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월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대면 보고를 좀 더 늘려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만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지금으로부터 불과 4년 전인 2015년 1월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두고두고 회자된 이 대면보고 관련 답변이 나온 것이 당시 신년기자회견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만한 발언과 함께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정말 드물게 보는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라거나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서 역차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던 답변들은 이후 촛불혁명을 불러 온 국정농단 사태의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나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확인 안 된, 말도 안 되는 일로 논란이 되는 정말 우리 사회가 건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디 답변 내용뿐이었을까. 때때로 터져 나온 동문서답에 가까운 답변이나 민감한 질문에 깔끔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버릇은 둘째 치더라도,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형식 역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2016년 신년기자회견 당시에는 질문지 사전 유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 순서와 핵심 내용이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그 순서와 내용에 따라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박 전 대통령이 답변을 이어나가는 촌극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대통령 기자회견 수준이 그렇게 망가졌더랬다. 일방적인 소통과 원론적인 답변이 오가는, 오로지 대통령을 위한 기자회견 말이다. 하지만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적어도 '보통' 민주주의 국가의 '보통'에 가까운 대통령 기자회견이 견지할 수 있는 수준을 회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문 대통령 '질문하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손을 든 기자 중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 문 대통령 "질문하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손을 든 기자 중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 기자는 왜 '실검'에 올랐나
 

전반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분위기였다. 헌데, 느닷없이 <경기방송>과 한 기자의 이름이 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기자의 질문도 질문이지만,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현실 경제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현 정책에 대해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특히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라고 묻는 대목은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이들로부터 "응?"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만한 장면이었다. 더욱이 해당 기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소속을 질문 서두에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이 끝나기를 기다린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소속과 이름을 소개했다. 이러한 상황에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30분 내내 말씀드렸다. 그에 대한 필요한 보안들은 얼마든지 해야겠지만, 오히려 정책 기조는 계속해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기 때문에 더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다소 공격적인 태도 때문이었을까.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의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문으로 30분 내내 말씀드렸다"며 질문을 일축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답변은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관련 질문에 나선 JTBC 기자에게 "방안을 다 말해주셨다"라는 말로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 전반부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공정 경쟁", "혁신성장",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대해 해당 기자는 질문에 앞서 "실질적인 여론은 냉랭한 편", "현실 경제가 얼어붙어 있다",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는 평을 쏟아냈다.

개인적으로 근심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에서 신년기자회견 형식을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사회자를 맡는 미 백악관 식의 '타운홀' 형태라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참여정부 초기 고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들을 당황케 만들었던 '검사와의 대화'를 떠올렸던 이도 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날 신년기자회견에서는 그러한 근심과 달리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식과 분위기, 그리고 안정적인 질의응답이 오갔다. <경기방송> 기자의 질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 역시 질문자의 태도에 비해 훨씬 더 성숙한 태도로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감한 질문들도 적지 않았다. 역시나 사회정치문화 분야의 질문들이 그랬다.
 
질문을 들으면 생각중인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 질문을 들으면 생각중인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김태우 논란 등 뜨거워진 후반부... 그의 답은  

다소 평온했던 전반부와 달리 비교적 눈에 띄는 질문들이 등장한 것은 마지막 사회정치문화 분야 질의가 시작된 기자회견 후반부였다. 고민정 부대변인이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일간지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을 것을 문 대통령에게 요청했고, 사회자인 문 대통령은 일간지 기자들만 손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첫 번째 질문 기회를 받은 기자는 <조선일보> 소속이었다.

