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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경주, 후에

자동차로 다낭에서 후에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100km 밖에 안 되니 금방 도착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랩 기사는 절대 80km/h 이상을 밟지 않았다. 연비를 아끼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베트남의 도로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비록 도로는 왕복 4차선이었지만 양쪽의 끝 차선은 오토바이들이 다니고 있어서 과속 자체가 힘든 구조였다.

덕분에 우리는 베트남의 농촌을 계속 관찰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였다. 묶이지 않고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개들과 심지어 닭까지. 우리 같았으면 누가 가지고 갈까봐, 혹은 가축들이 타인을 해코지 할까봐 철저하게 관리했을 텐데 베트남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방목한 상태였다.
 
베트남의 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 베트남의 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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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렇게 풀어서 키우면 과연 이웃 간의 분쟁은 없을까? 위생적인 문제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괜히 찔렸다. 이는 베트남이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오만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구한말 이 땅을 찾았던 외국인들이 묘사해 놓은 우리네 모습에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것은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창밖으로 호치민 초상화가 그려진 건물들이 자주 등장하는가 싶더니 이내 도로는 다시 오토바이로 가득 찼고,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우리로 치면 신라의 경주와도 같은 곳이었다.

다낭과 후에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다낭은 높고 화려한 건물들과 함께 도시가 활기차 보였는데, 반면 후에는 건물들이 대체적으로 낮았고 분위기도 차분해보였다. 다낭이 최근 막 개발되는 자본주의적인 도시라면, 후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였다. 그래서일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왠지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후에의 상징 후에황궁의 정문
▲ 후에의 상징 후에황궁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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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통일과 갈등해결

차량에서 내려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를 찾아가자 주인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70대 초중반의 노부부였는데, 남편과는 영어로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아내는 영어는 전혀 못했지만 따뜻한 눈빛과 어감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우리 아이들을 매우 반겼는데,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니 그만한 손자가 있는 듯했다.

2층에다 짐을 푼 뒤 주인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후에 토박이며, 과거 도시계획과 관련된 공무원이었다고 소개했다. 어쩐지 엘리트 느낌도 풍기고, 매우 잘 사는 것 같더라니. 그래서일까? 집안 곳곳에는 한국에서도 비싼 외제 가전제품들이 꽤 많이 있었다.

또한 집안 곳곳에는 그가 군인이었을 때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는데, 특이한 건 사진 속 20대 군인의 군복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후에가 남베트남 영토였으니 주인도 남베트남 군인이었겠지. 어쩌면 지금 영어도 그때 배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의 한 장면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기억
▲ 베트남 전쟁의 한 장면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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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 공산당에도 가입했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는 자신의 이력을 극복한 것일까. 베트남은 당시 미국을 도운 남베트남 군인 출신들도 차별하지 않은 걸까? 우리 사회는 꽤 오랫동안 빨갱이의 자식이라며 연좌제를 적용시켰는데 베트남은 승리의 여유로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걸까?

물론 그가 당시 베트콩을 도운 남베트남 군인일지도, 아니면 아예 남베트남 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베트남의 통일 사례는 현재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는 남북한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갔는지, 그 전에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무슨 방법으로 희석시켜 나갔는지 우리는 베트남의 사례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현지 식당을 가다
 
여전한 오토바이 물결 오토바이 트라우마
▲ 여전한 오토바이 물결 오토바이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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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의 대화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숙소를 나왔다. 그래도 베트남에 왔으니 제대로 된 베트남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행책자에서 소개하는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는 식당을 찾아 갔다. 오토바이의 물결을 건너 찾아간 식당은 대로변이 아니라 작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는데, 실제로 외국인들보다 베트남 사람들로 더 북적였다.

다섯 식구가 자리를 차지한 뒤 베트남 음식을 코스로 시켰다. 책에서도 코스요리를 권했지만 어차피 메뉴판이 베트남어로만 되어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만큼 식당은 현지인 중심이었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불친절했지만,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제대로 된 베트남 음식을 먹겠구나.

드디어 차례대로 나오는 베트남 음식. 대부분이 한국의 베트남 식당에서 보지 못했던 음식이었지만 모두 입맛에 맞았다. 아니, 맞다고 믿었다. 나는 10년 전 환율이 너무 비싸서 마음껏 먹지 못했던 분풀이를 하듯 음식을 열심히 먹고 마셨다. 5명이 코스를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은 한국 식당의 1/2 수준이었다.
 
베트남 코스요리 이름은 모르지만 맛있는
▲ 베트남 코스요리 이름은 모르지만 맛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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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입하는 둘째와 깨작거리는 첫째
 흡입하는 둘째와 깨작거리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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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푸짐하게 나온 베트남 음식을 나만 즐긴다는 점이었다. 첫째와 셋째는 고수 향을 포함해서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 냄새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으며, 아내는 식당의 환경이 비위생적이라며 조금 꺼려했다.

둘째는 비록 나와 같이 열심히 먹었지만, 그것이 아빠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인지,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인지 애매했다. 아무리 베트남 음식이 맛있다고 하지만, 녀석은 새벽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평소에 비해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저러다가 첫날부터 탈나는 건 아닌지.

후에의 밤
   
저녁을 먹고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 아이들은 낮에 있었던 오토바이 사고를 기억하며 길을 건널 때마다 엄마, 아빠 뒤에 꼭 붙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는 여전히 많았고, 거리는 시끄러웠으며, 공기는 매연 때문인지 매캐했다. 후에의 밤은 10년 전 호치민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호치민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겠지.

그래도 보행에 조금 적응해서인지 식당에 올 때와 달리 베트남의 밤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와 조금 다른 모양의 장기를 두는 사람들, 카페 앞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테이블에서 길거리 방향으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길가에서 만드는 쌀국수를 즉석에서 먹는 사람들 등. 그것 자체가 베트남이었고, 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베트남 장기 조금은 다른
▲ 베트남 장기 조금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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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밤거리 흔하게 볼 수 있는
▲ 베트남의 밤거리 흔하게 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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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들어가는 작은 골목. 그곳에는 가라오케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가게 앞마다 남성들이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혹시 10년 전 하노이에서 음흉한 웃음과 함께 붐붐마사를 권하던 자들인가? 설마 성매매가 후에 같은 중소도시 주택가까지 들어온 건 아니겠지?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10년 전 내가 쓴 기사("한국 남자 유혹하는 '붐붐 마사지' 정체는?")는 지금까지도 매월 2000회가 넘는 조회 수를 찍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한국인들이 그 유혹에 노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다가오지 않았는지도. 부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숙소 들어가는 길 호텔과 다른 민박
▲ 숙소 들어가는 길 호텔과 다른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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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의 맛 할아버지, 할머니 집같은
▲ 민박의 맛 할아버지, 할머니 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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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오자 주인 양반이 저녁 맛있게 먹었냐며 우리를 반겼다. 그러면서 잠깐 주고받는 대화들. 별 거 아니었지만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고마웠다. 바로 이게 민박의 정이겠지. 요즘 우리 사회는 펜션이 일반화되면서 사라졌지만 과거 우리도 민박이 성행할 때는 그런 정을 느끼지 않았던가. 비록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이 꽤 뿌듯했다.

자, 베트남에서의 첫 밤을 보내고 내일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 후에를 돌아다녀보자.

태그:#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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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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