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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진 나무들 곁에서 시민들이 울고 있다.
▲ 밑동이 베어진 나무들 베어진 나무들 곁에서 시민들이 울고 있다.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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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3월 19일 한 채의 나무집과 두 동의 텐트, 한 대의 태양열 작업 차량만 가지고 비자림로 확장공사 3구간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는 숲에서 24시간 생활하면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에 의해 무참히 벌목되는 현장과 제주 제2공항으로 이어지는 난개발의 현장을 알리기 위해 시민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전날인 18일 오전, 제주도정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비자림로 공사재개를 20일부터 시작한다고 브리핑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들은 "3구간이 아닌 2구간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오늘은 페이퍼 작업만 할 예정이다" "공사 자재만 들어올 것이다" 등 추측성 계획만 발표하다가 정작 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시민모니터링단은 제주도정이 2구간만 공사를 시작할지, 2구간과 3구간을 동시에 할지를 고민한다는 소식에 매일 긴장하며 밤잠을 설쳤다.

사흘이 지난 23일 새벽, 우리는 2구간 시작점인 대천교 입구에 각종 공사 장비들이 들어왔다는 제보를 듣고 서둘러 현장으로 나섰다. 2구간과 3구간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살펴보니 두 곳 모두 집게 장비(굴착기)가 대형트럭에 실려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7시가 넘어가자 비자림로 확장공사 재개 소식을 들은 언론사, 방송사의 차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3월 23일 오전 8시30분, 드디어 전기톱이 움직였다
  
비자림로 숲에서 평화롭게 살던 아름드리나무가 밑동을 잘린 채 누워있다.
▲ 50여 년의 생(生)이 사(死)로 바뀐 순간 비자림로 숲에서 평화롭게 살던 아름드리나무가 밑동을 잘린 채 누워있다.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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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30분, 20여 명의 인부가 2구간도, 3구간도 아닌 1구간 끝부분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를 엔진톱으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많은 언론사의 카메라가 몰려들자 현장 소장은 인부들을 카메라의 시야에서 가려질 만한 위치로 이동시켜 공사를 재개했다. 

그런데도 촬영 기자들이 제대로 된 장면을 잡기 위해 움직이자 현장 소장은 "시민단체의 반대 행위로 공사를 중단한다"며 기자들에게 "찍을 만큼 찍었으니 이제 가도 되지 않냐"고 물었다. 이어 공사 중단을 알리고 인부들을 밖으로 이동시켰다. 공사 인부들이 철수했지만, 또 올 수 있음을 고려해 우리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기자들이 떠나자 현장 소장과 공사 인부들이 현장으로 속속 돌아왔고, 다시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던 시민이 튼실한 나무를 잡아 부러뜨리는 거대한 집게 장비를 발견하더니 훅하고 그 앞으로 뛰어들었다. 공사는 다시 중단됐고 현장 소장과 인부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민모니터링단과 비자림로 공사재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은 한 명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우리가 굶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여 음식을 싸 들고 온 시민들도 계셔서 조금이나마 허기진 배를 채웠다.

집게 장비에 뛰어들었다, 나무 위로 올라갔다, 엔진톱을 끌어안고 울었다
 
숲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나무 위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 나무 위로 올라간 시민 숲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나무 위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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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쯤 되자 현장 소장과 인부들이 다시 나타났다. 인부들은 오전과 달리 거친 모습을 보였다. 이를 관망할 수만은 없었던 시민들이 한 명씩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때 공사 인부 두 명이 나무 위에 있는 시민을 보며 "올라간 나무만 빼고 다 잘라"라고 했다. 인부들은 오전부터 나무를 베어내던 곳과 천미천의 반대쪽 둘로 나뉘어 작업했다. 한쪽은 시민들이 나무에 올라가 있어도 아랑곳없이 나무를 베어냈다. 또 한쪽은 통곡하는 시민 한 명을 공사인력 두 명이 고착시키고 나무를 베어냈다.

나무 위에 올라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여성 시민 한 명이 다시 땅 위로 내려왔다. 바로 앞에서 엔진톱을 휘둘러대는 인부 한 명의 엔진톱을 빼앗아 끌어안은 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엔진톱을 두고 인부와 시민 사이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시민은 벌목을 멈추고 현장에서 철수하면 엔진톱을 돌려주겠다고 소리쳤다. 결국 모든 인부와 장비가 철수되면서 나무들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던 작업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때 시각이 오후 3시 40분 정도였다. 시민모니터링단은 그들이 다시 올까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오후 4시 30분까지 현장에 있다가 철수했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었다. 누군가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올라가는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실수를 범했다는 뜻이 된다. 그 지경까지 갔다면 소비자도 실수했고, 기업도 실수했고, 정부도 실수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숲의 친구들이 법정까지 가고, 환경 운동가들이 소비자들의 의식을 일깨우려고 애써왔지만 결국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땅 소유자의 책임을 회피해 왔고, 정부는 정부대로 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거부했다는 뜻인 것이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나무에 오른다." - <나무 위의 여자> 중에서

현장 소장이 말한 하루 작업 목표량 60미터였지만, 실제로는 100여 미터의 숲이 사라져 버렸다. 

공사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진행됐다. 제주도정 건설과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나와 작업 지시를 현장 소장에게 했다. 집게 장비는 쓰러진 나무를 움켜잡더니 들어올려 멀리 내동댕이쳤다.

