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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는 것은 끼니 때 밥을 먹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심지어 배가 터질 만큼 과식을 했을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고, 그렇기 때문에 밥은 제때 제때 먹고 또 먹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좋은 글이 꼭 밥 같습니다. 밥을 먹었어도 시간 지나면 어느새 배가 고파지고, 다시 또 밥을 먹어야 허기진 삶을 면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글 또한 그렇습니다. 한때 좋은 글을 많이 읽었을 지라도 책 또한 제때 제때 읽고 또 읽어야만 배고파지는 삶, 어리석어지거나 삭막해지는 삶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은이 정운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3월 30일 / 값 4,000원)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은이 정운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3월 30일 / 값 4,000원)
ⓒ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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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은이 정운, 펴낸곳 조계종출판사)는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고 계시는 정운 스님이 구도(求道)의 일상에서 맞닥뜨린 한 조각 삶, 느끼거나 깨우침에 도움이 된 내용들을 느낌표처럼 정리한 작은 에세이집입니다.

다들 현명하게 사는 것 같지만 아주 조금만, 정말 조금만 진지하게 살펴보면 다들 지혜롭지도 못하고 진지하지도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10년 후까지 살 거라는 걸 보장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들 천 년 만 년은 더 살 것처럼 행세하며 삽니다.

천 년 만 년은 살 것처럼 생각하니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삶을 진지하게 살지 못합니다. 너무 흔하고, 너무나 익숙해 있어 이게 사찰음식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단무지(다꽝)입니다.

우리가 다꽝(단무지)이라고 부르는 노란 무절임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일본 다쿠앙(澤庵) 스님이고, 그 스님의 이름에서 다꾸앙(단무지)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책은 다쿠앙 스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다쿠앙 스님을 찾아온 관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을 푸념을 하듯 털어놓으며 "시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관리가 하소연을 하듯 길게 하는 푸념을 다 듣고 난 스님은 딱 두 마디,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귀한 보석처럼 여기십시오."라는 말로 답을 합니다.

다쿠앙 스님의 이야기에 이어 속가 모친으로부터 받은 전화 이야기를 빌어 우리의 삶이, 주위의 사람들, 부모·형제·친구·지인들……과 사랑할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기 마음에 적합한 환경을 구하고자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서나 자기의 마음을 환경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愚人除境不亡心 智者亡心不除境 -용아거둔龍牙居遁(835∼923, 당나라 때 선사) -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72쪽
 
어떤 이야기는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머리에 똠방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청량감을 주고, 어떤 이야기는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포대기처럼 아늑합니다. 어떤 이야기는 희망가처럼 가슴을 부풀게 하고, 어떤 이야기는 절룩거리는 마음을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됩니다.

책은 외투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얇고 작지만 글 속에 꾸려진 이야기는 지혜와 희망, 사랑과 자기성찰을 복돋아주는 격려가 되고,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삶을 진지하게 되뇌며 새기게 하는 커다란 울림이 됩니다.

이 책,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을 읽는 재미는 화사한 봄꽃처럼 얇고 가볍지만 읽는 글에서 새기게 되는 지혜는 가을햇살에 영글어 가는 결실, 결실의 핵을 이루고 있는 씨앗만큼이나 암팡지게 단단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은이 정운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3월 30일 / 값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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