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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2017년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 및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소한 나동혁씨가 포승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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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논란

양심적 병역거부가 한국 사회 이슈로 등장한 건 2000년 이후다. 그 이전에도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있었지만 오태양씨가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후 사회운동으로서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찬반이 격렬하게 부딪혀 왔다.

논쟁은 다양한 측면에서 촉발되었다. 군사주의, 군사안보이데올로기, 개인의 양심의 자유 등 그전까지는 진지하게 다루지 못했던 주제들이 병역거부 운동을 통해 사회의 주요한 의제들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도 있었다. 특히 '양심'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이 그러했다.

논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영어 'Conscientious'(양심적인)의 개념이 무엇이고, 한국어로는 어떤 번역어가 적당할지를 두고 토론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비양심이냐?"는 질문에는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 용어로서 '양심'과 헌법적 가치로서 '양심의 자유'가 다르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그나마 이해라도 됐는데, 충분히 알 만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려고 저런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과연 세상이 달라지기는 했다.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병역거부가 명확하게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부 정치인들과 특정 종단의 종교지도자들이 '양심'이라는 표현에 지속적으로 반대하긴 했지만, 정책을 입안하거나 사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2020년 1월 1일부터는 시행해야 하는 대체복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이며,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양심이란 용어 자체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2018년 12월 28일, 그동안 대체복무제를 주장해온 시민단체들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미흡한 대체복무안에서도 "대체복무요원이란 헌법 제19조에 따른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대체역으로 편입된 사람을 말한다"며 이 문제가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랬던 국방부가 지난 1월 4일 금요일, "대체복무제 용어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고 국민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양심', '신념', '양심적' 등과 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향후 정부는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용어를 통일하여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랬던 국방부가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36개월간 교도소(교정시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대체복무 대상자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2018.12.28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지난 2018년 12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36개월간 교도소(교정시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대체복무 대상자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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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이 같은 입장 변경은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고 전에 없던 우려까지 불러일으켰다. 이번 국방부의 결정은 시기와 절차, 내용 모두에서 낙제점을 줘도 모자랄 만큼 문제가 많다.

만약 국방부가 정말로 진지하게 용어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려고 했다면, 이 문제는 훨씬 이전에 거론했어야 했다. 18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고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하고 있다가, 게다가 스스로 법안 형태의 안을 낸 뒤에야 이렇게 갑자기 핵심 용어를 변경하는 건 절차적으로도 오히려 국방부가 불필요한 논란에 불을 지피는 셈이다.

국방부의 갑작스러운 결정 때문에 이제 당분간은 대체복무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논의보다는 용어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국방부의 신중하지 못한 일 처리가 문제를 더 어렵게 꼬아버렸다. 용어 변경 절차나 시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가 대안으로 들고나온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병역거부의 개념을 축소·왜곡하고, 현재 병역거부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등 심각하게 잘못된 표현이다.

국제적으로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한 무하마드 알리,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며 인종차별 정책을 수행하는 군대를 거부했던 남아공 병역거부자들, 한국 전쟁 당시 징병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로 전후 군산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그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훈장까지 수여 받은 존 콘스 모두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기반한 행동이 병역거부로 인정받았다. 물론 존 콘스처럼 종교적 신앙이 병역거부에 크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양심의 자유에 포괄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6월 28일 결정문에서 병역거부를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로부터 형성된 양심상의 결정"이라고 정의했다. 대법원 또한 병역거부자의 행위가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지가 무죄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었다. 양심의 자유가 헌법상 가치이니 당연한 일이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병역거부를 종교의 영역으로 축소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꼴이 되었다.

국방부가 지워버린 병역거부자들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은 또한 실존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지운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의증인이 병역거부자의 대다수지만, 역사적으로 병역거부자는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독교인, 불교인 등 종교인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들,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아니키스트, 전쟁을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을 택한 이들,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한국에서도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된 2000년 이후에 전쟁 준비에 동참할 수 없다는 평화적 신념, 사람에게는 '다른 이를 죽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신념, 국가폭력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신념 등 다양한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온 이들이 80여 명 가까이 된다. 1만 9천 명이 넘는 여호와의증인에 비하면 아주 소수지만, 소수라고 없는 존재로 치부할 수는 없다. 국방부의 결정은 이런 다양한 양심을, 다양한 병역거부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점은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종교인만을 병역거부자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남아공은 한때 종교인만을 병역거부로 인정했는데, 곧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소승불교 신자가 병역거부를 했는데 소승불교를 종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종교의 구분이라는 게 굉장히 애매하고 국가가 나서서 종교인지 아닌지를 선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결국 병역거부를 종교에만 국한하지 않고 '양심'이라는 더 넓은 범위로 확장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어떤 사람들이 병역거부자인지 심사를 통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때 종교적 병역거부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 개념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남아공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방부의 이번 결정이 종교인만을 병역거부자로 인정하겠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어가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향후 대체복무 심사의 기준과 절차를 만드는데 국방부의 이번 결정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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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정한 용어는 절대 바뀌어선 안 된다는 게 아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는 이 용어가 번역어인 만큼 보다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대체어를 찾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표현만 바꾸는 건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온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는 헌법 조문에서만 숨 쉬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비전향장기수들의 사상전향서 문제 같은 것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긴 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삶 속에서 양심의 자유를 권리로 체감하거나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서 반성문을 강요 당하면서도, 종교 재단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종교의식에 내몰리면서도, 회사에서 경위서를 가장한 반성문을 요구받으면서도, 그게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일이고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양심의 자유가 사회적으로, 경험적으로 이해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과정도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갈등과 논쟁, 토론이 무수할 거다. 이는 어쩌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고,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대체복무제라는 좋은 기회를 두고 논의의 수준을 과거 아주 먼 곳으로 되돌려버렸다. 우리는 어떤 대체복무제가 우리 사회에 더 큰 도움이 될지 토론하는 대신에 군대 간 사람들과 병역거부 하는 사람들 중 누가 더 양심적인지와 같은 성립 불가능한 질문에 대해 토론하게 됐다. 이 어리석은 상황을, 병역거부자와 군복무자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을 상황을 벗어나려면 방법은 하나다.

국방부는 이번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 그리고 '양심'를 대신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를 찾는 것은 국방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조급하게 표현만 바꾸기보다는 헌법상 권리인 '양심의 자유'가 무엇이고, 우리 국민들 개개인은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양심'보다 더 좋은 용어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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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