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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보광사를 둘러보고 잔불제거 작업을 하러 산으로 향한 잔불제거반원들 뒤를 쫓아 보광사 대웅전 뒤 담 위로 올라섰다.

영랑호가 지척인데, '속초 보광사(검색에 보광사만 입력하면 전혀 다른 사찰이 노출된다. 반드시 속초 보광사로 검색해야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주변 소나무 숲은 모두 탔다. 심지어 영랑호를 한바퀴 둘러 만개한 벚나무도 피해가 심각했다. 향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철쭉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제 호수와 어우러진 모습은 제법 오랜 세월 누군가의 사진에서나 만나게 됐다.
  
속초 보광사 뒤 소나무 숲 이 소나무 숲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보광사가 보존됐으니 가볍게 산불이 스쳐지나갔다고 믿었다.
▲ 속초 보광사 뒤 소나무 숲 이 소나무 숲으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보광사가 보존됐으니 가볍게 산불이 스쳐지나갔다고 믿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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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와 2차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할 때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던 일들이 숙소를 구하고 나서야 생생하게 그려졌다. 잠시 숨을 고르며 스마트폰 녹음기를 작동했다. 그리고 생각난 모든 걸 녹음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분명 이 녹음이 후속기사를 쓸 때 요긴하리라 생각했다.

"소방차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거야? 왜 여긴 안 오는데?"
"이럴 때 군인들이라도 나와야 되는 거 아냐? 도대체 군인은 뭐하는데?"
"아이고, 저걸 어째 결국 불이 붙었잖아. 아이고 이걸 어떡해? 어떻게 하냐고?"


대답해 줄 수 없는 피맺힌 절규… 소방인력인들 왜 지원하고 싶지 않겠나. 어딘가에서 더 큰 피해를 미리 차단하려 고군분투 했겠지. 하지만 지금 이들로서는 누군들 원망스럽지 않겠나. 그게 스스로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종적인 반응 아니겠나.

남의 일 같던 절망적인 사건이 현실로 닥치면 사람은 먼저 원망부터 한다. "왜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느냐?"라거나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와 같은 반응… 그리고 흥정을 한다. 그게 신이거나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누군가와 "이번만 도와주면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는 약속은 곧 흥정 아니던가. 그리고 절망 끝에 체념하기에 이른다.

지난 밤 연세 드신 아주머니를 부축해 언덕을 내려가 안전지대로 피신하게 도와드렸다. 당장 집으로 불이 옮겨 붙을 위급한 상황에서는 속초시문화회관 직원들한테 정확하게 물을 뿌려야 할 위치를 일러주며 함께 물을 뿌렸다.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했던 경험과 속초소방서에서 받았던 화재진압교육이나 위기대처훈련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다시는 치르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저 집 지금 물 뿌리지 않으면 열기 때문에 곧장 불이 붙어요. 타이어를 왜 저기다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타이어에 불이 붙었군요. 타이어에 붙은 불은 끄기 힘들지만 그 옆 벽에 뿌리면 열기는 막아 불은 안 날 겁니다."

그 순간 누군가 근처 밭에 꽂혀 있던 철근 하나를 뽑아들더니 불붙은 타이어를 끄집어내려고 접근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자칫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그 집 주인은 내가 보는 앞에서 한참 전에 피신했다. 집 주인도 아닌 사람이 그 순간 그렇게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치울 수만 있다면 좋지만 안 되면 곧장 나와요. 그리고 혹시 빈 캔 같은 거 보이면 바로 피신해요."

경험으로 내가 그에게 일러줄 수 있는 안전한 행동수칙은 그것뿐이다. 답답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빈 캔'이라 말한 건 스프레이 방식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걸 말한다. 헤어스프레이와 모기약통, 녹 제거제 등 얼마나 많은 캔을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나. 사용한 빈 캔이 불 속에선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땅을 파헤쳐 숨은 불씨까지 찾아내야

