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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소년> 야시마타로 글, 그림, 윤구병 옮김
 <까마귀 소년> 야시마타로 글, 그림, 윤구병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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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삼척 외딴 산골 마을에서 선생 노릇을 시작하고 두 해쯤 지났을 때다. 지금도 그 서점이 있는가 모르겠다. 태백 황지연못 근처에서 <까마귀소년>을 만났다. '까치 소년'도 아니고 '까마귀 소년'이라니?

석판화 기법으로 나타낸 표지 그림부터 어딘가 모르게 어두웠다. 쭉 찢어진 듯한 눈에 살짝 벌어진 입하며 둘둘 헝겊으로 감싼 얼굴 때문이었을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한테 주는 그림책이 이래서야 팔리기나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꺾인 나뭇가지에 피어난 벚꽃, 하얀 나비 한 마리를 그린 면지를 넘기면 구리로 만든 학교종이 매달렸다. 게시판일까, 교무실 창문일까. '까마귀소년 烏太郞'
입학 첫날, 컴컴한 학교 마룻바닥에 웅크려 숨은 아이를 찾느라 선생 뒷모습은 이리저리 바쁘고 교실 아이들 눈도 모두 창밖을 내다본다.  
 선생님과 같은 교실 아이들이 무서운 아이
 선생님과 같은 교실 아이들이 무서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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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장을 넘기면 교실이다. 벚꽃을 그린 괘도에 '사쿠라(サクラ)'를 써놓았다. 칠판에도 'サ'를 써놓았는데 선생 얼굴에선 못마땅한 기색이 뚜렷하다. 왼손으론 턱을 받치고 오른손엔 길고 가는 회초리를 들었다. 저만치 떨어져 앉은 같은 반 아이들 얼굴도 차갑고 싸늘하다. 이쪽을 돌아보는 아이들의 눈. 아이는 혼자 걸상에 앉지도 못한 채 머리를 감싸고 서 있다. 하얗게 비운 여백과 순간의 움직임을 붙들어 그 마음까지 미뤄 짐작하게 한다. 바깥은 따뜻한 봄빛인데 아이에게 학교는 춥고 낯설고 외로운 곳이다. 두려움이 있는 곳에서 배움이 일어날 수 없는 법이다.

선생님이 무섭고 아이들이 무섭고 '늘 뒤처지고 꼴찌라서' 아이는 더욱 철저히 혼자가 된다. 한 교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윗반이나 아랫반 아이들까지 땅꼬마를 바보 멍청이라고' 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아이는 채소 잎으로 싼 주먹밥을 점심으로 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결같이 타박타박 걸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온다.  
 혼자 겉도는 땅꼬마
 혼자 겉도는 땅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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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꼬마는 교실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살아간다.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이 흔히 쓰는 자기 보호 방법이다. 동무나 교사한테 지지를 받지 못한 탓에 자아 존중감이 떨어지면서 혼자 지내기, 배움에서 무관심하기, 참여하지 않고 거리 두기 같은 방법으로 수업과 배움, 관계에서 점점 멀어진다.

땅꼬마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생각해낸 방법들을 보라.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사팔뜨기 흉내를 내고, 몇 시간 동안 뚫어지게 천장이나 책상 나무결을 살피고, 어떤 날은 동무 옷 어깨 부분의 꿰맨 곳을 찾아 내어 살핀다. 창 밖 풍경을 내다보면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저만치 뛰노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무 아래 오도카니 앉아 눈 감고 세상 소리를 들으려하고 남들은 만지기는커녕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징그런 벌레들을 더 열심히 들여다본다. 교실에서고 학교에서고 만날 수 있는 아이 아닌가. 
 6학년이 되자 이소베 선생님이 왔다.
 6학년이 되자 이소베 선생님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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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섯 해가 지나 아이는 6학년이 되었고 새 선생님을 만난다. 이소베 선생. 이소베 선생님은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땅꼬마를 대한다. 세상 천지 이런 바보가 있을까 낮잡던 땅꼬마인데, 알고 보니 보물 같은 아이다. 머루, 돼지감자가 열리고 자라는 곳을 알 뿐만 아니라 꽃이란 꽃도 모두 안다. 사실 땅꼬마는 교실 바깥에선 모르는 게 없는 아이다. 이소베 선생님은 자신 말고는 알아볼 수 없게 쓴 땅꼬마 붓글씨나 투박한 그림도 칭찬한다. 
 무대에 선 땅꼬마
 무대에 선 땅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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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너나없이 가슴 뛰는 학예회 날. 땅꼬마가 무대에 나오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저게 누구야? 저 멍청이가 무얼 하러 저기 올라갔지?"

