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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보류해왔던 고등학교 시절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나는 대학교 시절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것들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것에서 벗어나 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자유롭게 배우고 싶었다. 친구들과 농촌 활동을 기획해 떠나보기도 하며,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노년의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청년 거버넌스를 통해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는 오지랖 그만 부리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어때?"

대학교 마지막 학기,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내게 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동안 행해왔던 이 '오지랖'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엄마가 보기에는 취미생활 그 이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 때문인지 졸업 후 첫 직장을 갖는 과정에서 엄마와 많이 싸우기도 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하고 싶은 '오지랖'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엄마는 '오지랖'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오지랖이 뭘까?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어구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사람을 빗댄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곤 한다. 나는 기존에 통용되었던 이 부정적인 의미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서 '오지랖'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오지랖'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들이다. 

존재하는 어떠한 일들이 혼자서 할 수 있겠느냐마는, 기존의 존재하는 언어들로 정의하자면 '사회적 가치'가 높은 일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듯하다.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국민이 들었던 촛불일 수도 있겠고, 'Me too'와 'With you'로 행동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으며, 고 김용균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으라’가 투성인 한국사회에서 오지랖이 두 팔 벌려 환영 받을 수 있을까?
  ’가만히 있으라’가 투성인 한국사회에서 오지랖이 두 팔 벌려 환영 받을 수 있을까?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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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속에 오지랖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이유는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큰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감이나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오지랖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감정에서 비롯되었기보다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은 뭔가 치사하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또한 나는 마더테레사와 같은 성인군자가 아니므로 내가 하는 오지랖이 타인만을 위한 '봉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오지랖을 부릴 때 나 자신이 행복하며, 오지랖을 부리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이 거친 세상에서 나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이 오지랖이 사치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오지랖'의 대상들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이기도하다. 나는 내 삶이 더욱 풍요롭길 바란다. 그래서 더욱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 

활동과 노동 사이
 
   포켓몬스터 악당 로켓단의 가슴속에도 ‘세계 평화’라는 오지랖이 있다.
  포켓몬스터 악당 로켓단의 가슴속에도 ‘세계 평화’라는 오지랖이 있다.
ⓒ TV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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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직함 중 하나가 '활동가'이다. 내가 오지랖으로 정의하는 많은 일들 또한 '활동가'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곤 한다.

이들의 오지랖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와 같은 형태로 한정해서만 나타나지도 않으며, 종종은 주말에, 때로는 심야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분명히 수많은 오지랖을 행사하는 오지라퍼들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오지랖은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저한테는 6개의 명함이 있는데요. 음… 그 중에서 돈을 주는 곳은 이곳이고요. 나머지는 제가 하는 활동들이에요."

올해 언젠가 청년활동 네트워킹의 자리에서 만났던 분의 자기소개이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자연스럽게 명함을 교환하면서 소개하게 된다. 명함에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나와 있진 않지만, 명함 한 장을 통해 사람들은 대강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소개를 보면서 수많은 오지랖 종사자들의 일이 우리 사회에서 '활동' 이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직사이트 잡코리아에 약 13만 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음에도, 이 중 ‘활동가’라는 명칭으로 올라와 있는 채용공고는 단 18건 뿐이었다. (2018년 12월 17일 기준),
  구직사이트 잡코리아에 약 13만 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음에도, 이 중 ‘활동가’라는 명칭으로 올라와 있는 채용공고는 단 18건 뿐이었다. (2018년 12월 17일 기준),
ⓒ 잡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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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아직 '노동'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 오지랖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상상해보자. 모든 것의 단위는 '개인' 위주로 돌아갈 것이다. 많은 청년이 일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탓하며 한숨 쉴 것이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다리 올라타기를 시도할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도 '나만 아니면 돼'가 주문처럼 되새겨질 것이다.

오지랖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는 정말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도모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에 공기처럼 가득한 이 오지랖이 노동의 범위로 들어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오지랖이 단순히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는 것이 아닌, 철이 없어서 하는 행동들이 아닌, 같이 살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고파서 쳐다보고 있다면, 라면 한 젓가락 나누는 것도 오지랖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나중에 얻어먹을 수 있다),
  누군가 배고파서 쳐다보고 있다면, 라면 한 젓가락 나누는 것도 오지랖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나중에 얻어먹을 수 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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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것은 훗날 내가 오지랖과 함께했던 이 청춘의 순간들을 후회하는 것이다. 엄마가 염려했던 것처럼 '오지랖'이 나에게 생산적이지 않았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될까 무섭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오지랖은 지속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나의 오지랖이 20대에 멈추질 않길 바란다. 30대에도, 40대에도 그리고 노년이 되어서도 나는 오지랖을 부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지랖'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이라고 불리지 않는 수많은 오지랖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며, 많은 오지라퍼들이 소모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이라고 불리지 않는 것들이 가치를 드러내, 끝끝내 오지랖이 세상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2월 23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태그:#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서울청년정책LAB, #청년활동가, #오지랖,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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