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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사고가 2주기를 맞았습니다. 최근 참사 생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가 출간됐습니다. 이에 출판사 허락을 받아 책에 실린 글 몇 편을 싣습니다. 이 글을 쓴 이은주님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지난 2017년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사고현장의 휜 크레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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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서 25년 동안 활동해왔다. 내가 활동을 시작한 첫해인 1995년에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화재 폭발이 발생해 노동자 열아홉 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주검은 컨베이어벨트에 말려들어가 온몸이 짓이겨진 채 사망한 노동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25년 흐르는 동안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또 사고가 일어났다.

2017년 5월 1일 14시 52분. 경남 거제시 장평3로 80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 조립장. 프로젝트 번호 7115, 마틴링게 프로세스 모듈 건조 현장.

5호기 8백 톤 골리앗 크레인과 32톤 지브형 크레인이 충돌해 지브 크레인이 낙하했다. 크레인이 떨어진 메인데크 위에는 백여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있었다. 작업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이던 사람, 다음 작업을 위해 준비 작업을 하던 사람, 변변치 않은 흡연 장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람,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있던 사람… 크레인은 바로 그 위로 무너져내렸다. 크레인에서 끊어져 나온 와이어가 데크를 쓸고 갔다. 한두 걸음 거리로 죽음과 삶이 나뉘었다. 이 크레인 낙하 사고로 노동자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고, 스물다섯 명이 다쳤다.

이 사건을 마주하고 정말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한 달 뒤인 6월부터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 상담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산재신청서를 정리했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옮겨진 그날의 모습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짓눌리고, 부러지고, 갈라지고, 터지고, 잘려나간 현장이 활자로 재현되었다.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크레인에서 끊어진 육중한 와이어가 활선이 되어 내 몸과 마음 여기저기를 휘갈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파편이 되어버린 사고 현장처럼 노동자들도 몸과 마음은 상처로 파편 조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늘 주장해왔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확장하는 활동에 힘을 쏟으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또 다시 반복된 잔인한 죽음 앞에서 자괴감이 커져갔다.

산재 직업병의 백화점이라 불리는 죽음의 조선소

어떤 위험에 노출될 때 그곳을 벗어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제일의 안전 수칙은 따로 있다. 바로 '뛰면 죽는다'는 말이다. 조선소 온 천지에 위험이 상존하므로 뛰다가 도리어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위험 유해 요인으로 꼽는 것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충돌, 낙하, 붕괴, 협착, 전도, 폭발, 소음, 무리한 동작, 유해광선, 감전, 분진, 산소 결핍 질식, 유기용제…. 조선업은 산재 직업병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죽거나 다치거나 병드는 것은 조선업 노동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져왔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324명이다. 한 달에 두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한다. 공식적인 보고로 잡힌 숫자만 이렇다. 그리고 이 중 257명이 하청 노동자다. 조선소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80%가 비정규 노동자다. 그리고 2016년 조선업의 재해율은 0.83로 전 산업 평균 0.49의 1.7배 수준이다. 사망만인율(사망자 수의 1만 배를 전체 노동자 수로 나눈 값으로, 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은 전 산업 평균 0.53에 비해 두 배 높은 1.09다.

1995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 열아홉 명이 불에 타죽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의 참혹한 실상과는 달리 제대로 된 사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망자 열아홉 명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자는 외침이 조직적으로 시작된 것도 바로 조선업이었다. 이러한 조선업의 현실을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잔인한 죽음을 멈추어야 한다고 거리에 용접복과 도장복을 입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하청으로 돌아가는 조선 산업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 출근한 노동자는 모두 1623명이다. 이 중 1464명, 90%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삼성중공업이 공개한 자료다. 사망한 노동자 여섯 명은 물론이고 재해를 입은 노동자들 모두 하청의 하청에 속한 비정규 노동자였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 뒤인 2017년 8월 20일 경남 진해 stx조선해양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노동자들 또한 하청의 하청 소속 비정규 노동자였다.

조선 사업이 호황이던 2000년 조선 부문에서 일한 노동자 수는 7만 9776명이었다. 2014년에 노동자 수는 총 20만 4996명으로 약 2.5배로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하청 노동자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2002년경부터 조선업에서 하청 노동자 수는 정규직 노동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13년 9대 조선소의 하청 노동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조선 노동자 열 명 중에 일곱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늘어난 하청 노동자들은 대부분 조선 3사(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조선 부문과 해양 플랜트 부문에 집중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의 침체와 맞물리면서 불안정 고용이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조선산업이 침체일로를 걷던 시기에 2011년경부터 유가 상승과 더불어 해양 플랜트 발주가 증가하자 한국의 조선 업체들은 해양 플랜트 설계와 시공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저가 수주에 나섰다. 적정한 생산 능력보다 150% 정도 많은 물량을 저가로 수주했으니 이 물량을 시공할 능력이 모자란 것은 물론이고, 적정한 인력조차 수급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욱이 공기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지연손해금까지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럴수록 단기 고용은 더욱 확대되었다. 해양 플랜트 현장에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사업주들은 조선산업의 일시적인 물량 증가를 이유로 들며 핵심 인력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사내외에 하도급화를 시작했다. 사내 하청업체 1차 본공과 물량팀 노동자로 2차, 3차의 불법적인 다단계 고용 형태가 확대되었다. 특정한 위험 작업만 외주화한 것이 아니었다. 물량팀이 조선소에서 일반화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 하청 노동의 자리에 들어가는가. 누구라도 몸뚱이만 굴릴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인터넷과 벼룩시장 등 도처에서 사람을 모은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높은 일당에 유인되어 조선소로 들어간다. 이역만리에서부터 국경을 넘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끊을 동아줄이라 여기고 조선소로 들어간다.

