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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빗속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 장애인에게 경찰이 우산을 씌워 준 사진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18대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방송연설에서 언급할 정도로 전 국민에게 '감동'을 자아낸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경찰관의 소속과 성명이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인터뷰도 회자됐다. 그런데 정작 장애인이 왜 빗속에서 1인 시위를 했으며, 구체적인 요구가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경찰은 장애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서 우산을 씌워주었다. 사진을 찍은 시민 역시 장애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촬영해 SNS에 게시했고, 이를 소개한 언론도 경찰에만 주목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장애인 활동가가 폭우에도 거리에 나온 이유가 경찰의 '우산'과 국민의 '감동'을 바라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후문으로는, 경찰이 우산을 씌워준 것이 당사자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체 이 사건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친절도 공부가 필요하다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 2018년 11월 13일 출간. 김형수, 김홍미리, 오창익, 박홍식, 이문영, 서민 글.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 2018년 11월 13일 출간. 김형수, 김홍미리, 오창익, 박홍식, 이문영, 서민 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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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인권연대(사무국장 오창익)가 진행한 인권특강들을 글로 엮은 책이 최근 출간됐다.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은 '장애인', '여성', '빈곤' 등을 키워드로 우리사회 인권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쉽게 풀어낸다. 그중 첫 강연을 맡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의 말을 보자.
 
'저는 소원이 하나 있어요. 비 한번 맞아 보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제가 비를 맞고 있으면 어디선가 꼭 우산을 들고 뛰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목발 짚은 사람이 처량하게 비 맞고 있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예요. 저도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런데 한번쯤 물어봐주세요. 혹시 지금 비를 즐기고 있는 거냐고요.' (p.22)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김형수 국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비 맞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목발을 짚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친절은 고맙지만, 그전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한번은 그가 KTX를 타는데 누가 말없이 그의 엉덩이를 손으로 밀어준 적도 있다고. 심지어 낯선 이웃이 집 현관문 번호까지 대신 눌러주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는 '본의 아닌' 차별 사례들을 소개한다. 상대는 친절과 배려에서 한 말이고 행동이지만, 정작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차별로 느껴지고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친절한 마음이 친절한 행동이 되기 위해선,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상대를 단순히 '약자'나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동등하게 바라보면, 자연히 의사를 묻게 된다.
 
여러분이 혹시라도 식당에서 목발을 짚은 사람을 보시면 꼭 물어봐주세요. "제가 식판 들어 드릴까요?" 그다음에 "얼마나 떠드릴까요?" 이런 센스가 필요해요. (...)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시면 돼요. (p.30)

인권은 '나'를 위한 것

물론 우리가 인권을 공부하고 실현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남을 잘 돕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만약 어떤 학교가 장애인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장애인인 '나'가 사고로 장애를 입는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권을 지켜야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다. 누구는 장애인이지만 부유한 남성이기도 하고, 누구는 비장애인이지만 가난한 여성노동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디에선가 우리는 약자이고, 얼마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역사는 남이 아닌 나의 권리를 위해 행동할 때 발전해왔다. 독립운동은 자국민이 자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고, 민주화 역시 독재에 맞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주권을 쟁취하려는 투쟁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할 때 나의 권리는 물론 우리 사회도 한 걸음 진보할 수 있다. 물론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곁에서 이 책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 장애, 페미니즘, 불평등, 고전 공부, 평화, 남녀로 바라본 인권 이야기

김형수 외 지음, 철수와영희(2018)


태그:#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 #인권연대, #오창익 , #김형수, #장애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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