하루만에 100여 미터 숲이 사라지고... 학살 현장을 지켜보던 노루  
 
무성하던 숲이 벌거숭이가 되어가면서 나무들의 밑동이 그대로 드러났다.
▲ 숲이었던 곳은 나무들의 무덤으로 변해갔다 무성하던 숲이 벌거숭이가 되어가면서 나무들의 밑동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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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하는 나무라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작업 인부의 전기톱을 빼앗아서 부둥켜안은 시민이 통곡하며 외친 말이다.
▲ 그녀는 전기톱을 멈추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말 못 하는 나무라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작업 인부의 전기톱을 빼앗아서 부둥켜안은 시민이 통곡하며 외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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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비자림로 확장공사 현장에서 잘려져 나가고 있는 나무들의 수령은 어린나무부터 길게는 40~50년 된 나무들이다. 그런 나무를 베어낸 제주도정은 식목일에 나무 심기 행사를 하면서 작대기보다 더 가는 나무들을 심고 있다. 

방송은 비자림로 확장공사 구간을 '삼나무 숲'이라고 칭한다. 과연 삼나무만 있을까?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비자림로 확장공사 구간에는 곰솔, 삼나무, 산뽕나무, 밤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들과 큰 낭아초, 뱀무, 산수국, 등심붓꽃 등 242종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노루, 제주 족제비, 제주 등줄쥐, 관박쥐 등 7종의 포유류는 물론 꿩, 멧비둘기, 뻐꾸기 등 16종류의 새들과 검은 메뚜기, 물결나비 등 51종의 곤충들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과 서로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 외에도 제주 도롱뇽, 청개구리, 유혈목이 등 4종의 양서류와 6종의 파충류가 살고 있다. 

마치 '학살의 현장'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엔진톱과 집게 장비가 동원돼 나무 밑동을 베어내고 비틀어 부러뜨리던 그 날, 필자는 자신의 삶터를 잃고 베어져 나가는 나무를 바라보며 슬피 울던 노루를 똑똑히 목격했다.

베어진 나무를 하나하나 세어봤다... 난 너무 순진했다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재개된 대천교 주변 벌목 현장으로 들어온 시민들이' 비자림로를 지켜주세요' 손팻말을 들고 호소하고 있다.
▲ 비자림로를 지켜주세요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재개된 대천교 주변 벌목 현장으로 들어온 시민들이" 비자림로를 지켜주세요" 손팻말을 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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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 확장공사 현장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도 너무나 막연했구나' 싶었다.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한 첫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숲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현장 소장이 말한 하루 작업 범위 60m, 그 60m 범주 안에 사는 나무가 몇 그루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 속도라면 전체 구간에 있는 나무를 다 베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궁금해졌다. 

비자림로 공사재개로 하루 만에 300그루가 잘렸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전체 구간을 곱해보고는 덜컥 겁이 났다. 1구간과 2구간은 숲이 깊지 않고 방품림 수준인 것을 고려할 때 벌목 작업에만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전 구간에 나무가 모조리 베어지는데 고작 일주일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언론은 공사가 중단된 현장에서 잘려나간 나무의 수량을 900여 그루라고 보도했다. 제주도정은 이번 공사에서 총 2000그루를 자른다고 했는데, 공사가 시작된 3월 20일 첫날을 시작으로 6일 동안 나무들이 잘려나간 3구간 숲에서 둥지를 틀고 기거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지난해 베어져 나갔다고 알려진 900여 그루의 숫자는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나무가 있었음을. 

언론에 나온 900여 그루라는 숫자는 수령이 40~50년 된 굵은 나무만 말하는 것이었다. 더 젊은 나무와 어린나무들은 배제됐다. 필자도 그저 언론이나 도정에서 말해주는 수치만 머릿속에 담고 있었고 의문을 품지 않은 채 배제를 하는 실수를 했다. 

시민모니터링단 활동을 같이하는 동료에게 이야기하자 실제로 세어보자고 했다. 작업이 끝난 현장에 곧바로 들어가 하나하나 셈하니 500그루 정도가 베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셈을 하기 어려운 어린나무는 제외했다. 다음날은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나무 밑동에 하나하나 번호를 써가며 수량을 세어보았다. 보이는 밑동은 총 504개였다. 공사 장비에 깔려 흔적을 찾기 힘든 어린나무들과 나무들을 쌓아놓은 나무 무덤 밑에 깔린 둥치들은 셈하지도 못했다. 

제주도정의 '비자림로 기본 및 실시설계보고서'를 보면 삼나무는 폐목 처리하고 소나무 등 기존 수목은 이식 후 조경수로 활용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나무의 목숨을 엔진톱으로 쳐내고 토막 냈고 뿌리째 뽑아버렸다. 이식 작업은 이뤄지지 않은 채 말이다.

누구라도 좋다, 현장으로 와달라
 
민둥이 잘린채 길게 땅에 눕혀진 나무들은 다시 전기톱으로 토막내어진다
▲ 토막내어지는 나무들 민둥이 잘린채 길게 땅에 눕혀진 나무들은 다시 전기톱으로 토막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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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정의 비자림로 확장공사로 많은 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그 숲에서 살던 생명이 죽거나 쫓겨나고 있다. 우리가 시민모니터링을 하는 이유는 힘없는 시민 몇 명이 모여 공사재개를 막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주민들의 불편을 개선하면서 생태계를 잃지 않고 제주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는 방안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비자림로 벌목 작업은 여론에 의해 중단된 상황이다. 제주도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다리 공사를 진행하며 여론이 식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현장에 있는 열 명 남짓 소수만으로는 공사를 중단시키기 어렵다. 누구라도 좋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현장으로 달려와 줬으면 좋겠다. 못 오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비자림로 숲을 지킬 방법을 찾아서 해주길 간절히 호소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철 기자는 비자림로시민모니터링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자림로시민모니터링단, #비자림로를지켜주세요, #우리가사랑하는숲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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