡사한 모습을 띄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외형의 두 탑은 걸어온 길이 다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으나,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는 등 여러 번 자리를 옮겨 다녔다.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과거와 현재 1990년대 원각사지 십층석탑(좌)2019년 원각사지 십층석탑(우)
▲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과거와 현재 1990년대 원각사지 십층석탑(좌)2019년 원각사지 십층석탑(우)
ⓒ 문화재청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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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구 원각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 내부에는 석탑을 비롯해 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 등이 남아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이 된 현재까지 한 자리를 지켜왔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기도 했으나, 1940년대 마지막 수리를 거쳐 지금의 외형을 갖췄다.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국보 제2호로 지정되었다.

 
오랜 기간을 거쳐 안식을 맞이하다, 경천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과거와 현재 1990년대 경천사지 십층석탑(좌) 2019년 경천사지 십층석탑(우)
▲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과거와 현재 1990년대 경천사지 십층석탑(좌) 2019년 경천사지 십층석탑(우)
ⓒ 문화재청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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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지 십층석탑은 1348년 경기도 개풍군 경천사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07년 구한말 궁내대신이었던 다나카 미스야키가 무단 반출을 시도하다, 외신기자 헐버트의 폭로 보도와 조선 백성들의 반대로 1919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반환했다.

반환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탑은 당시 한국의 기술로는 보수처리를 할 수가 없었고 1960년이 돼서야 수리되어 경복궁에 세워졌다. 이후 1962년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외부에 탑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1995년 본격적으로 해체 및 보수작업을 실시했다.

2005년, 경복궁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석탑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부에 전시하게 되었다. 현재는 문화재 불법반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문화유산으로 대표되고 있다.
  
두 탑의 외형은 쌍둥이처럼 닮았으나, 걸어온 길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한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가정에서 두 아이 모두 사랑받으며 자라야 하듯이, 두 탑 역시 국민들의 관심과 문화재청의 관리 속에서 오래오래 우리의 곁에 남아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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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현장취재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