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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시간이 남아 오락실에 갔다. 딱 한 판만 하려 했는데, 그날따라 게임이 잘 풀렸다. 결국 엔딩 영상을 봤고, 1위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버스를 놓쳤다. 2000년도에 량현량하가 학교에 안 간 이유다. 정당성과는 별개로 그들에겐 학교에 가지 않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웨덴에도 등교를 거부한 소녀가 있다. 주인공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다.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의회 형태처럼 학교에 안 간 이유도 조금 다르다. "우리가 앞으로 존재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미래를 구하려고 뭔가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Skolstrejk For Klimatet(School Strike For Climate)가 새겨진 팻말 옆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
 Skolstrejk For Klimatet(School Strike For Climate)가 새겨진 팻말 옆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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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증을 앓던 소녀는 지난여름 북유럽을 덮친 이상고온 현상을 이유로 등교를 거부했다. 매주 금요일, 학교 대신 그가 찾은 곳은 의회 앞이다. 스웨덴 소녀의 등교 파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SNS가 청소년들의 사고를 굳게 할 것이란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유럽의 청소년들은 보란 듯이 해시태그(#FridaysForFuture)로 똘똘 뭉쳤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15일, 청소년 약 300여 명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315 청소년 기후행동’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하기 위해 모인 중고생들. ‘청소년 기후소송단’ 80여명이 주축이 됐고 행사 참가 예정자 300여명, 온라인 지지자를 포함하면 1000여명이 마음을 모았다.
  ‘315 청소년 기후행동’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하기 위해 모인 중고생들. ‘청소년 기후소송단’ 80여명이 주축이 됐고 행사 참가 예정자 300여명, 온라인 지지자를 포함하면 1000여명이 마음을 모았다.
ⓒ 315청소년기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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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항상 불 끄고, 물 아끼고, 음식 남기지 말라고들 하시잖아요. 언젠가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이 그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후변화를 막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어른들은 그러지 않고 있잖아요."

오늘의 그레타 툰베리는 유럽 연합 기조 연설을 담당하고, 교황과 악수를 나누며, 영국 의원들 앞에서 의견을 개진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됐다. 학교를 빠질 용기는 없고, 대신 조퇴를 하기 위해 눈을 비볐던 열여섯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세간에는 청소년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우려가 있다. 세상 일을 논할만한 판단력을 갖지 못했다는 소위 '미성숙' 담론이다. 사실 1에서 2로 앞자리 수 하나 바뀐다고 혜안을 얻는 건 아니다. 지식의 압축성장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을 하라는 연령주의(Ageism)는 기성의 관점을 공고히 할 뿐이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말을 긍정하면, 특정 연령에 볼 수 있는 관점이란 것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기성세대가 좀 더 지혜로웠다면, 청소년이 등교를 거부하면서까지 세상에 경종을 울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시민 모두가 대의를 위해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기란 쉽지 않다. 대신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텀블러 사용하기, 비닐 대신 에코백 사용하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애들'도 이정도다. '어른'이라고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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