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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16 프란치스코 교황 멕시코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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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선출 이래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방면에서 개혁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교황청에 금융감독기구를 설치하는 등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으며 UN 아동권리협약의 기준에 맞추어 강화된 바티칸 형법을 승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사회적인 발언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 역시 전임자들에 비하면 매우 전향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개적으로 성적소수자들의 존재를 긍정하며 차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일례로 그가 '성소수자인 사람이 신을 받아들이고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또한 교회가 배척이 아니라 환영을, 혐오가 아니라 관용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미국의 성소수자 매거진인 <애드보케이트(The Advocate)>는 2013년에 올해의 인물로 교황을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보도된 바에 따르면 교황은 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지난 8월 스페인 신부인 페르난도 프라도의 책 <성소의 힘>에 실릴 인터뷰에서 '동성애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또한 '교회가 뿌리 깊은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도록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또한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상한 이야기다. 신부든 수녀든 간에 가톨릭교회에서 성직자로 일하기 위해선 반드시 순결 서약을 하고 이를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든 성적 행위가 금기시되는 가톨릭 성직자 사회에서 도대체 특정한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만을 배척하고 몰아낼 이유가 있는가? 서약을 지킨다면 그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평생 알 수조차 없을 텐데?

교황의 아리송한 발언과 그에게 일어난 일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같이 아리송한 발언은 보다 폭넓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해당 인터뷰가 이뤄지기 전인 7월 28일 교황은 추기경 시어도어 매캐릭의 사임을 수락했다. 매캐릭 전 추기경이 어린 소년을 성추행 했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미국 가톨릭교회가 그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매캐릭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심지어 이후에 비슷한 고발은 수차례 이어졌으며 그가 자신이 가르치던 신학대생을 불러 성적인 접촉을 했다는 증언까지 등장했다. 이 사건 이전에 매캐릭은 미국 사회에서 신망 받는 종교인이었고 그래서 파급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추기경이 임기 도중 사임하는 일이 벌어진 게 1927년이 마지막이었다. 그 정도였던 것이다.

심지어 매캐릭이 사임하고 얼마 뒤 수백 명의 가톨릭 사제들이 수십 년간 천 명이 넘는 피해자들에게 아동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해왔다는 펜실베니아주 대배심의 조사결과까지 발표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사태들의 여파는 성직자 사회 전반과 바티칸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제의 인터뷰를 한 8월에는 그가 매캐릭의 성추행을 알고도 묵과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했던 카를로 비가노 대주교는 동시에 바티칸에 동성애자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그들이 서로의 성직 생활을 도와주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물론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로 드러났으며 애초에 그는 반동성애 강경파에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껄끄러운 사이로 추정되었기에 그런 공격을 한 의도를 가늠하기도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쿠데타'라고 불릴 만큼 초유의 사건으로 회자되었으며 가톨릭 사회가 얼마나 큰 갈등과 혼란 속에 빠져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유독 '동성애자'가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되는 이유

사실 동성 집단 내에서의 성폭력은 가톨릭교회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군대에서도 교도소에서도 비슷한 일은 발생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들 집단의 공통점은 극도의 폐쇄성, 위계적인 권력 관계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 피해자가 조력을 구하기 어려운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의 만연한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나 동성 집단 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심지어 가해자가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완강히 주장하는 때에도(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정말 많다) 사건의 원인이 개인의 '성적 지향'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애가 아닌 성적 지향을 일탈적인 것으로 여겨 이를 폭력이나 범죄와도 쉽게 연결시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과 앞서 언급한 가톨릭교회의 상황을 연결시켜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발언이 왜 나왔는지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하다. 이어지는 고위 성직자와 가톨릭 공동체 내부의 성범죄 고발 속에서, 그 역시도 이를 공동체 구조가 만들어 낸 문제가 아니라 성직자 개인의 '성적 지향'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은 아예 성직자가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그 시기에 할 이유가 있을까. 또한 얼마나 있을지도 모를 '동성애자 사제'들의 존재에 우려를 표하며 그들에게 '이중생활을 하느니 교회를 떠나라'는 발언을 한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동성애' 그 자체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에게 조직 내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고 있건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를 향한 교황의 모순된 발언들