그림자로 보이는 관객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웅성거린다. 땅꼬마가 선 무대와 관객 사이 여백만큼 차가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소베 선생님은 '烏のナキゴヱ'라고 쓴 펼침막을 들어 보인다. '까마귀 소리'라고 썼을까.

땅꼬마는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까마귀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들 소리,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즐겁고 행복할 때, 고목에 앉아 우는 까마귀까지 차례로 들려준다. 이소베 선생님이 일어나 땅꼬마가 어떻게 까마귀 소리를 배웠는지 천천히 들려준다.
 까마귀 소년 이야기를 듣고 우는 사람들
 까마귀 소년 이야기를 듣고 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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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그림책을 덮은 뒤에 몰려드는 먹먹함이란. 서서 보던 책을 샀다.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산 그림책이다. '처음'이란 말처럼 내 삶에서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그림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배움이 어려운 땅꼬마를 아이들은 바보 천치라고 손가락질하고 1학년 때부터 다섯 해 동안 담임선생님들조차 배우지 못하는 아이라고 포기한 상태다. 그런 아이를 자기 삶의 주인공을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무대로 이끌어낸다. 그게 담임인 이소베 선생님이다.

이소베 선생이 누구라도 깜짝 놀랄 만한 방법을 쓴 것도 없다. 아무리 가르쳐도 배울 줄 모르는 아이라고 몰라라 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땅꼬마 말고는 알아먹지 못하게 쓴 붓글씨나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지만 그 글씨를 읽어주고 귀하여 보아준 게 전부다.

얼마 전 모든 아이가 배움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출발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내놓았다. 뻔한 내용이다. 좀 다른 게 있다면 기초학력 미달학생 발견을 핑계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개선하여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일제고사를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배움에 흥미를 잃은 아이를 돕겠다면서 일제고사 방식으로 분리하여 학생 맞춤형 보충지도를 권장하고 비루한 '기초학력 보장법' 제정으로 교사의 책임을 강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초학력 책임교육은 <까마귀소년>에 있다. 이소베 선생이 땅꼬마에게 눈길을 주고 아이가 지닌 재능을 발견하고 땅꼬마의 성장 속도를 지지해주는 것처럼 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바꾸어가야 한다. '기초학력 보장법' 같은 법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부터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④항에서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했지만, 우리네 학교에서 교사들이 온전히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가. 같은 법 제⑤항에서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는 '직원'이 담당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교사들이 온갖 행정사무와 업무에 치여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현실에 눈 감은 채로 백날 '기초학력 보장법'이니 '내실화 방안'이니 해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교실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교육부는 '학습지원대상학생'이라고 한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사후 방책으로 '개별 맞춤형 보충 학습 지도, 보조인력 지원, 대학생 멘토링, 학교 밖 언어치료사, 상담심리사, 의사' 들을 지원하겠다니 이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본질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책임교육을 다 할 수 있게 할 것인가부터 살피는 게 순서고 순리다. 교사가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학생 하나 하나에 마음을 줄 수 있게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아닌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고도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되든 학습지원대상학생이든 늘어난다고 한다면 당연히 교사의 책임을 묻고 학력 저하를 나무라야할 것이다.

모든 교육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다. 이오덕(1989)은 "교실 어항에 한 마리 올챙이를 기를 때, 한 알의 씨앗을 화분에 뿌려 싹이 트기를 기다릴 때, 거기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삶과 믿음의 敎室, 한길사, 53쪽) 하고 말했다. 사랑의 마음이 생기자면 담임교사가 아침마다 교실에 와서 앉는 아이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최선의 기초학력 책임교육이다. <까마귀 소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인데, 교육부 장관뿐만 아니라 기초학력 보장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까마귀 소년>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비룡소(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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