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사는 외울 게 많아서 싫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그밖의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 하면 모종의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다. 이런 정서를 반영하는 글 중 하나가 지난 3월 8일 치 <조선일보>의 '역사 전쟁에 불붙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칼럼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사 전쟁을 시작했다. 3.1운동 100주년이야말로 민족주의적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이다.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문 정부의 최종 병기는 친일파 딱지다. 정부와 언론·학교·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총동원되고 있다. (중략) 방송마다 민족정기 특집으로 가득하다."
   
본문에 인용된 윤평중 칼럼.
 본문에 인용된 윤평중 칼럼.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역사 전쟁'이란 표현은 좀 과하다. 그런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역사 성찰'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문재인 정부가 주도한다고는 볼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사주'를 받아 과거 역사를 거론하면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성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새로운 인생 단계에 진입하기 직전에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사유 과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를 위한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공동체 차원에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 사회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발전할 때, 역사 성찰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일이 많다. 지금 한국이 그런 성찰에 빠져 있는 것은, 이 나라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미해결 사안을 그대로 두고 전진할 수는 없기에, 그 누가 딱히 선도하지 않았는데도 사회 전체가 그런 사유 과정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빨갱이'가 한국전쟁의 산물?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런 현상을 기획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역사 성찰의 범위가 너무 넓다. 일개 개인이나 집단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우리 사회를 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윤평중 칼럼은 지금 상황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잘못된 역사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잘못된 역사 전쟁임을 보여주고자 칼럼이 제시한 근거는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삼일절 100주년 기념사로 역사 전쟁에 불을 붙였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던 말'인 빨갱이라는 용어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로 규정했다. (중략) 해방 후 빨갱이라는 낙인이 정적을 공격하고 인권을 탄압한 도구로 악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빨갱이라는 비어(卑語)가 대중에게 각인된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단연 6.25 전쟁이다. 북한의 한반도 적화 시도가 초래한 민족적 참화와 국가 소멸의 공포야말로 빨갱이 트라우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윤평중 칼럼의 일부.
 윤평중 칼럼의 일부.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빨갱이라는 용어는 한국전쟁의 산물이건만 문재인 정부가 이를 친일 잔재로 오도하면서 역사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빨갱이는 친일 잔재'라는 주장이 됐으므로, 이런 논리를 내세우면서 역사 청산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도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빨갱이란 말이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는 윤 교수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다. 이 용어는 일본제국주의가 독립운동가들을 사상범으로 몰면서 나왔고, 일제 부역자인 친일파들이 '동지들'의 행동을 모방해 정치투쟁 도구로 활용하면서 해방 이후 더욱 더 확산됐다.

1948년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청산을 시도하자, 친일 보수세력이 구사한 전략 중 하나는 친일 청산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그해 8월 27일 치 <경향신문>에 따르면, 친일파들은 "반민족자를 처단한다는 자는 공산당 주구다"라는 삐라를 시내 곳곳에 살포했다. "국회에서 친일파를 엄단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빨갱이다"라는 삐라도 뿌렸다. 
 
본문에 인용된 <경향신문> 기사.
 본문에 인용된 <경향신문> 기사.
ⓒ 경향신문

관련사진보기

   
그뿐만이 아니다. 1948년 9월 24일 치 <동아일보>에 따르면,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반공국민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빨갱이란 말이 시내 곳곳에서 수없이 거론됐다. 이날 경찰은 반공대회 참가를 거부하는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면서 참석을 독려했다. 반민특위의 친일청산에 재를 뿌릴 목적으로 시민들을 반공국민대회로 몰아넣으면서 '말 안 들으면 빨갱이로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협박을 했던 것이다.

경찰들이 빨갱이를 운운하면서 서울 시내를 시끄럽게 했다는 사실은, 이 시기에도 이 용어가 대중의 뇌리에 각인돼 있었음을 증명한다. 한국전쟁 때 각인됐다는 윤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위의 <동아일보>에 실린 '반공국민대회, 반민법 반대가 목적?'이라는 기사는 반공과 빨갱이 논리의 진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민법(반민족행위처벌법)에 대한 친일 보수파의 악감정이 그런 논리에 응축돼 있었던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기사.
 본문에 인용된 <동아일보> 기사.
ⓒ 동아일보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한국전쟁 이전부터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을 빨갱이로 몰았다. 반면, 진보 진영은 상대방을 친일파로 인식했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친일파와 빨갱이가 반대 개념으로 양립돼 있었다. 그런데도 위 칼럼에서는 "빨갱이라는 비어가 대중에게 각인된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단연 6.25 전쟁이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결정적'이란 표현이 없었다면, 위 문장은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명백한 오류가 된다. 하지만, '결정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감으로써, 한국전쟁 전에도 대중한테 어느 정도 각인돼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확실히 각인된 것 같은 느낌이 독자의 머리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칼럼 필자가 '명백한 오류'라는 비판을 피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이란 말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친일파 대 빨갱이? '반북 대 빨갱이'가 차라리 합당하다