질문은 최근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내용이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행정관과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에 관한 질의였다. <조선일보> 기자는 "자신들이 생각한 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갔기에 폭로한 것"이라며 "과거 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었다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외압, 인권 침해당했을 경우에 대비해서 변호인 구성했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이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문 대통령의 답은 확고했다. 먼저 김태우 행정관의 경우 "(특감반 업무의) 출발은 대통령, 그다음 대통령 주변의 특수관계자 그리고 고위 관계자들의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라고 특감반을 두는 것"이라고 못 박은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앞선 두 정부의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다행스럽게 현 정부는 그런 비리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감반은 말하자면 소기에 목적을 잘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김태우 행정관이 제기한 문제는 자신이 한 행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모든 공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부단히 단속해야 하는 것인데 김태우 행정관은 김태우 행정관이 한 행위가 직분을 벗어난 것이냐가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다. 그 부분은 수사가 되고 있어서 가려질 것이라 믿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태우 행정관 사건이 특감반이나 청와대의 문제라기보다는 김 행정관 개인의 비위임을 적시했다. 명료함은 신 전 사무관 관련 답변에서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김동연 부총리가 아주 적절하게 그에 대해 해명했다"면서도 "정책 결정의 최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적시했다.

또 "굳이 답변을 되풀이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던 문 대통령은 신 전 사무관에게 "다시는 주변을 걱정시키는 국민을 걱정시키는 선택을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는 말로 답을 마무리했다. 그에 앞서 문 대통령은 젊은 공직자의 소신을 강조하면서도 "정책 결정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신재민 전 사무관과 관련한 논란이 일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페이스북으로 답한 글과 대동소이한 내용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차분하게 신 전 사무관 개인에 대한 염려까지 포함, 설명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장면은 또 있었다. 지난 2018년 3월 "한국 언론은 내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 달라"고 공개 선언했던 BBC 로라 비커 특파원은 "양성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라고 지적했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부끄러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답변을 이어나갔다. 앞서 한일관계 문제에 대해 질문한 NHK 기자에게 "일본 정부가 조금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답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기자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새 정부 들어서 고위공직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하게 하려는 노력을 비롯해서 여성이 겪고 있는 유리천장을 깨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 아닌 "평화가 곧 경제"
 

"평화가 곧 경제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바로 모두 기자회견문에서 나왔다. 후반부 한반도 평화와 신북방정책, 신남방정책을 역설하는 대목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가 곧 경제"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2014년 3월 "통일은 대박"이라던 박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통일은 대박"이라는 진실에 가까운 명제에 대한 문 대통령식 대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평화가 곧 경제입니다. 잘살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나 북한이나 똑 같습니다. 남북 철도, 도로 연결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조건없고 대가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합니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 사이에 풀어야할 과제는 해결된 셈입니다. 남은 과제인 국제 제재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습니다."


이 발언이 나온 장소가 신년기자회견 자리였다는 점 역시 상징적이다. 훗날 최순실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 드레스덴 선언, 즉 "통일은 대박" 담론과 관련해 <조선일보>를 비롯해 보수매체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했던가. 시리즈물을 비롯해 찬양 일색의 논조와 대대적인 분석 기사를 내놓지 않았던가.

그리고 "통일은 대박", "평화가 곧 경제"를 실제로 실천코자 하는 문 대통령. 그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해 놀랄 만한 반전의 연속을 이뤄냈던 작년과 올해까지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쏟아내고 있는 논조는 어떠한가. 박 전 대통령의 저 2015년 신년기자회견의 '짜고 치는 고스톱'과 이번 문 대통령의 '타운홀' 형식만큼이나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시청하는 한국당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0일 오전 국회 비상대책위원장 회의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시청하는 한국당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0일 오전 국회 비상대책위원장 회의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그러거나 말거나, 보수야당은 날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반성의 뜻을 밝힐 줄 알았는데,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밝혔고, 바른미래당 역시 "반성문으로 시작해야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관련 기사 : 나경원 "대통령 반성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실망").

예상 그대로다. 그렇다면 하나만 묻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저 2015년 신년기자회견은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짜고치는 고스톱'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여당 시절 모셨던 대통령과 비교되지 않는지 말이다. 이전 정부에서 본인들이 불렀던 '용비어천가'를 벌써 잊은 건가.

태그:#문재인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