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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2학기가 되니까 주변 남자 동기들이 군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은 신체검사를 받고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며 하는 말이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였다. 자신이 남자여서 군대를 가는 셈이니까 동기의 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남자만 군대를 가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짜증을 내던 주변 남자 동기들의 발언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단순한 투정이 아닐 것이다. 여자 동기들을 째려보며 자신이 군대에 가는 것이 마치 여자의 탓이라도 되는 듯 가시 돋힌 말을 내뱉었으니까. 그 상황이 불편했고, 동기들의 발언이 일종의 여성혐오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지식이 타인을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박을 하는 건,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 것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책표지
▲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책표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책표지
ⓒ 봄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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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는 혐오로 시끄럽다. '이수역 폭행사건'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대결구도에 불을 붙였다. 이 과정에서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이 다시 언급이 되면서 혐오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단순한 인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해 다룬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찾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 여성혐오를 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첫 장을 펼쳤다. 저자는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차별을 바라보기에 발생하는 2차 가해, 그리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나쁜 의도의 순진한 척하는 질문들을 나열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덧붙여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겪어온 여성혐오들을 언급한다. 결국 마지막은 남성들은 이해하기 위한 노력조차 안 하고 있었고, 여성은 계속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주장으로 맺어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해를 시키려 노력한다'는 말, 묘하게 모순입니다. 이해란, 원래 시키는 게 아니라 하는 겁니다. 대화를 마치고 '이해시키느라 힘들었다'는 소리가 나온다면, 상대가 해야 할 이해를 도와주는 노력을 했는데 그게 힘에 부쳤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럼 힘을 키우면 될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계속 말하겠으나 당신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잠깐, 이해가 누구 몫이어야 하는지는 짚어둡시다. '이해'가 성립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누가 하고 있는 지도 봅시다."(22쪽)
 
기득권자 vs 비기득권자

책에서는 여성이 차별의 경험을 말할 때면 상대는 맨스플레인,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남자가 약자라고 말하는 역차별 주장, 군대 이야기와 같은 말들로 대화의 논점을 흐린다. 그러며 페미니즘이 보다 휴머니즘이 우선이라며 여성혐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저자가 글을 쓴 이유가 이것이다.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상대에게 의견을 똑바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여성에게도 대화에서 대답을 할 의무가 없으며 해보다가 안 되면 언제든 대화를 끝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바이다.

저자는 여성들은 대화를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아직 잘 모른다는 생각에 주저한다고 말했다. 물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인 리베카 솔닛보다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직접 경험으로 쌓인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렇기에 그 어떤 통계자료보다 정확한 자료라고 말했다. 우리는 좀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도 된다.
 
"불평등을 논할 때는 어떤 통계자료도 부당함이 안겨준 감각보다 더 정확할 수 없습니다. 감각이 모여서 수치가 되었지, 수치가 모여 감각이 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말하면서 정확한 근거를 운운하는 이유는 상대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있는 직관이 그에게 부재한 탓입니다. 학습하고 모방해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직관 없는 자들의 무지한 주장들이 왜 이토록 강력하게 통용될까요? 간단하게도, 이 사회에서 그들의 힘이 센 탓입니다."(45쪽)
 
저자는 리베카 솔닛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표현한 "내 말을 가로막는 것과 나를 죽이는 것은 하나의 비탈 위에 놓여있다"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덧붙여 상대방의 행위가 무엇이든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중히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모진 말을 하는 것' 이상의 용기를 내야함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원치 않는데 상대방이 내가 겪는 차별에 무지하다는 이유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신에게 내상을 입히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는 상관이 없다. 남자의 의도와는 관련 없이 그들의 무지함이 나를 상처 입히기 때문이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한다?

저자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게 의미가 없다는 주장에 이렇게 답했다. 누가 질문하느냐에 다라 대답이 정확히 다르다고. 여성혐오 문제에 관심을 거의 가진 적 없는 남성들이 묻는 거라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고서야 여성혐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기에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손쉽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라고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똑같이 혐오로 맞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토록 만영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있어야 했고, … , 남성혐오 직전까지 여성들이 수없이 제기해온 온건하고 지적인 비판에 반응을 했어야 합니다."(113쪽)
"저는 늘 제 목소리가 확신을 얻어 확실해질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겪으며 사실 제 목소리는 원래부터 생각보다 믿을 만했고 어떤 순간에는 오로지 나의 목소리만을 믿을 수 있으며, 그러니 지금보다 더 믿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당신의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있으며 확신은 가지는 순간에 생깁니다."(180쪽)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나 또한 여성혐오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말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여성혐오가 부당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자신감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이 가진 직접적인 경험은 정확하니까 두려워할 필요없다.

나는 여성들이 계속 공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수록 단단해진다고 단언한다. 또한 다음 세대가 아닌 내가 사는 세대부터 변화한 사회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여성혐오가 사라지는 건 단순히 여성만이 평화로운 사회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진실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일 것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리커버 특별판)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봄알람(2016)


태그:#여성혐오,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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