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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북한 관련 정보는 매우 피상적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언론 보도는 정파로 나뉘어 특정 목적에 따라 왜곡되고, 선입견을 주는 정보가 적지 않다. 많은 매체들은 미국 정부 당국과 연구소, 교수의 입을 통해 북한 소식을 전한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오고 갈 수 있는 남북한이지만 이역만리의 제3자에게 듣는 북한 정보는 아무래도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수십 년 간 켜켜이 쌓인 선입견은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이때 품어야 할 문제의식은 과연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만큼 변할까'라는 점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이 중국에 고립과 억제 정책을 펴면서 일반인은 중국 관련 정보를 제한적으로 획득했다.

건축학자 임동우씨는 저서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 "냉전 시대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모든 교류를 끊고 있던 사이 중국은 폭넓은 국제관계를 맺었다"며 "뒤늦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인들이 크게 놀랐다는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설명했다. 남북이 서로 경계하고 있는 시간 북녘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격동의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북한 정보 또한 정치·군사·외교 분야에 치중된 면이 적지 않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열병식, 핵 미사일 실험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2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나름의 규칙과 규율 아래 움직이는 북한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지도자와 군사 동향'이라는 거대 담론에 휘말려 북한의 일상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평양의 현재와 미래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었다. 
 
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표지
 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표지
ⓒ (이미지=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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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과거와 현재, 미래 진단

한국과 미국에서 건축학 석사를 받은 임동우 저자는 미국 보스턴에서 설계 회사 프라우드(FRAUD) 대표를 맡고 있다. 정치학이나 북한학자가 아닌 이공계 출신 사업가가 쓴 책이라고 해서 일부만을 확대 해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기존의 이념과 고정관념, 선입견을 탈피해 보다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선으로 북한을 말하고 있다.  

크게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왜 우리가 사회주의 도시에 주목해야 하는지, 평양은 어떤 도시인지 알아본다. 이어 평양의 발전 전략을 시기별로 비교 분석했다. 평양의 도시 계획을 세운 건축가 김정희와 김일성이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 개념을 살폈다. 끝으로 평양의 잠재성을 논했다. 사회주의 도시에 자본주의 체제가 일정부분 도입된 평양은 시장화가 진척될수록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북한의 상징과 생산, 녹지 공간을 중심으로 발전상을 진단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은 유서 깊은 도시다. 서기 427년 고구려의 수도로 건립된 평양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과 가까워 정치·경제·교통 면에서 전략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대동강을 중심으로 무역을 증대해 경제성장을 꾀했다. 1930년대 대륙 진출을 모색한 일본은 평양을 거점 도시로 설정해 공업과 주거, 녹지를 포함한 장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일제히 붕괴하자 평양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사회주의 도시로 남았다. 체제선전의 장이자, 노동자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다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2010년 기준 면적 2629㎢의 평양에는 250만 명이 살고 있다. 북한 인구 2400만 명 대비 10% 남짓으로, 인구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저자는 "평양은 혁명의 수도로서 상징성은 갖되 주요 도시의 과도한 팽창을 억제하고 지방 소도시를 육성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에 따라 인구이동을 억제한 결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1953년 한국전쟁 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복구 사업을 벌였다. 도시 기반 시설을 살리고 수도 평양의 명성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김일성의 명령으로 모스크바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김정희가 평양의 도시계획을 짰다.

그가 내놓은 '마스터플랜(1953)'은 거시적 관점에서 도시 규모와 개발 지역을 규정하고 전반적인 성장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제한된 크기의 도시와 녹지 인프라, 상징적 광장의 개념이 담긴 이 플랜은 향후 평양의 도시 조직을 구성하는 밑그림이 됐다.

마스터플랜에 따라 평양은 지역 곳곳에 녹지 인프라가 마련됐다. 인공으로 조성되는 공원뿐 아니라 강과 산 등이 포함된 계획이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 간 위계질서를 고르게 만들고, 평양 주변부와 연계된 녹지 인프라로 도농 간 격차를 해소한 부분이다.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인 '평등'을 도시계획에 고스란히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OECD평균보다 많은 평양 녹지 인프라

저자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녹지 공간에 주목했다. 북한에서는 노동자의 여가, 도심의 팽창 억제가 어느 일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정희가 1953년 마스터플랜에 소개한 평양의 녹지 인프라는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그린벨트와 종종 비교된다. 

1970년 초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총 13개 지역에 적용된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고 주변의 자연환경을 제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 인구유입이 커지고, 개발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그린벨트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방사형의 평양 녹지 인프라는 무분별한 개발보다 녹지를 강조해 도시의 확장을 제한하는 구조다. 도심 곳곳에는 공원과 녹지 시설이 즐비해 시민들이 '자연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평양의 녹지 공간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30개가량의 공원과 놀이시설이 있고, 1인당 녹지 공간은 40㎡에 달한다. 1인당 평균 16㎡의 녹지를 보유한 서울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20㎡ 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녹지 공간으로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볼 때 평양의 1953년 마스터플랜은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도시화 문제는 과밀화와 계급의 공간적 분리, 계획 없는 개발로 인한 혼잡 등이다"며 "사회주의 도시계획 이론은 이를 해소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책에서 말한 평양의 가능성과 발전상은 북한의 모든 면을 말해주지 않는다. 북한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경제 활력이 막혀있다. 남북 교역도 쉽지 않아 개성공단 재개도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책이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그동안 정치와 외교, 군사 분야에 매몰된 북한에 대한 정보와 인식을 한층 넓혔다는 점이다. 

저자는 "앞으로 평양은 농경지가 주를 이룬 도시가 아니라 다른 국제도시들처럼 시가지가 중심을 이루는 도시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 시가지를 집중 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적대와 타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보다 풍성한 방법론으로 북한의 실상을 봐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드림연구소(www.dream09so.com)'에도 실립니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 평양 도시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시각: 1953-2011

임동우 지음, 효형출판(2011)


태그:#평양그리고평양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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