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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산별신제  - 제단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편엔 무녀들이, 오른쪽편에 별별좌와 풍물패가 자리 잡고, 보존회 임원들은 유림복과 장졸복을 입고 절을 하고 있다.
  은산별신제 - 제단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편엔 무녀들이, 오른쪽편에 별별좌와 풍물패가 자리 잡고, 보존회 임원들은 유림복과 장졸복을 입고 절을 하고 있다.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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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곧 시든다는 걸 알기에 피어 있는 동안 마음껏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여 읍내에서 은산면으로 가는 길엔 지역사람들은 다 아는 벚꽃 가로수 길이 있다. 비록 짧은 코스지만, 그래도 해마다 봄이 되면 부여의 벚꽃 드라이브 '시그니처'로 꼽힌다.

올해도 은산별신제가 열렸다. 지난해에도 구경하러 갔는데, 한 가지 강렬했던 건 풍물패의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었다. 관련 영상을 며칠 동안 찾아보며 혼자 감탄하기도 했다. 다시 그 기분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망치질을 해댔다.

#1. 은산별신제의 시작을 알리는 '조라술 봉하기'

4일 아침 7시부터 별신제의 첫 번째 의식이 시작된다고 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새벽공기가 차갑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 전날 미리 같이 이동하기로 한 지역의 사진작가 김은석씨 차를 얻어 탔다. 6시 30분쯤 되니 은산별신제 보존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복장을 갖춰 입은 몇몇의 노장들이 곧 시작될 별신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이 왔는가? 날이 아직 추운디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마셔."

별신제 보존회장이 인사를 건네며 해마다 행사에 참석해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김 작가를 반갑게 맞아줬다. 동행한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바쁜 와중이라 간단한 눈인사로 대신했다.

"몇 시여? 3분 전인디. 왜 다들 안모여? 빨리 나오라 그랴."

보존회장의 호출이 떨어지자 잠시 분산됐던 임원들이 모였다. 금세 행렬이 갖춰졌고 별좌와 풍물패는 악기를 연주했다. 선두에 유림복장을 한, 세 명의 임원들이 바로 앞 은산천으로 '영기'를 들고 행진했다. 그 뒤를 따르는 풍물패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가락을 계속 울렸다.
   
      은산천에서 물봉하기를 한다. 절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모습.
  은산천에서 물봉하기를 한다. 절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모습.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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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돗자리를 펴고 음악에 맞춰 세 번의 절을 한다. 별신제 기간 동안 마실 술을 담그기 위해 물을 봉하고 뜨는 의식이다. 본격적으로 물을 기르기 전, 하천 상류에 무녀가 미리 만든 금줄을 친다. 부정한 것을 걸러 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물이 봉해지면 큰 양동이로 물을 한가득 담아 다시 행렬을 맞춰 화주집으로 돌아간다. 본래 화주집은 매해 마을 무녀의 집을 사용했지만, 지난해에 새로 공간을 지어 올해부터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주는 별신제 기간 동안 필요한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제공한다. 최소 300~400명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빨리 천막 치고 누룩이랑 밥 가져와! 신발 벗고 올라와야 혀!"

회장은 또다시 호통을 쳤다. 이번에는 마을의 젊은 장정들이 일사불란 하게 움직였다. 올해 새로 임원이 된 두 명의 장정은 빠른 속도로 큰 천막을 바닥에 깔고 누룩과 밥을 섞기 시작했다. 화주집에 놨던 술 담을 항아리가 워낙 커서 누룩과 밥의 양도 만만치 않다.

항아리를 모시는 방이 따로 있는데, 뒤에는 병풍이 쳐져 있고 항아리 입구엔 하얀 창호지와 금줄로 덮여 있다. 방에는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 때문일까, 거룩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신비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명확하진 않은 어떤 기운이 감돌았다.
       
      갓 지은 밥과 누룩을 섞고 있다.
  갓 지은 밥과 누룩을 섞고 있다.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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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비교적 젊어 청년층으로 구분되는 이 두 장정은 뜨거운 김이 살벌하게 올라오는 갓 지은 밥과 누룩을 열심히 섞었다. 그들이 섞은 누룩과 쌀은 섞여지는 대로 항아리에 길러온 물과 함께 담가졌다.