공기 단축이 조선소를 지배하는 최고의 목표가 되어버리면 물량이나 검사, 공기가 현장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공기 단축을 위해서 안전은 외면당한다. 목숨을 내놓고 인권을 포기하고 일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임금'이다. 그리고 이 임금을 받는 대가로 포기해야 할 것은 많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해결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한다. 몇 개 되지 않는 화장실 앞에서 20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줄이 너무 길면 포기해야 한다. 왜 늦게 왔느냐는 관리자의 질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 현장 곳곳에 감시원들이 배치되어 노동자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안전과 노동자의 생명을 위해 쓰여야 할 돈, 인력, 노력은 효율을 위한 노동자 관리와 통제에 쓰인다.

치료가 아니라 2차 가해가 되는 재해 인정 과정

 
2017년 5월 1일 오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사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7년 5월 1일 오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사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 김경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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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추련은 2017년 5월 1일 재해를 당했던 노동자 중 여섯 명과 사고 현장에 있었던 피해 노동자 일곱 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산재 처리와 치유 과정을 지원했다. 그중 열한명이 산재로 승인되었고 치료를 받고 있다.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치료-고용-보상-복귀로 이어지는 사회 통합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사고이후 고용노동부는 계획과 준비 없이 행정사업으로 일관했다. 트라우마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받자 고용노동부는 1차 실태 파악을 진행했다.

그러나 1차 조사는 삼성중공업 사업장 안에서 인원을 대규모로 모아놓고 진행되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선행해야 하는 일은 심리적인 안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가장 안전하지 못한 장소에서, 집단적인 스크리닝 방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는 오히려 트라우마를 양산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었다. 노동 재해가 일어난 다른 현장에서도 조사는 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차 사업까지 마무리된 2017년 12월 8일 이후에도 고위험군 노동자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후속 지원 대책은 전무했다. 휴업급여 등을 지급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사회 복귀를 위해 지역 차원에서 지원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산업안전공단에 제출된 보고서는 비공개였다. 고 노회찬 의원실을 통해서 2018년 3월 30일에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서 위험군으로 확인된 160여 명이 방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에서 도움을 얻기는커녕 상처를 얻기 십상이다. '다른 분들은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정부 기관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끔찍하고 강렬한 기억을 진술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를 구분하는 편견의 언어다.

'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있다는 트라우마로 당신이 산재가 되겠어요?'
'그 뒤에 한 달 정도는 일하러 다녔는데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게 가능한가요?'
'산재가 되면 만사형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돼요.'


노동자에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전한다. 산업재해를 처리하는 공무원의 감수성이 이러하다.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마치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으로 치부하는 폭력적인 시선은 노동자들의 상처를 더욱 깊게 후빈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상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사고

고용노동부는 크레인 사고 직후 삼성중공업 현장 특별 진단을 실시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866건을 적발해 과태로 5억 2천만 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노동부 특별감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현장에서 반복해서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부터 6개월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가 2018년 9월 5일 사고조사 보고서로 제출되었다.

보고서에는 2017년 5월 1일 사고가 발생한 주된 원인은 원청 사업주(삼성중공업)가 지브형 크레인을 설치할 때 위험성 평가를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혀져 있다. 구체적으로 지브형 크레인이 골리앗 크레인과 충돌할 위험을 평가해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원청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내도급 노동자를 동시에 투입하여 작업하도록 해 피해가 컸다고도 했다. 그리고 제도를 개선할 방안을 몇 가지 제안했다.

첫째,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둘째, 무리한 공정 진행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셋째, 조선업 안전관리법제도를 개선한다. 그러나 이는 외주화와 노동유연화라는 파행적인 고용 구조를 인정한 형식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조사위에서 밝힌 사고의 피해 노동자와 고용 형태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

2017년 6월 15일 수사기관은 스물다섯 명(삼성중공업 조선소장을 포함한 현장 관리자 10명, 현장 작업자 7명, 하청업체 대표이사를 포함한 관리자 4명, 현장 작업자 4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으로 형사입건했다. 검찰은 이 중 여덟 명(삼성중공업 관리자 3명, 작업자 3명, 하청업체 현장 작업자 2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에서는 골리앗 크레인 신호수 한 명에게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7년 12월 8일 삼성중공업 조선소장과 법인, 하청업체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다.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구체적인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실행위자로서 사고 발생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나 지배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입건되지 않았다.

