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준만의 글은 명징하다. 명징한 글을 쓰는 사람은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해지는 글에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안달을 읽을 수 있다. 강준만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의도를 정확히 벌처럼 쏜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그가 다부진 맷집으로 도전한 기록이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남성'이면서 '페미니스트'인 것은 한국에서 어떤 지형에 서는 것일까. 소외, 배척, 차별, 혐오를 감당한다는 것인가? 약자의 지형에 서본다고 해서 즉시 약자성을 체득할 수는 없다. 다만, 노력일 뿐. 소수의 남성이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것은, 도저히 균형을 맞출 수 없는 권력의 저울에 수천 년간 허공에 들려있었던 여성들에 대한 내부자로서의 양심선언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해도 너무 한다"는. 강준만은 미안하고 부끄러워했다.
 
저자 강준만은 남성 기득권자인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빠의 꼰대질로 흐를 공산을 애써 차단했으나, 완벽할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한 채, 남성 사회학자가 바라본 그간의 페미니즘 투쟁을 성찰하며 분석했다.

남성이 편들어준 페미니즘이라고 와락 껴안게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아니라, 지독하게 우울해서다. 그의 연구가 남성주의의 허위를 낱낱이 까발긴다 해도, 왜 어째서 여성을 이렇게까지 짓밟는가에 대한 발본색원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 오빠, 남편, 아들이 가족에서 떼어내져 남성으로 위치하는 바로 그 지점이 엄청난 괴리로 빚어지는 여성인권의 사각지대이다. 남성들의 내 어머니, 누이, 아내, 딸은 왜 가정을 벗어나면 맘충, 된장녀, 김치녀 따위로 둔갑하는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근원
 
강준만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표치
 강준만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표치
ⓒ 인물과사상사

관련사진보기

 
저자 강준만은 '너의 페미니즘은 내가 허락하는 한에서만 기능한다'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근원을 가부장제와 공고한 남성 연대로 돌린다. 강준만은 오빠들이 '억압적 관용'으로 베푼 페미니즘의 연원을 1980년대 말부터 추적해, 2000년 진보 진영 내 성폭력 사건을 이슈화한 '100인 위원회' 결성, 2018년 미투 사태, 최근 벌어진 유아인 논쟁까지 수많은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는 사이버 세계의 등장이 페미니즘 운동의 분수령이 된다고 보며, 2000년부터 2018년 5월까지의 투쟁 기간을 10단위로 세분해, 단위마다 정점을 이루는 사건들을 봉우리로 올리며 굽이를 펼친다. 그럼에도 그 궤적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자평하며 2탄을 예고했다.
 
남성 군 가산제 폐지가 일으킨 "여자도 군대 가라" 논란은, 남성들이 구조적 불평등을 강자에게 요구하지 못하고 약자에 대한 혐오로 푸는 '구조맹'의 결과로 진단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남성 연대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유포되는지를 도서, 신문, 미디어, SNS 등의 콘텐츠를 총망라해 짚어낸다.

또한 진보라고 자칭하는 논객들이 독자나 청중들에게 페미니즘을 오도한 수많은 사례들을 자세히 실었고, 메갈리아 사태 이후 펼쳐진 혐오 담론 과정을 생생히 전달한다. '홍대 누드모델 도촬 사건 6일 만에 긴급체포'와 '소라넷 폐지 17년'을 부정의한 한국 여성인권의 지형을 선명히 드러낸 사례로 적시한다.
 
강준만은 여성 분노를 폭발시킨 티핑 포인트로 '메갈리아 사태'를 지목한다. 품위 있게 싸우라는 한가한 촉구에,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게서 절박함과 처절함을 느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넥슨 성우 김자연 사태로 벌어진 정의당의 지지 성명 철회 해프닝, 툭하면 불거지는 진보매체 절독론을 목도하며, 대체 진보의 이성이 작동하고는 있는지를 묻는다.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확산된 #미투가 한국에서 폭로되자, 어느 한 곳도 예외 없이 성폭력이 만연해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인권과 윤리의 바로미터인 법원, 국회, 학교, 언론사 등의 성폭력 상황은 한국이 차마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수준임을 보여 주었다. 

저자는 남성 유명인들의 성폭력이 연일 폭로되자, 일부 진보 논색들이 '음모론' '정치 조작설'을 들고나왔던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한 편'이라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진영논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는 유시민의 '조개론'을 정조준한다. 민주주의라는 대의 앞에 페미니즘을 희생해야 한다는 '가치의 위계질서'(p362)를 작동시킨 자기 기만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오빠 페미니스트'의 유형 4가지
 

저자는 책 말미에 '오빠 페미니스트' 유형을 익살스럽게 제시한다. ➀ 유시민, 김어준 유형의 '정치 종교적 오빠' ➁ 유아인 스타일의 '권위주의 오빠' ➂ 계급에 페미니즘을 종속시키는 '계급주의적 오빠' ➃ 유구한 가부장제로 인해 각인된 DNA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본능주의 오빠.' 저자도 ➃번임을 인정했다. 내 남편도 ➃번이다.
 
지난해 어느 날이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에야 겨우 여성의 피해자성에 눈을 뜬 나는 ➃번 유형인 남편에게 '#미투'를 했다. 작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하게 됐다.

아버지를 능가했던 가부장 오빠가 독재자로 군림한 집에서 얼마나 공포 속에 살았는지를, 학교 다닐 때 겪었던 남성 교사들의 음험한 눈길과 손길의 끔찍함을, 대학시절 내내 수업을 한 번도 들어오지 않던 같은 과 운동권 형이 졸업도 하기 전에 대기업에 취업됐던 판타지를, 성적이 매우 우수했음에도 내겐 기회조차 오지 않던 교수 취업 추천서를, 직장에서 무수히 겪었던 성차별과 성폭력을 증언했다.

실제로 겪은 일의 1/100도 안 되는 증언에 남편은 괴로워했다. 내 증언 이후 남편의 ➃번 오빠 스타일은 차츰 눅어지고 있다. 기적 같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강준만이 30여 년 페미니즘 잔혹사를 노정하며 응축해낸 기록이다. 그는 '중단없는 전진'만이 "성별 억압과 착취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p371)"라고 북돋운다.

그는 페미니즘이 남성의 해방은 물론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종언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다짐했듯, 더 나은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기원한다. 나 또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도도한 물결에 기꺼이 몸을 싣는다.
 
안태근 전 검사장은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지현 검사의 끊임없는 투쟁과 승리가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2탄엔 기록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18)


태그:#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강준만, #미투, #메갈리아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