항아리를 채우고 다시 깨끗한 창호지와 금줄로 봉했다. 임원들은 다시 대열을 갖춰 절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순간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별신제의 첫 번째 의식은 이렇게 끝이 난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화주집에서 미리 마련된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다른 지역에서 왔을 법한 참석자는 없는 듯했다.

고봉밥에 콩나물국과 나물 반찬의 조합은 부족해 보여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언제 먹어도 '꿀맛'이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도 아니고 아침밥을 챙겨 먹지도 않지만 이날은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정말 '뚝딱'하고 비웠다. 
 
       항아리가 봉해지자 대열을 갖춰 절을 준비 하고 있다.
  항아리가 봉해지자 대열을 갖춰 절을 준비 하고 있다.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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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수고했고 저기 지화랑 금줄 있으니께, 하나씩 가져가 집에다 달아놔."

첫 의식이 끝난 후엔 참석자 모두에게 지화와 금줄을 나눠줬다. 각자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쉽게도 챙기질 못했다. 그래도 올 한해 평안하길 바란다.

#2. 장승을 깎다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향했다.

"지금 장승 맹글러 나무하러 가는겨, 동서남북 할껑게 4그루 할껴, 근디 미리 싹 봐논 게 있어서 다듬기만 하면 돼."

은산별신당으로 들어가는 어귀엔 멋스런 장승들이 세워져 있다. 거창한 예술적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은산만의 살아있는 장승 표정이 인상적이다.
 
     장승깍기
  장승깍기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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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은 나무를 글라인더로 갈아서 표면을 다듬어 주고 큰 조각도로 얼굴을 표현한다.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 제작자의 의도가 100% 반영된다.

제작자의 손끝이 어디인지에 따라 장승의 콧대와 눈의 깊이가 정해진다. 조각이 끝난 후 먹을 갈아 장승의 눈과 갓을 칠해 준다. 드디어 장승이 완성 됐다. 역시 장승은 무섭게 생겨야 하나 보다.
 
     장승의 표정이 완성 되자 먹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장승의 표정이 완성 되자 먹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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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평소와 상쇠, '집 굿' 흥을 돋우다

별신제 첫날 저녁부터 3일 동안은 저녁 7시부터 2시간가량 집 굿 행사를 치른다. 임원집을 차례대로 순방하며 그 집의 잡귀를 물러가게 하고 복을 빌어주는 굿이다. 임원이 아니더라도 은산면민이 따로 신청하면 방문한다.

별좌는 풍물패를 이끌고 미리 약속 집들을 돌아다닌다. 풍물패의 평균연령은 67세이다. 그중 눈에 띄는 백발의 상쇠가 있다. 40년째 은산의 상쇠를 맡고 있는 그는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꽹과리 소리만을 울렸다.
 
        보존회장 집에서 시작된 ‘집굿’
  보존회장 집에서 시작된 ‘집굿’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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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집에 도착했다. 꽹과리의 박자가 달라졌고 태평소 선율도 뒤바꼈다. 장구와 북은 상쇠의 박자에 맞춰 장단을 맞췄다. 풍물패는 상쇠부터 태평소, 장구, 북, 징의 순서대로 집안에 발을 들인다.

다시 신명 나게 각자의 악기를 두드리며 존재를 뿜어낸다. 굿이라는 의식 자체가 영적 존재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케 하는 것이라 했던가, 집 굿을 요청한 집주인도, 굿을 진행한 별좌와 풍물패도, 무녀도 엄숙한 듯한 분위기 속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렇게 화복을 비는 듯했다.

'집 굿'은 상당행사가 시작되기 전날 밤까지 이어진다. 별신제가 치러지는 4박 5일 간은 온 마을에 풍물소리가 요란하게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4. 종이를 입에 물고 상당행사에 나선 행렬

나흘 째 되는 날이던 일요일 오후 4시엔 드디어 본제를 위한 상당행사가 시작됐다. 상당행사란 화주집에서 준비해준 제수를 별신당의 제단에 올리는 걸 뜻한다. 상당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행렬이다.

