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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때 토지제도를 어떻게 만드는가는 체제의 성공 여부를 갈라놓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 일본에 이어 GDP 규모 세계 3위 국가였던 서독은 동독과의 통일 과정에서 토지문제와 화폐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1990년 통일 후 한동안 혼란을 겪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유럽의 환자' 취급을 받았다.

러시아 역시 체제를 전환할 때 토지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은 나라이다. 프랑코 모딜리아니, 제임스 토빈, 윌리엄 비크리, 로버트 솔로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4명을 포함한 서방의 경제학자 서른 명은 1990년 고르바초프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소련이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로 들어올 때 토지와 천연자원은 사유화하지 말고, 국가가 소유하며 민간에게 임대하는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취하라는 권고였다.

토지와 천연자원을 민간에게 임대하여 얻는 임대료를 정부의 우선적인 재정수입으로 삼으면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꾀하고 양극화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뒤를 이은 옐친은 무제한적 시장개방과 사유화를 실시하였다. 러시아의 토지와 천연자원 및 국영기업은 헐값에 소수의 과두재벌에게 귀속되었고 1998년 러시아는 재정 고갈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공공토지임대 방식의 성공모델 : 싱가폴, 홍콩, 뉴욕 배터리파크

북한이 체제를 전환할 때 참고할 만한 공공토지임대 방식의 토지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했고, 지금도 시행하고 있는 나라와 도시들이 있다.

북한이 향후 개혁개방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싱가포르는 전체 토지의 85%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국유지 위에 지은 주택을 국민들에게 환매조건부로 저렴하게 공급하는 싱가포르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도 높은 집값으로 인한 주거불안정이 없다. 대부분이 국유지이기에 사회기반시설 구축비용이 저렴하여 재정건전성과 효율적인 성장의 토대가 된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인 홍콩도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토대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도시이다. 1841년 1차 아편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홍콩 섬을 강제 점령하였다. 영국은 '지가 상승에 따른 투기가 예상되기 때문에 좋은 부지를 확보하고 미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홍콩의 역사> 43p) 홍콩에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도입하였다. 홍콩의 공공토지임대 방식은 토지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개인과 기업들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생산의 효율성을 높였다. 아울러 정부의 토지임대료 수입은 노동소득, 기업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을 낮추어 노동의욕과 기업투자 등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도시재생 성공 모델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도 공공토지임대 방식으로 개발했다. 수면을 매립하여 만든 배터리파크 시티는 매립한 토지를 개발하여 일시에 매각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2억 달러의 장기 채권을 발행해 초기 개발비용을 조달하고 필요한 수요만큼 점층적으로 개발하여 토지를 임대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올라간 토지임대료로 개발비용을 확보하여 인근 지역을 개발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현재 배터리파크 시티는 토지임대료와 건물에 대한 재산세로 채권 원금과 이자, 인프라 건설 및 지역 내 필요한 예산을 다 조달하고도 남는 이익금을 뉴욕시에 상환하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 공공토지임대제 구축의 적기

공공토지임대 방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공공토지임대 방식이 토지를 영구적으로 사유화하는 방식보다 경제성장 및 평등한 분배에 효과가 있음에도 기존 자본주의 국가들이 선뜻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토지사유제 위에서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국가들은 부동산 투기심리 및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적 기대, 입지요인에 대한 이익 등이 토지가격에 반영되어 땅값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난 후 정부가 다시 매입하기에는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싱가포르는 경제발전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건국 초기부터 토지를 매입하였기에 국토의 85% 이상을 국가가 소유할 수 있었다. 매립지라는 조건에서 시작한 배터리 파크 시티 역시 채권발행을 통해 개발비용만 충당하면 되었기에 토지를 비싸게 매입해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제도는 한번 만들어지면 경로의존성이 생기기에 한번 방향을 잡으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아직 토지가 사유화되지 않은 북한이 개혁개방 초기에 어떤 토지제도를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관련 기사 : 북한 개혁개방을 위한 제언 1 - 북한 개혁개방의 반면교사 '러시아식 개혁개방')

태그:#공공토지임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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