이는 윤평중 교수가 한국전쟁 전에 빨갱이론이 확산돼 있었음을 조심스레 의식하면서 칼럼을 썼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점은 칼럼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민족정기를 앞세운 문 대통령의 빨갱이론은 100년 집권을 노린 기억 전쟁의 방략이다. 현대 역사전쟁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정치적 경쟁 세력이 권력 쟁취를 위해 서로를 친일파와 빨갱이로 낙인찍어 숙청하던 치명적 상흔을 헤집었다."
 
정치적 경쟁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친일파와 빨갱이로 낙인찍으며 싸웠던 치명적 상흔을 거론했다. 명백히 해방 직후의 상흔을 거론한 것이다.

빨갱이론이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면, 빨갱이의 반대 개념이 친일파가 될 수는 없다. 반북(反北)이 빨갱이의 반대 개념이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위 대목에서 윤 교수는 '친일파와 빨갱이'를 반대 개념으로 거론했다. 이 두 개의 반대 개념이 대립한 시기는 해방 직후다. 한국전쟁 와중에 친일 청산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는 없었다. 친일파와 빨갱이가 상호 대립했던 시기를 언급했다는 것은 윤 교수 역시 빨갱이론을 한국전쟁 이전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친일파와 빨갱이가 가장 극명하게 대립한 시기는 한국전쟁 이전의 해방정국이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이 왜곡됐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청산도 잘못된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빨갱이론에 대한 윤평중의 비판'이다. 따라서 문재인의 빨갱이론이 잘못됐음을 전제로 하는 위 칼럼은 근본에서부터 오류를 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 청산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하다 보니 그 같은 인식상의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윤 교수 자신도 역사청산의 필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칼럼 앞부분에서 그는 "일제의 폭압 통치는 최악의 민족적 상처였다"라면서 "역사를 변조하고 한국어를 말살해 우리 얼까지 파괴하려 했다"라고 지적했다.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그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1945년 이후에도 역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7년 2월 10일에 있었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명헌 전 교육부장관과의 대담에서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역사청산 필요성 아는 윤평중... 하지만

<철학과 현실> 2017년 봄호 별책 부록에 실린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라는 제목의 3자 대담에서 그는 "과거의 군사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국가안보를 빌미로 해서 얼마나 장난을 많이 쳤습니까?"라면서 "국민들은 그것에 많이 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혐오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본문에 인용된 논문.
  본문에 인용된 논문.
ⓒ 철학문화연구소

관련사진보기

  
혐오할 만한 과거사가 1945년 이후에도 있었음을 윤 교수도 인정했다. 혐오할 만한 역사가 있었음을 인식한다면, 역사 청산의 필요성도 당연히 느끼는 게 합당하다. 그런데 그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북한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친일청산을 했기 때문이므로 이것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청산을 하면 사회가 퇴보하므로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2010년에 <철학과 현실>에 발표한 논문 '국가의 철학과 한반도 현대사'에서 그는 "북(北)이 친일파를 숙청하면서 공화주의적 혼합정의 공간을 극소화함으로써 쇠락의 길을 간 데 비해, 남(南)은 친일세력을 남기면서 공화주의적 혼합정의 여지도 열어놓음으로써 놀라운 역사의 비약을 예비했다는 교훈을 한국 지식사회가 지금까지 간과하거나 무시"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친일청산을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를 위배했기에 나라가 퇴보했고, 남한은 친일세력을 남겨둠으로써 그런 가치를 실현시켰다는 것이다. 친일세력을 남겨둔 것이 역사 발전을 위한 예비 작업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논문.
 본문에 인용된 논문.
ⓒ 철학문화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친일세력을 남겨뒀다는 표현은 친일이 상당 정도 청산됐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친일세력이 미군정의 도움을 빌려 일제강점 하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윤 교수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몰라서 나온 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역사 성찰에 반기를 드는 윤 교수의 칼럼은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심지어 본인이 쓴 학술 논문과도 배치된다. 외울 게 많아서 역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모종의 두려움을 느껴서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의 칼럼이다.

태그:#윤평중, #빨갱이, #역사청산, #친일파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