상당행렬은 진풍경을 연출하는데 일렬로 줄지어서 장군복을 입거나, 말을 타고, 무녀들은 작은 춤사위 동작을 되풀이하며 행렬을 이끈다. 풍악을 울리는 사람, 제수를 나르는 사람, 깃발을 드는 사람들도 각자의 복장을 갖춰 입고 뒤를 따른다.

별신당 앞 나무에서 출발하여 은산면 한 바퀴를 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인근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생들과 군인들이 행렬에 참가했다. 대부분이 고령인데 '젊은 피'가 더해지며 평균연령이 40대로 낮아진 듯 했다.
 
       상당행렬
  상당행렬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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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행렬이다. 모두들 입에 백지를 물고있다. 제에 쓰이는 꽃단도 보인다.
  상당행렬이다. 모두들 입에 백지를 물고있다. 제에 쓰이는 꽃단도 보인다.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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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에 선 사람들은 입에 흰 종이를 물고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한 행위다. 이 들은 별신당에 도착해 제수를 올릴 때 비로소 백지를 빼낸다. 여러 조화와 음식들이 제단에 올려지고 깃발을 세우면 상당행사는 끝이 나고 몇몇의 장정들이 미리 잡은 돼지 한 마리를 옮긴다.

돼지는 배를 하늘을 향하게 뒤집어 놓고 가운데를 갈라 내장은 정리한 후 칼을 꽂은 채 바로 옮긴다. 그 모습이 사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제물로 바쳐진다 생각하니 다른 느낌(신성하다고나 해야 할까?)으로 보이기도 한다.

돼지를 마지막으로 제단이 다 채워졌다. 참석자들과 임원들이 별신당 앞 작은 광장에서 풍물을 다시 울리며 한바탕 놀이를 시작했다.

#5. 한 잔으로 시작해 주전자로 마무리하다

"어이 와서 벌주 한잔 혀, 술이 기가 맥혀. 술 잘 마시게 생겼고만, 술 좋아하지?"

어르신의 권유로 술은 한 잔으로 시작했으나, 한 주전자로 마무리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해진 것이라고 봐야 하나? 개인적으로 술을 잘 마시게 생겼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 노인의 질문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했다.

이제부터 진짜 술판이다. 두부김치와 벌주가 준비된 테이블에 올라왔다. 한 잔씩 술을 주고받으며 서로 인사하기 바쁘다. 마을 풍물패는 신나게 악기를 두드리고 주민들은 상쇠에게 몇 푼의 돈을 꽂아 준다. 옛 시골마을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더 마시고 싶었으나 마침 무녀가 옆 테이블에 있었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걸었다.

#6. 별신제 무녀의 짧은 이야기

"내가 무녀를 한 지가 30년이 넘었지. 나는 지금 예능 장학전수조교로 있고 내 스승님이 계셔. 은산면 예능보유자 스승님. 우리 스승님이 그 어려운 시절부터 이 명맥을 이어왔는디, 나 말고도 조교가 두어 명 있었는디 다 죽었어. 그래서 내가 또 새끼 치듯이 제자를 키워서 다 우리 스승님한테 데리고 갔지. 우리 스승님이 원래 몸이 좋지 않아서 여기 안 오시는디 올해는 오셨고만, 아무튼 이 굿이라는게 묘한겨, 힘들긴 혀도 매해 허면 한번 하고 나면 시원혀. 예수쟁이들도 왠지 안 받으면 심심허니께 그냥 해달라고 하는 집도 많어, 예수를 믿든 부처를 믿든 굿은 그냥 자기 속 편할라고 받는겨. 위안이 되는 거지."
 
     왼쪽에서 세 번째에 서 있는 이일구 무녀. 이 무녀가 전수자다.
  왼쪽에서 세 번째에 서 있는 이일구 무녀. 이 무녀가 전수자다.
ⓒ 김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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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무녀의 춤사위와 풍물소리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이란 것이 언제부터인지 종교적 이념과 대립되어 미신으로 치부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무교인 나에게 굿은 실제로 효능의 여부를 떠나 이어나가고 싶은 뿌리 같은 전통이다.

