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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 돼지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이 있다. 마을잔치라도 있는 날이었던지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 도축한 돼지를 해체해 동네 어르신들이 나눠가졌던 일 말이다.

마당에 널브러진 돼지는 아기돼지 삼 형제와 곰돌이 푸의 작고 귀여운 돼지가 아닌 뼈와 살을 들어낸 선홍빛 고기일 뿐이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돼지 죽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돼지를 못 먹게 되었다고 했는데… 고기를 먹고 자란 나란 아이는 굉장히 무던했던 모양이다. 이후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 있는 돼지를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돼지는 늘 내 가까이 있었다.

돼지라는 이름을 잃고 삼겹살, 목살, 족발, 보쌈, 돈가스, 소시지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대체돼 내 입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 돼지와 마주하기보단 죽은 뒤 고기가 되어 나와 마주했던 것이다.
 
 돼지
 돼지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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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기를 덜 먹는다 여기며 고기를 먹어왔지만 일상생활에서 고기를 먹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했다. 마땅한 점심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만만한 제육볶음을 주문했고, 가족모임이나 회식이라도 하는 날 1순위 메뉴는 삼겹살이었고,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해야겠다며 별 생각 없이 돈가스와 햄버거를 먹었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이 고기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제역으로 전국의 돼지들이 구덩이에 산 채로 파묻힐 때도 여전히 돼지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그건 고기니까. 식재료일 뿐이니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이 고기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질 때쯤 육식과 관련된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육식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몇몇의 책을 통해 육식산업의 시스템을 알았고 육식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았다. 무엇보다 비윤리적인 사육 방식이 돼지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알게 되었을 때 육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나를 조금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꿔줄 돼지에 대한 책이다.
 
 <네모 돼지>,<사랑할까, 먹을까>,<대단한 돼지 에스더>
 <네모 돼지>,<사랑할까, 먹을까>,<대단한 돼지 에스더>
ⓒ 심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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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돼지>(김태호 지음, 창비아동문고)

과감한 상상력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일곱 편의 동화를 담았다. 일곱 편의 동화중 <네모 돼지>는 어릴 적부터 철로 된 네모난 상자에 꼭 맞춰서 오로지 먹고, 자고, 싸는 네모 돼지들이 있다. 천국의 문으로 가는 날만은 손꼽아 기다리는 네모 돼지를 위해 책을 읽어 주는 또다른 돼지 오스터가 주인공이다. 이윽고 네모 돼지들과 오스터는 천국의 문으로 가는 날을 맞이하는데... 그들은 과연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사랑할까, 먹을까>(황윤 지음, 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황윤 감독의 책으로 어느 평범한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의 돼지와 식재료로서의 돼지를 비교하며 우리는 돼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딜레마를 남긴다.

무엇을 먹느냐는 각자의 취향이지만 밀폐된 환경, 분뇨로 가득한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늘어나는 고기소비량만큼 동물들의 고통도 함께 늘어난다. '먹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대단한 돼지 에스더>(스티브 젠킨스 외 2인, 책공장더불어)

개, 고양이 정도가 반려동물의 테두리에 있었던 저자가 300킬로그램이 넘는 돼지와 가족이 되었다. 개, 고양이를 키우는 여느 반려가족처럼 그들의 일상도 소소하며 따뜻하다. 개를 키우면서 더 이상 개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들처럼 저자 또한 에스더를 가족으로 맞으면서 육식에서 채식으로 바뀌었고 농장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는 동물보호 활동가도 되었다. 그렇게 에스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돼지가 되었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띠의 해를 맞아 다산의 상징, 복을 상징하는 돼지를 캐릭터로한 상품들이 인기다. 캐릭터속 돼지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고 삼겹살집 간판에 조리복을 입은 채 손님을 맞이하는 돼지들도 웃고 있다. 줄곧 고기를 먹어 왔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는 모순된 나 자신만큼 모순된다.

우리에게 복을 주는 돼지와 고기가 되는 돼지는 다른걸까?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돼지를 굳이 먹어야 할까? 나의 입맛을 채워주기 위해 돼지가 희생되는 게 과연 정당한가? 나는 언제쯤 이 딜레마를 끝낼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위한 반려동물 전문서점 <동반북스>의 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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