2018년 12월 4일 형사재판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였던 조선소장 김효섭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2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벌금 5백만원을 구형했다. 신호수에게는 금고 2년, 이 회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열세 명에게는 각각 금고, 벌금형을 구형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양벌규정에 따라 삼성중공업 법인에는 벌금 3천만 원을 구형했다. 3천만 원은 사망한 노동자 1인당 5백만 원에 해당하는 벌금이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2017고단940. 2019년 5월 7일로 선고기일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2017년 5월 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지난 2017년 5월 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거제백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크레인 붕괴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조문 도중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 김경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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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남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

크레인 사고가 난 지 23개월, 사고 원인과 책임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고 있지 않다. 삼성중공업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조선소장은 사고 조사 과정에서 '지브 크레인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크레인이 추락할 것까지는 몰랐다'고 했다.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 크레인에는 충돌 방지 장치, 충돌 경고 장치조차도 없이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하청업체에서 위험 작업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는데도 이를 묵살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마틴링게 프로젝트는 프랑스계 글로벌 에너지기업 토털의 노르웨이 자회사 토털 E&P 노르게가 발주한 해양생산품이다. 삼성중공업과 세계 최대 원유 서비스업체 테크닙(Technip)이 발주 받아 공동으로 시공했다. 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인 에퀴노르(Equinor)와 페트로AS(Petoro AS)는 이 프로젝트에 주주로 참여했다. 마틴링게 플랫폼의 공사 규모는 최초 발주 때는 1만 9520톤이는데 이후 공사 규모가 2만 3330톤으로 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설계가 변경되었으며 공사 기간 또한 연장되었다.

사건 수사 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높이가 상승하기 전까지 현장에서는 T자형 타워크레인이 사용되었다. 상부 구조 작업을 해야 하는데 T자형 타워크레인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크레인의 간섭 문제(크레인의 동선이 겹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삼성중공업 담당자들이 모여 일곱 차례 회의를 거쳐 2016년 5월 13일 지브 크레인을 추가하기로 결정하고 한 달 뒤부터 지브 크레인을 설치해 운영했다. 이렇게 지브 크레인을 설치했지만 골리앗 크레인과 공간적 여유가 없어서, 골리앗 크레인이 통과할 때는 지브 크레인의 붐대를 내리는 식으로, 기존에는 없었던 작업 방법과 절차가 필요하게 되었다.

삼성중공업 고위 임원과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직원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에서도 이런 작업 방식은 매우 이례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위험은 예측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리앗 크레인과 지브 크레인을 한 작업장 안에 중첩시켜 운용한 작업 방식에 대해 마틴링게 프로젝트와 관련된 회사들은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 작업 방법과 절차를 변경하는 과정에 공학적 기술적 방안이 포함되었는가. 안전조치 방안은 있었는가. 작업관리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었는가. 마련하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모두 명백히 밝혀야 할 사안들이다. 사고 후 발주사 토털은 사고를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18년 11월 29일 '마틴링게 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 지원단(이하 지원단)', 기업의 인권 침해 문제에 인권.노동.환경.공익법 단체가 연대해 대응하는 '기업인권네트워크'는 삼성중공업과 발주사, 공동시공사에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지브 크레인의 설치 운영과 위험 예방을 위해 어떤 논의와 조치를 취했는지를 물었다. 공개 질의에 삼성중공업은 답변을 하지 않았고, 토털 E&P 노르게는 삼성중공업 책임이지 자신들은 책임이 없으며 현재 마틴링게의 운영사도 아니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에퀴노르와 페트로 역시 자신들은 운영사가 아니라는 무책임한 회신을 보내왔다. 정말 이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원단을 중심으로 피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노동.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은 마틴링거 프로젝트를 공동 시공한 삼성중공업과 테크닙(프랑스), 프로젝트의 당시 운영사인 토털의 자회사(노르웨이)와 토털 본사(프랑스)를 OECD 다국적 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 위반을 이유로 NCP(국내연락사무소)에 진정했다.

OECD는 1976년 다국적 기업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해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가이드라인 인권 규정에는 인권 책임 경영을 이행할 의무, 인권 실천 점검 내지 인권 실사를 이행할 의무, 고용.노사관계에 관한 규정 중 작업상 보건과 안정성을 보장할 의무 등을 정하고 있다.

NCP 진정을 통해서 2017년 5월의 크레인 사고가 노동자의 사고,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용되는 규제 기준과 규범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밝히려 한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진정 대상 다국적 기업들이 공동으로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해 피상적이고 전시적인 대책이 아니라 발주, 수주, 생산 과정에서부터 노동 안전을 규정하고 이를 최우선하는 가치로 둘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기업이 인식을 전환하도록 촉구하려고 한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펴낸 책 <나, 조선소 노동자> 표지.
ⓒ 마창거제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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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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