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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담 김상복.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그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
 솔담 김상복.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그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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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이전에 만났던 인터뷰이들의 근황이 궁금해 질 때가 있다. 누군가 내가 인터뷰했던 인터뷰이의 근황을 물어 올 때 "그러게, 나도 궁금한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것만큼 민망하고 미안한 일도 없다. 2018년의 끝자락인 요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지속적인 보도'를 하겠노라며 마음속에 스스로 새겨 넣은 다짐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관련 기사: 달항아리 만드는 도예가, 그가 숲길 지킴이 된 사연)
 
얼마 전 조선백자와 달항아리 전문 도예가로 널리 알려진 솔담 김상복(56) 도예가가 거처를 예산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원효대사의 전설이 곳곳에 새겨진 충남 예산의 가야산 자락이다. 솔담은 거의 다 쓰러져 가던 시골 마을의 빈집을 6개월간 고치고 또 고쳐서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고생끝에 낙은 왔다. 비록 그의 둥지는 비록 산골마을에 있지만 산과 산사이의 간격이 넓어 하루 종일 햇빛이 잘 들어 오기 때문이다.

솔담도 지난 1년을 매우 다사다난 하게 보냈다고 했다. 가야산 자락에 카페를 새로 짓는 과정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는 "지난 10월 초쯤 심근 경색으로 쓰러져서 119 신세를 졌다"며 "죽다 살아났다"고 말했다. 물론 희소식도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이후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는 지난 인터뷰에서 당진 사기소리의 백토는 조선시대 왕실 도자기 재료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도 광주의 금사리와 당진사기소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솔담은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이후, 1980년대 여주와 이천 등지로 사기소리에서 나온 흙(백토)을 운반했던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면서 "그들은 기사를 보고 반가워서 찾아 왔다고 말했다. 지금도 당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라고 전했다. 기사 하나로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연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솔담은 얼마 전 조선 백자의 빛깔도 찾았다고 했다. 조선백자 연구에 매달린 지 6년만이다. 사실 그가 생면부지의 땅인 당진 사기소리로 이사를 왔던 것도 조선백자를 재현해 보고 싶은 꿈 때문이었다. 하지만 솔담은 "아직 철저한 검증 과정이 남아 있다"며 특유의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지난 26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솔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도 의식주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다.
"몸을 다시 회복하는 중이다. 두 달 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갈 때만 해도 거의 죽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의술이 많이 좋아졌다. 올 때는 마치 꾀병을 앓았던 것처럼 금방 회복해서 돌아 왔다(웃음).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나흘간 입원했었다. 지금은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관리하고 있다. 집안의 우환과 사기소리 조선백자 복원문제가 겹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이 원인인 듯싶다."
 
 솔담 카페 한 편에는 그의 달항아리와 도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솔담 카페 한 편에는 그의 달항아리와 도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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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에서 예산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예산에 도예 카페를 차린 이유가 무엇인가.
"작업실을 옮기지는 않았다. 작가도 의식주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전부터 도자기를 팔수 있는 상점을 고민해 왔다. 당진에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당진 시내에 상점을 내는 것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단순히 도자기를 파는 상점으로 전락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도 비교적 저렴하고, 도자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장소로 이곳 가야산 자락이 적합해 보였다. 근처에 충남도청이 있어서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누구나 와서 잠시 도자기도 보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 주요 거점을 예산으로 옮긴 것인가.
"당진의 작업실은 그대로 둘 생각이다. 물론 여기 예산(가야산)에도 별도의 작업실을 새로 열 생각이다. 양쪽에서 모두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당진에서는 주로 야간작업을 하고, 이곳에서는 낮에 틈틈이 작업을 할 생각이다."
 
- 조선백자를 재현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조선 백자의 핵심은 빛깔이다. 일반적으로 백자하면 하얀색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백자의 빛은 강하면서도 온화하다. 그 빛깔과 느낌을 찾은 것 같다. 조선백자를 재현하는 작업은 마무리 단계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인증 받는 절차가 남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를 통해 철저히 검증할 생각이다. 도자기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공청회도 열 계획이다. 일단 당진 사기소리와 관련된 역사에 정통한 사학자와도 접촉 중이다. 충남 도자기의 역사 찾기가 시작됐다고 봐도 좋다."
 
-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장직도 내려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12월 20일자로 그만 두었다. 내포문화숲길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설레고 재미있는 일이다. 솔직히 아쉬운 점도 많다. 하지만 도예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내년에는 전시회도 열고, 연말에는 그동안 사랑받은 만큼 기부도 하고 싶다."
 
"지역 문화 예술인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할 생각"
 
- 예산에는 유명한 장승조각가도 있고, 지역 작가들이 여럿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는 교류를 하고 있나.
"예산에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워낙 많다. 장승 조각가 방유석씨와 옹기 장인도 예산에 살고 있다. 그분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은 '내 것'이 아니다.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기도 한 것이다. 행위는 예술가의 몫이지만 그 결과물은 사회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다. 문화예술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도 넓게 보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지식을 안으로 움켜쥐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 지역에서 분투하고 있는 청년예술가들이 많다. 예술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예술가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것도 좋다. 하지만 폼 잡지 않고 진실하게 살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살다보면 언젠가는 본인의 뜻을 이루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 한다."
 
솔담카페 옆에는 그가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작은 식당도 있다. 메뉴는 돈가스와 돌솥비빔밥이 전부이다.
 솔담카페 옆에는 그가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작은 식당도 있다. 메뉴는 돈가스와 돌솥비빔밥이 전부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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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상복 , #솔담 김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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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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