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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상 시인
 임호상 시인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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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여수 밤바다와 여수 맛집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문학을 빼놓을 수 없다. 어부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실린 중선배와 조금새끼의 애환을 아는가.

임호상 시인이 쓴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여수 해안가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판잣집에 육자배기 가락이 울려퍼지는 선술집이 모여있던 해안가. 그곳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고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여수의 어촌을 걸어보라. 출어를 준비하는 중선배(선원 7~8명이 타는 큰 어선)의 분주한 모습에서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조금새끼를 아는 진정한 여수지킴이 

임호상 시인은 <조금새끼로 운다> 시집에 이렇게 썼다.
   
출어를 앞두고 선착장에 동여맨 중선배의 모습
 출어를 앞두고 선착장에 동여맨 중선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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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배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조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초여드레, 스무이틀 간만의 차가 없는 조금이면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들 돌아오는 날. 조금이 되면 어머니 마음도 분주하다.

보름을 바다에 있다 보면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어머니 마음도 만선이다. 뜨거워진 당신은 선착장 계선주에 이미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랬다. 조금이 돼야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때, 갯내음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조금새끼.

서방 들어오는 날 속옷을 널어 방해하지 말라는 수줍은 경고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어머니의 빨랫줄에 속옷과 함께 널린 고등어 세 마리 누구 것인지 알사람 다 안다. (중략)

어쩌면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어머니는 모두 다 작은 각시 아닌가.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다. 조금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바다에는 소리 내지 못하는 파도가 쳤다. (중략)

문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파도소리 자꾸만 자꾸만 어머니의 가슴을 쳤다.


2016년 4월 임호상 시인이 이 시를 세상에 내놓자 반향을 낳았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여수로 와 지금까지 여수에서 살고 있는 여수지킴이다. 임호상 시인은 2008년 정신과 표현, 겨울노동 외 4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바다는 날것 그대로... "뭍과 밑이 그리운 삶"

사실 임 시인의 아버지는 어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아버지를 중선배 타는 어부로, 그를 조금새끼로 착각하게 된다. 

그는 막걸리 한잔 하다가 대포집 이모에게 '조금새끼'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조금새끼'가 뭐냐는 물음에 "노가다를 하는 분들은 비가 오면 하루를 쉬지만 조금새끼는 보름에 한번씩 조수 간만의 차이가 없는 조금이 되었을 때 중선배가 들어온다"는 설명으로 시작했다. 

이어 그는 "한 달에 두 번은 바다에 나갔던 남편도 뭍이 그리울 거고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도 바다에 나갔던 남편이 그립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며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때 사랑을 하고 그때 애를 가져 태어난 새끼를 조금새끼라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닷가는 그 시점에 애가 많이 태어났고 특히 제삿날도 비슷하다"면서 "바다에 가서 배가 안 들어오면 그 동네 제사가 똑같다. 돌아가신 날짜가 같으니까"라고 말했다.

"바다에 나가면 망망대해에서 조금이 아니면 돌아올 수 없으니까 기다리고 참는 애환들이 있죠. 모든 부모님들이 바다뿐 아니라 내 어머니도 칼바람 맞아가며 다라이 놓고 겨울을 견디고 장사를 해왔던 것처럼 바다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가정을 이어갑니다. 저는 조금새끼는 아니지만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애환을 내 나름대로 글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라는 표현이 조금 야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 시가 서정시였다면 밑이 그리웠을까라는 말을 뺏을 텐데 조금 더 날것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름 동안 바다생활을 하다 보면 선급 받은 돈을 봉투째 가져가서 선술집에서 먹어버리기도 했는데 그만큼 뭍과 밑이 그리운 삶이 바다 생활"이라고 말했다.

최향란 시인은 "임호상 시인은 꽃에 비유한다면 모과꽃과 같은 시인이다"라면서 "모과나무는 잎이 크다 보니 꽃이 숨겨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사과 꽃처럼 굉장히 예쁜 연분홍 꽃을 피운다"라며 "그의 시를 읽으면 이 사람 오래된 시인이구나 하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신병은 시인은 "그의 시를 읽으면 시가 어려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서 " 우리에게 길들여져 있는 언어가 얼마나 넓고 깊은 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게 해준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하루만 머물러도 여수에 반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임 시인의 또 다른 시 <여수의 노래>에는 여수의 토속적인 표현이 살아 있다. 하루를 머물러도 여수에 반할 수밖에 없다고 한 데 대해 그는 "여수를 사랑하고 좋아하다 보니 애틋한 마음과 여수에 대한 고민이 깊숙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호상 시인의 당신
 임호상 시인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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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오면 다 안다네 여수에 오면 다 안다네
맛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촌놈이란 걸

그냥 문 열고 들어가면 다 맛집인 것을
식객의 허영만 화백도 여수사람 아닌가(중략)

어머니 손맛이면 특급호텔 부럽지 않네
하루를 머물러도 여수사람이 된다


특히 <당신>이라는 시는 연말에 건배주로도 인기다.

19도 잎새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더니만
36.5도 당신
그 눈빛 한잔에

취하네


'19도 잎새주'를 알코올 도수와 술 이름을 바꾸면 된다. 이 시는 울산 고래축제에 초대돼 쓴 것인데 길게 쓴 부분은 날아가 버렸고 한 부분만 남아 탄생한 것이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많이 버렸을 때 좋은 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시"라고 말했다.
  
여수살롱 내부 모습
 여수살롱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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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고등학교 때다. 대학교 동아리 시절부터 시를 쓰게 되었고 이후 갈무리문학회와 여수문인협회 지부장 활동을 통해 시집을 준비하면서 점점 성숙해졌다. 여수 문인협회장 역임 후 현재는 갈무리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32기째 활동중이다.

한때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BBS단체에서 '10대들의 소리'를 만들었던 그는 집에서 반대가 심해 이벤트 행사전문기업인 '소리기획'을 만들었다. 창업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소리기획은 2012년 한국이벤트협회의 지역문화 예술부분 이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너무 예쁘게 쓰려고 하지 않고 내 경험에 의한 시들을 많이 썼다"면서 "잘 다듬고 버릴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시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코스 요리가 아닌 집밥처럼 편한안 느낌의 시라고 표현했다.

그는 복합문화공간인 '여수살롱'을 만들기도 했다. 3000장의 레코드를 소장한 현대식 공간인 여수살롱은 지난 7월 오픈했다. 그는 "이곳은 술파는 데가 아니다"면서 "옛날에 살롱은 좋은 사람들이 만나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여수라는 이름을 들어간 여수사람들의 만남과 소통의 공간을 꿈꿨는데 마침내 그 꿈을 실현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조금새끼로 운다, #임호상, #여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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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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