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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를 태운 차는 코토르(Kotor)를 출발하여 몬테네그로 특유의 검은 산 아래로 이어지는 해안길을 달렸다. 몬테네그로는 아드리아 해에 접한 작은 나라이지만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나라 이름 그대로 산악 지형이 장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코토르 만. 진회색 산 아래 호수 같은 바다가 펼쳐진다.
▲ 코토르 만. 진회색 산 아래 호수 같은 바다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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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토르 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페라스트(Perast)로 가고 있었다. 페라스트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인 몬테네그로 북부의 타라 캐년(Tara Canyon)이 서쪽으로 향하다가 코토르 만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코토르 만의 굽이굽이 굽은 바닷가를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햇살에 반짝이며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해변을 달리며 자꾸 사진기에 손이 가게 하는 것은 코토르 만의 바다에 띄워져 있는 2개의 보석 같은 섬이었다. 2개의 보석은 마치 만지지 못해 고이 모셔 놓은 듯 바다 위에서 계속 우리를 마주보고 있었다.
 
성모 섬으로 가는 배. 작은 배를 타고 아드리아 해의 바다에 몸을 맡겨본다.
▲ 성모 섬으로 가는 배. 작은 배를 타고 아드리아 해의 바다에 몸을 맡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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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섬 이름을 가이드 루카에게 물어보니 바위의 성모 섬(Our Lady of the rocks)과 성 조지 섬(St. George Island)이라고 한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페라스트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바위의 성모 섬 행 작은 배를 탔다. 작은 배는 코토르 만의 잔잔한 물살을 헤치고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배는 뱃놀이 하듯이 바다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내 눈 높이에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 위에 그림 같은 작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아우어 레이디 오브 더 락스(Our Lady of the Rocks)!'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이름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들려왔다. 성모 섬 주변은 이름대로 참으로 고결해 보였다.

"바다 위에 어떻게 여기에만 덩그러니 이런 섬이 있을 수 있지? 자연의 힘은 놀라워"
"이 섬은 인공 섬입니다. 원래 성모 섬이 있던 자리에는 암초 같은 바위 한 개만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1452년에 이곳을 지나던 베네치아의 한 어부 형제가 바위 위에서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성화를 발견하였고, 이를 신의 계시로 여긴 이들은 바위 위에 돌을 쌓기 시작했지요. 그후 이 어부들이 죽자 이 뜻을 이어받은 마을 주민들이 2백여년 동안이나 이 바위 주변에 육지에서 날라온 돌을 쌓고 폐선을 가라앉히기도 하였습니다."

 
성모 섬.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발견되면서 인공 섬과 성당이 들어서게 되었다.
▲ 성모 섬.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발견되면서 인공 섬과 성당이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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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노력으로 이 바다 한복판에 작은 섬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1630년에는 이 인공섬 위에 성모상의 발견을 기리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지어졌다. 성당 제단에는 당연히 암초에서 발견된 성모화를 모셔 두었다.
 