녹음을 마치자 걸음을 옮겼다. 새까맣게 재로 변한 땅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기처럼 재가 날렸다. 먹물을 뒤집어 쓴 모양으로 서 있는 소나무껍질은 손으로 건드리니 맥없이 부서졌다. 정말 이렇게 오랜 시간 불길이 머문 숲의 흔적은 난생 처음 목격한다. 대체로 불길은 표면을 스쳐 지나가기에 산불이 지나갔어도 이 정도로 땅거죽까지 태운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소나무 숲 잔불진화 소나무 숲에 들어서자 잔불진화작업에 투입된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 소나무 숲 잔불진화 소나무 숲에 들어서자 잔불진화작업에 투입된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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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잔불진화 대부분 남녀 1명씩 조를 이뤘으나 남자끼리 조가 편성된 팀들이 있다. 이들은 깊은 곳에 숨은 잔불을 파내는 일을 했다.
▲ 소나무 숲 잔불진화 대부분 남녀 1명씩 조를 이뤘으나 남자끼리 조가 편성된 팀들이 있다. 이들은 깊은 곳에 숨은 잔불을 파내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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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잔불진화 깊이 박힌 잔불을 제거한 작업팀이 이동하자 남녀 1조가 된 팀이 잔불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 소나무 숲 잔불진화 깊이 박힌 잔불을 제거한 작업팀이 이동하자 남녀 1조가 된 팀이 잔불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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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정 구역에서 불이 머물면 숲을 초토화시키지만 이번 산불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소나무만 해도 그렇다. 대체로 산불이 나도 표면을 훑고 불길이 지나가거나, 소나무 밑둥치 일부분만 그슬려 놓는데 이번엔 껍질까지 태웠다. 

더구나 별다른 매개체가 없는 상태에서 20m 가까운 소나무 끝부분 잎까지 모두 태운다는 건 현장을 직접 안 봤다면 거짓말이라고 했겠다. "불길에 솔잎이 누렇게 마르지 어떻게 다 타버려"라 했겠지만, 이젠 산불현장에서 반드시 예상한 그대로 불이 움직이진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보광사를 빙 둘러 싼 솔숲이 불과 10m 정도 차이로 생사가 갈렸다. 사람으로 치면 줄을 잘못 서 한쪽은 살고, 한쪽은 버림받은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이는 결국 보광사를 보호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소방공무원들이 보광사 인접 소나무를 방어선으로 삼고 물을 집중적으로 뿌릴 수밖에 없었다는 부인 못할 증거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등을 향해 몇 걸음 옮기는 동안 불길이 지나간 형태에 따라 숲은 완전히 다른 모양을 드러냈다. 앞에 버프로 눈만 빼고 얼굴 전체를 가린 여성이 괭이로 땅을 파자 숨어있던 불씨가 연기를 피어올린다. 좀 더 괭이질을 해 뿌리가 드러났다. 거기에 물통을 진 진화대원이 물을 뿌려 더 이상 연기가 안 나는 걸 확인하고서야 흙을 끼얹어 다시 파묻었다.

잘린 소나무는 물론이고 살아있던 소나무도 땅 속 뿌리에 불씨가 남아있어 조금이라도 연기가 피어오르면 반복적으로 이런 작업을 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이 자그마한 산에 투입되었는지 시선을 어디로 돌리든 잔불 진화를 하는 이들이 보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라야 아무리 불에 타 시야가 더 넓어졌다 하더라도 소나무가 울창한 이런 곳에선 극히 적다. 그런데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원이 30명이 훌쩍 넘었다.

또 다른 산불진화의 주인공 '잔불진화대원들'
  
잔불진화반원들 먹으로만 그린 그림이랄까? 소나무 숲이 새까맣게 불탄 현장에서 행여라도 숨은 잔불이 있을까 살피며 잔불진화작업을 하는 진화반원들.
▲ 잔불진화반원들 먹으로만 그린 그림이랄까? 소나무 숲이 새까맣게 불탄 현장에서 행여라도 숨은 잔불이 있을까 살피며 잔불진화작업을 하는 진화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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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불진화반원들 누가 이 달콤한 봄날, 이들을 이곳으로 나오도록 했나.
▲ 잔불진화반원들 누가 이 달콤한 봄날, 이들을 이곳으로 나오도록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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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불진화반원들 삽으로 흙을 뒤집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씨에 물을 뿌려 불을 끈다.
▲ 잔불진화반원들 삽으로 흙을 뒤집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씨에 물을 뿌려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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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불진화는 2인 1조로 움직였다. 남자는 물통을 지고 여자는 괭이나 삽으로 불씨를 찾아냈다. 때때로 깊게 박힌 불씨를 찾아 땅을 팔 때는 남자들끼리 한 조가 된 팀이 나섰다.

식목일에 청명(淸明), 그것도 금요일이다. 여기 나온 이들 모두 공무원은 아니란 건 옷차림으로도 알 수 있다. 의용소방대원 복장을 한 이도 있으니 어쩌면 상당수 의용소방대원이 미쳐 복장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달려왔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할 때 출동할 때마다 항상 복장을 갖출 수는 없었다.