#7. 복신과 도침에 고두백배를 올리다

상당행렬이 신당의 제단을 꾸렸다면 이제 본 제사를 지낼 순서다. 본 제사는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진다. 별신당엔 세 장의 그림이 걸려있다. 왼쪽부터 복신장군과 산신령, 도침대사 순이다. 은산별신제는 이분들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산신령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두 영정의 주인공은 뭘 하던 분들일까? 은산별신제의 기원은 뭘까? 보존회 사무장은 귀찮은 듯 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본 제를 지내기 위해 유림복장을 하고 있다.
  본 제를 지내기 위해 유림복장을 하고 있다.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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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료집에 다 나오는 이야긴데 왜 또 물어보는지 모르겄네. 부여가 백제 땅인데, 망하고 다시 백제를 일으키려고 복신장군이랑 도침대사가 공을 들였단 거지, 근데 뭐 결국엔 당나라한테 치이고 신라한테 치여서 다 죽었지만… 백제를 다시 살리려고 했던 인물들이지.

근데 옛날에 은산면에 역병이 돌아서 사람이 많이 죽었어, 근데 어떤 노인 꿈에 장군이 나오더니 자기랑 부하들 백골이 산중에 흩어져 있다는겨, 그래서 그 백골을 수습을 잘 해주고 관리를 해주면 역병을 없애주겠다고 한거지. 그래서 노인이 마을사람 죄다 불러놓고 꿈 얘기를 했을꺼 아녀? 그 뒤로 산에 가보니까 진짜 백골이 있고 다 모아서 제사를 지냈더니 역병이 싹 가셨다는 전설이지.

그 뼈가 백제부흥군이래. 그래서 저 두 분 모시는거고. 올해는 소제라서 안 왔는데, 짝수년인 대제 때는 복신장군 아들이 일본에 묻혔는데 그 사람을 일본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 줘.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 같이 제사를 지내. 우리도 번갈아 가고"  

  
     고두백배를 올리는 모습.
  고두백배를 올리는 모습.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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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

원수관계인 두 장군이 산신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으니 죽어서 화해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별신당 앞은 온갖 지화들로 채워졌다. 꽤 많은 깃발들도 세워지고 드디어 본제가 시작됐다. 축문 읽는 소리가 들렸다.

유림복을 입은 사람들과 장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별신당 정면에 대열을 갖추고 한번 절을 할 때마다 머리를 세 번씩 흔든다. 이는 고두백배라 불리며 은산별신제 만의 특징이다.

고두란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 최대한의 경의 표시를 한 후 빠른 속도로 머리를 세 번 조아린다. 백배는 절하고 일어나기까지 백번 하는 것으로 고두백배식이면 한번 절을 할 때 마다 3번의 절이 된다. 이걸 33번 반복하고 1번만 더 채우면 백배가 된다.

실제로 고두백배가 전승되는 지역은 은산별신제가 유일하다고 한다. 오른쪽에는 별좌가, 그리고 그 옆에서는 풍물패가 행렬을 갖추고 있었다. 소리가 끊기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갱 그라갱 갱갱갱', '투 닥닥 둥 투다닥', '징~~' 하며 이어졌다.

#8. 마지막 날, 대제를 기약하며

본제가 끝난 다음날 저녁엔 또 한 번의 제사가 치러진다. '독산제'라고 하는데 음식을 장만하느라 고생한 화주가 무사히 별신제를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 신께 감사를 올리는 제이다. 독산제는 화주가 별좌와 풍물패만 대동하고 조촐하게 지낸다.
 
       독산제를 지내는 모습
  독산제를 지내는 모습
ⓒ 은산별신제 보존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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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제가 끝나갈 무렵, 별좌와 풍물패는 별신제의 끝을 알리는 장승제를 지내러 간다. 모든 임원들이 모여 은산면의 동서남북에 새 장승을 세운다. 여기서도 요란하면서도 고상한 음악에 '고두백배'가 나온다.

'은산별신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9호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전통이 맥을 이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마을의 수호를 지키기 위해 은산면 사람들은 올해도 한바탕 풍악을 울렸다. 백제부흥의 염원이 담겨 있는 풍악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사이트부여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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