성모화. 바위 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를 그린 성화가 성당 주제단에 모셔져 있다.
▲ 성모화. 바위 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를 그린 성화가 성당 주제단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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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당은 너무 많은 여행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입장 시간을 제한하고 있었다. 섬에 내린 우리들은 성모 성당을 둘러싼 바다의 평화로운 풍경을 잠시 감상하며 쉬다가 조금 후에 성당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두운 성당 안은 숨이 멎을 듯이 아름다웠다. 성당 안은 아주 어두웠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두운 성모 성당 안, 우리 뒤에 들어오던 관광객들이 다시 성당의 문을 열자 성당 안으로 햇살이 살짝 비집고 들어왔다. 성당 내부에는 천장의 두 곳에서만 빛이 얕게,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성당 중앙 홀의 벽면 장식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 마치 누군가의 염원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중세의 기독교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판화들이었다. 그것은 바다에서의 안녕을 기원하고 바위의 성모에게 감사를 나타내기 위하여 은으로 만들어 봉헌한 판화였다. 성당이 지어진 17세기부터 최근까지 성당 벽면에 봉헌된 200여 개나 되는 크고 작은 은판화는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사람들은 배가 난파되는 위험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한 감사를 이 은판화를 통해 전했다. 이 은판화는 중세 기독교인들의 신을 향한 염원과 감사의 마음이었고, 당시 어부들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마음 속의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그들의 작은 소망은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겠지만 그 작은 소망은 그들에게 정말로 절실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곳 바닷가 사람들은 바위의 성모에게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페라스트 주민들은 섬이 만들어지고 성당을 세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7월 22일에 바다로 나가 바다에 돌을 던져 넣는 행사를 하고 있다. 선조들의 믿음의 전통이 면면히 이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성모 성당 내부. 수백 개의 은판화와 유화가 오랜 세월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 성모 성당 내부. 수백 개의 은판화와 유화가 오랜 세월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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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모 성당의 천장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성당의 천장에도 당대의 유명한 바로크 화가에게 의뢰하여 그려진,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표현한 68개의 유화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토르 만에 전해지는 성모 마리아 전설의 인공섬 위에 성모 마리아의 천국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성당 안으로 더 들어서자 가이드 루카가 우리를 멈춰 세운다. 성당 2층에 화려하게 장식된 이콘화와 해양유물 등이 전시된 귀중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박물관에서 몬테네그로의 자수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 받는 작품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그의 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곳에는 한눈에 보아도 정성이 가득 깃들어 보이는 한 작품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수 작품.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 아름다운 자수 작품.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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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수 작품 속의 인물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성모 마리아입니다. 한 여인이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성모 마리아 자수를 만든 거죠. 그녀는 무려 25년 동안 비단, 금실, 은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성모 마리아와 천사를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들었습니다."

액자 속에 보관된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은 긴 세월의 흐름 속에 회색 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순간 숙연해졌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이 작품이 너무나 슬프면서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의 머리 속에는 젊은 날, 아름다웠을 그녀의 금발이 자꾸 떠올랐다.
 
성모 섬에서 바라본 아드리아 해. 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가 아득하기만 하다.
▲ 성모 섬에서 바라본 아드리아 해. 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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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 일행은 성당 박물관의 역사를 보고 나와, 다시 아드리아 바다 앞에 섰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부터 만나 함께 이동하며 친해진 우리 일행은 성모 섬 바다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성당 박물관 밖에는 짙은 회색의 산들 아래 코발트 빛 바다가 마치 호수같이 고여 있었다.

호수 같은 깊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 성모 섬은 그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로맨틱한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바다 한가운데의 아담하고 예쁜 섬 위에 올라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기에, 이곳에는 유난히 연인과 스킨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작은 섬 끝에 있는 등대에 서서 보니 은둔의 섬 같은 더 작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성 조지 베네딕트 수도원(St. George Benedictine Monastery)이 있는 성 조지 섬(St. George Island)이다. 이 섬은 인공 섬이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섬이지만 일반인들은 들어설 수 없는 금단의 섬이다.
 
성 조지 섬. 한 프랑스 군인이 남긴 슬픈 전설이 이 섬에 전해지고 있다.
▲ 성 조지 섬. 한 프랑스 군인이 남긴 슬픈 전설이 이 섬에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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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섬에는 17세기에 세워진 작은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수도원 안에는 성 조지 섬 앞 해안 마을, 페라스트 귀족들의 무덤이 있다. 몇 평 안 되는 작은 섬 위의 수도원을 몇 그루 안 되는 나무가 둘러싸고 있어서 더욱 신비하게 다가온다. 깊은 바다 위 작은 섬이 마치 배가 되어 움직일 것 같은 묘한 적막감이 있다.
이 섬에는 한 프랑스 군인이 남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1797년 나폴레옹 군대가 페라스트에 진주할 당시, 한 프랑스 병사가 아름다운 페라스트 여인과 한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병사는 프랑스군 장교의 명령으로, 반발하는 페라스트 시민들을 향해 마을에 포격을 가하게 되었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인해 프랑스 병사가 사랑하는 여인은 비명에 죽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프랑스 병사는 포격을 미리 알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전쟁 통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이 프랑스 군인은 결국 페라스트 마을 앞의 성 조지 섬에 들어와 평생 수도사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 섬에서 평생을 속죄하며 남은 일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바다에는 가슴 뭉클한 전설들이 남겨져 있었다. 깊은 바다 위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한 병사의 애절함이 작은 파도가 되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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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