의용소방대는 자원봉사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각 소방서에 소속돼 훈련과 교육을 받고 각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현장에 출동하는 즉시 지휘를 받아 활동한다. 이렇게 출동했을 땐 활동한 시간만큼의 보상을 받기에 자원봉사자라고는 안 한다. 이 회비도 활동비만으로는 부족해 사비를 지갑에서 꺼내야 되는 대원도 40% 이상 된다. 출동 자체가 강제된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과 같은 대규모 재난상황에 출동하는 또 다른 봉사단체가 있다. 의용소방대와 비슷한 단체인 자율방범대다. 이 두 단체는 다른 점이 있다. 자율방범대는 복장도 자비로 구입하지만 의용소방대는 모두 지원받는다.

몇 년 전부터 의용소방대엔 대원 모두에 충분한 수량은 아니지만 방화복과 불에 견딜 수 있는 방화장갑, 방독마스크가 지급됐다. 소방서에 이런 특수장비가 남아서 의용소방대까지 챙겨준 건 아니다. 부족하지만 의용소방대원은 현장에서 소방관의 보조원이 아닌 대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인력이 절대부족한 소방서의 또 다른 동지로 봄이 옳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 이젠 어느 방향을 둘러봐도 하늘로 치솟는 연기는 볼 수 없지만 하늘에선 제법 큰 잔불이 남은 곳을 확인할 수 있겠다. 대부분 고성 방향에 집중돼 물을 쏟아붓는 걸 알 수 있다. 밤중엔, 그것도 바람이 불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선 출동할 수 없던 소방헬기가 새벽에 숙소에서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현장에 출동했다는 걸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산림청이나 소방방재청 소방헬기는 물론이고 위장색의 군용헬기도 '밤비 버킷(Bambi bucket 헬기에 줄을 매달아 쓰는 물통)'을 달고 하늘을 날았다. 그런데 형태도 남다른 흰색 헬기는 어디 소속인지 모르지만 눈에 들어왔다. 경찰헬기는 아닌 거 같은데… 긴급한 상황에 이동하는 정부 어느 부처의 헬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도 풍경 속 철조망의 주인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지옥도가 있다면 이와 같겠다. 온통 검은 주검들,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막 능선으로 올라선 진화대원도 이 광경에 그대로 망부석처럼 멈춰 섰다. 그도 이런 현장은 처음 목격했나보다.
  
지옥도 능선으로 올라선 잔불진화작업반원이 펼쳐진 광경에 놀라서 멈춰 섰다.
▲ 지옥도 능선으로 올라선 잔불진화작업반원이 펼쳐진 광경에 놀라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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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산 산책로 철조망 어떤 헛된 욕망이 이 자연, 나지막한 소나무 숲 산책로에 보기에도 사나운 철조망을 쳤는가.
▲ 야산 산책로 철조망 어떤 헛된 욕망이 이 자연, 나지막한 소나무 숲 산책로에 보기에도 사나운 철조망을 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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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 이 장면을 담을 때 오른쪽으로 뭔가 눈에 들어왔다. 155마일 남북을 가로막던 장벽도 거둬내는 시기에 속초시민들이 산책로로 이용하는 야산 능선에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이는 날카로운 철조망이라니? 어떤 욕심이 여기 이 능선에 철조망을 쳐야 한단 말인가?

확인되지 않은 추측은 여기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이 철조망을 친 이유는 분명 자신들의 소유란 주장을 과시하려는 욕망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고 불당골을 향해 내려서려는데 철조망은 능선을 따라 줄곧 이어졌다.

아, 저 진화반원들은 잔불제거를 위해 위태롭게도 이 철조망을 넘나들었었구나. 오래 살아야 100년 인생인데 이렇게 욕심을 부려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작업을 마친 이들이 다시 이 철조망을 넘어야 집결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할 텐데…
  
또 다시 희망을… 민들레 한 포기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있을까. 거긴 희망을 일깨워준 너의 영토가 맞다!
▲ 또 다시 희망을… 민들레 한 포기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있을까. 거긴 희망을 일깨워준 너의 영토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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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철조망을 넘어 불당골로 내려서는데 맑게 갠 하늘을 향해 활짝 핀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만나게 될 거란 암시라도 주려는 듯 민들레는 용케도 주변이 모두 타버린 화염 속에서 살아나 꽃을 피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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