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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국민주권시대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지지하며 축사를 하고 있는 유은혜 교육부장관
▲ 민주시민교육 학술대회에서 교육부장관의 축사 장면(2018. 10. 27)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국민주권시대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지지하며 축사를 하고 있는 유은혜 교육부장관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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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의 참사를 배경으로 전국적으로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다. 서울에서도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2015년 서울시 교육청 안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되었다.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 교육부에서도 2018년 1월 '민주시민교육과'가 새로 설치되었다. 문재인 정부, 교육부는 12월 13일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민주시민교육은 북유럽과 중서부 유럽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왔던 교육과정이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학교교육을 통해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 시민성(citizenship)을 간직한 공화국 시민 양성을 목표로 오래 전부터 수행해 온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따라서 교육부 발표는 두 손 들어 온 마음으로 기뻐할 일이다.

교육부 스스로 그동안 우리나라의 시민교육이 '민주시민 양성과는 무관한 반공.준법 교육'으로 일관해 왔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과거의 시민교육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을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신민(臣民)을 양성해 왔음을 또한 인정했다.

그동안 교육부 관료들은 교육개혁에 저항하는 수구적 이미지의 상징이었다. 40만 교사를 민중인 개・돼지로 보면 되고 차등성과금과 교원평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모두 반교육적이고 천박한 교육정책임에도 무려 20년 가까이 지속돼 왔다. 그런 답답함 속에 나온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정책 발표는 가뭄에 단비를 넘어서서 신선함 그 자체였다. 촛불 정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담은 교육정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개혁성에 마지막 실낱같은 신뢰의 끈을 이을 수 있어 안도감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 실천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 발표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성을 회복하는 대목이어서 현장교사로서 크게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정책은 다음과 같다. 초중고 학생들을 능동적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서 내년부터 '민주시민학교' 51곳 정도를 선정해 운영한다. 나아가 2022년 초.중.고교에 민주시민을 기르는 시민교과가 신설돼 핵심교과로 육성할 계획이다. 또한 학생자치활동을 법적으로 지원할 상당한 수준의 학교현장의 변화도 예고했다. 이러한 정책 발표는 과거 교육부의 수구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를 은밀히 추진하며 그에 저항했던 교사들을 겁박했던 교육부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민주시민을 적극 양성하겠다는 교육부 정책 발표에는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맨 먼저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학교기구 안에 민주시민교육과정을 주도할 전담부서가 설치돼야 한다.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부서'가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서 실질적으로 권한을 부여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 차원에서 교육부가 대학들을 설득하고 견인하여 현존 국영수 입시중심의 파행적인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기능적인 지식인 영어와 수학의 이수 단위를 대폭 줄이고 필요한 학생들이 집중 이수할 수 있도록 선택과목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어와 역사, 그리고 사회와 시민 교과를 초중고 국민공통 필수과목으로 개편하는 혁명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선행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교과목을 신설해도 과거 '환경'이나 '시민윤리', '인간사회와 환경' 과목처럼 실패할 공산이 크다.

다음으로 민주시민교육을 내신에 반영하는 주요교과로 하되 수능과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한국사처럼 객관식 선다형 문제로 평가해서는 왜곡될 가능성이 짙다. 오늘날 한국사 수능과목의 전례를 밟아서는 안 된다. 한국사가 절대평가임에도 객관식 선택형 문제로 치러진다. 그 결과 한국사 과목은 건강한 역사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 암기과목으로 전락해버렸다. 따라서 민주시민교과는 수능절대평가로 치르되 반드시 논술형 평가방식을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교훈을 얻고 논술형 평가방식을 상기할 필요가 충분하다.