사실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모순적인 때가 많았다. 가령 2015년 '동성결혼 반대'를 안건으로 슬로베니아에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을 때를 살펴보자. 이 시기 슬로베니아 보수 가톨릭 단체들은 거액의 돈을 써가며 동성결혼 반대투표를 독려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슬로베니아의 가톨릭 주교들이 배후에서 이 일을 조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일을 놓고 무슨 말을 했을까? 황당하게도 그는 생명의 원천과 가족을 방어하려한 슬로베니아의 모든 사람들과 교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보다 한 달 전에는 결혼을 재규정하려는 시도 때문에 가족이 위협받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재규정하려는 시도'라는 게 이어지는 국제적으로 이어지던 동성결혼 법제화를 지목함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

이뿐이랴 그는 같은 해 4월에 '젠더 이론이 창조의 질서에 반한다'는 발언을 했다. 심지어 젠더 이론이 핵무기와 유전자 조작과 같은 것 마냥 비교했다. 그렇다면 그 이론에 기반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발판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창을 발견할 트랜스젠더와 젠더 퀴어들의 존재는 무엇이 되는가. 젠더 이론이 그렇게나 유해한 것이라면 말이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교황은 그들에게 매우 큰 무례를 범한 셈이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순된 발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인간이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가지고 있다고 신실하게 믿는다면, 성별이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그래서 이를 횡단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성정체성이 존재할 수도 있음은 부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저 지닌 몸에 따라 지정된 성별대로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가 가톨릭교회가 방어하고자 하는 주요 가치임도 생각해보자. 그는 성소수자를 사랑으로 보듬겠다고 하지만 결코 이들을 위해 자신이 믿는 경전을 재해석하거나 혹은 스스로가 지키고자 한 가치를 질문하지 않았다. 여기서 교황의 성소수자를 향한 접근법이 지닌 한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소수자를 향한 온정주의적 시선이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소수자를 향한 온정적 태도가 지닌 한계  

소수자를 그저 온정적으로 대할 때, 이들은 오직 기성사회나 제도에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만 동정을 받는다. 가령 사람들은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이 등장하는 구호단체 광고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이 난민이 되어 국경에 등장하면 위협으로 간주한다. '장애우'라는 해괴한 말까지 만들며 장애인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을 전시하던 사회는 이들이 '평등하고 안전한 이동권'을 주장하며 지하철에 등장했을 때 얼마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나.

이는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적소수자를 막연히 불쌍하고 억압받는 존재로 여기고 동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는 교황과 같은 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사랑으로 보듬자고 했다. 그러니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그게 어려울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이 정도 선까지 다다르지 못한 종교인들도 많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앞서 든 예시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자기가 수호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질문해야하는 때에 그 지점에서 멈춰 섰다. 교황은 자기가 몸담은 가톨릭 공동체를 성찰하거나 성경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대신 그저 성소수자들에게 꼬리표를 달거나 배척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성소수자도 신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그러므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물론 이는 소수자를 대놓고 경멸하는 것보다야 나은 태도이긴 하다. 하지만 소수자를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들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은 채 오직 사랑과 관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시혜적이고 공허한 결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된 교황의 이번 인터뷰에서 드러난 것처럼 막연한 대상은 멀리 있을 때만 안전하게 여겨지며, 그들이 자신의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의심스러운 타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익숙한 편견과 혐오로 이어지길 반복한다. 또한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면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필요도 없어진다. 그런 태도가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존재들을 얼마나 좌절시키든 말이다.

나는 이런 태도에 진정한 사랑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말이다. 어쩌다 교황이 이런 일의 사례가 되었는지 씁쓸하긴 하지만 이 점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동정과 시혜와 온정은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이다. 애초에 상대방을 보는 시선 자체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를 혼동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가 가진 모순을 스스로 폭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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