평가방식이 바뀌면 교사의 수업방식과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저절로 바뀐다. 한 마디로 교육주체들인 교사-학생-학부모가 교육을 대하는 삶의 방식이 바뀐다. 학교 내신과 수능시험에서 서・논술형 절대평가 방식일 때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고 토론을 통해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아가 토론과정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 경청하는 태도는 독서와 토론수업, 그리고 팀 프로젝트 수업과 발표수업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미국이나 독일보다 토론수업의 역사가 짧지만 토론수업의 내용은 세계적 수준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서울시 교육청은 내년부터 사회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논쟁, 토론 수업과 글쓰기 교육을 활성화한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를 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모델로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협약'이 체결된다면 학교 민주시민교육에도 일대 전환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된다. 나아가 서울시 교육청은 내년부터 초등학교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 협력수업을 도입한다. 중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국・영・수・사회・과학 교과군 가운데 최소 한 개 과목을 객관식 평가를 없애고 서・논술형과 수행평가로 학생을 평가한다. 한국교육에서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서울시 교육청이 교육개혁에서 선구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평가방식의 변화가 학교현장에 가져올 변화의 양상은 매우 크고 놀랍다. 따라서 교육공약으로 내세운 수능 절대평가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임기 내에 이뤄내야 할 교육개혁의 선결과제이다. 거기다 내신과 수능 시험 전체를 논술형 평가로 정착시킨다면 학교현장에 거대한 변화와 함께 아이들의 삶에도 근원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생각하는 힘과 생각을 확장시키는 경험을 통해 비판적 지성이 형성되고 자주성을 획득할 것이기에 그렇다.

자주성은 민주시민교육의 고갱이이다. 자주성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발휘되는 인격의 한 요소이다. 자주성을 고양시킬 때 자존감도 성장한다. 자주성과 자존감이 높아질 때 우리는 자율적 인간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그게 교육의 참된 경로이다. 더욱이 논술형 절대평가는 학교교육에서 과정평가의 연속선상에서 나올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학교교육이 과정평가로 구성되도록 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세 번째로 교육부는 학생자치활동을 법적으로 지원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학교현장에 상당한 변화를 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민주시민교육은 자율성을 체득해 가는 과정이자 학생 스스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자치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생자치활동은 어떤 의미에서 학교교육과정의 일부를 학생들 스스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직접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청소년의회와 청소년위원회 제도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현실정치를 체험한다. 그러한 학생자치활동을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 발 벗고 나서서 아낌없이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미래의 민주시민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려이자 교육적 성찰의 결과이다.

오늘날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총선 투표율이 80% 수준에서 높게 형성된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보는 직접적인 체험과 학생자치활동을 교육적인 차원에서 크게 장려해 온 결과이다. 민주시민교육이 박약한 한국의 총선 투표율과 비교해도 본받을 점이 많은 것이다. 참고로 2008년 18대 총선 투표율은 46%였고 2016년 20대 총선 투표율은 58%였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성 논란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의 위기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시민교육은 학교교육으로 한정해선 한계가 있다. 학교 밖 성인들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체제로 흡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선관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나 시민단체(NGO)가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해야 교육의 효능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기구에 해당하는 '민주시민교육원' 내지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의 건립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을 주도하는 주체는 시민활동의 영역에 맡겨 자율성을 극대화하되 국가는 '민주시민교육원' 내지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통해서 민주시민교육이 가능하도록 측면에서 적극 지원해 주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이나 주정치 교육원은 그런 점에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스웨덴의 시민학습동아리 육성정책도 깊이 숙고할 만하다. 스웨덴 시민 절대 다수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로 시민학습 동아리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더구나 오늘날 입시경쟁교육으로 포획된 현실 속에선 민주시민 교육이나 민주시민 양성은 요원한 일이다. 학교사회와 교육계 전반에 새로운 틀을 짤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들이 시급히 변해야 한다. 끊임없이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학교사회를 만들어 내도록 교육주체들이 변화할 때 그 속에서 민주시민이 탄생할 뿐이다. 그리고 어린 새싹들이 자라 사회에 나가서 자기성찰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성숙한 연대의식을 발휘할 때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을 뿐이다. 부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금번 교육부의 혁신적 정책들이 학교현장에 단단히 뿌리내리길 소망한다.

태그:#민주시민교육, #논술형 평가, #절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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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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