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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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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누구는 무죄, 누구는 유죄라면?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9단독은 동성 간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된 육군 장교 A씨에게 지난 2월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같은 혐의의 육군 장교 B씨와 부사관 C씨에게 지난 1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도 역시 같은 혐의의 육군 부사관 D씨에게 지난 3월 유죄를 선고했다.

A~D씨에게 적용된 군형법 92조 6항에는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강제 여부와 상관없이 군인 간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이 이뤄지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군형법에서 '계간(동성 간 성관계)'을 처벌하는 내용이 빠졌지만, 이 조항은 여전히 동성애를 처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추행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은 군형법만의 독특한 내용이다. 일반 형법은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추행 외엔 추행만을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다. 강제추행(형법 298조), 준강간(299조)과 같이 "폭행 또는 협박",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등이 전제돼야 죄로 인정한다.

무죄 판결 재판부 "의사에 반한 성관계만 처벌"

A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은 군형법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판부는 "(군형법 92조 6항은) 강제력의 수반 여부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지 여부, 그 시간이나 장소 역시 불문하고 항문성교 등의 추행을 한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해당 조항은 위계·위력 등을 이용해 상대방 군인의 의사에 반하여 항문성교 등의 성적 만족 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같이 판단한 이유로 "해당 법률조항의 보호법익(법의 규정이 보호하려고 하는 이익)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재판부는 "우월적 지위나 권세 등을 이용한, 상대방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군무를 이탈하게 하는 등의 원인을 제공한다"며 "그러나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구강성교, 항문성교 등의 성적 만족 행위의 경우 이 사건 보호법익에 위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가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은밀하게 행해짐으로써 타인의 혐오감을 직접 야기하지 않는 경우 군기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은 없다. 형법이나 성폭법에서의 추행은 (중략) 피해자의 의사에 반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도 이를 고려함이 타당하다. 또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은 동성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입맞춤, 포옹, 성교행위 등의 성적 만족 행위를 (중략)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만기전역으로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A씨와 달리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B~D씨에게는 모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각 재판부는 "군형법상 추행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B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C·D씨에게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선고유예는 유죄 취지의 판결로,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유예기간 동안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형을 면하는 제도이다.

문제의 조항 '군형법 92조 6항'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2017년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2017년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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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92조 6항을 주제로 한 논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어왔고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인권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선 이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폐지를 요구하는 반면, 동성애 혐오 세력 측은 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 사안은 인사청문회의 단골 질문거리이기도 하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 8월 후보자 시절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인데, (군형법이) 동성애를 혐오·차별하고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를) 단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과거에) 폐지 의견을 낸 바 있다"라고 답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은 지난 9월 후보자 시절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하더라도 (군형법에 따라) 다 같이 처벌받는다, (때문에 군형법이 실제 성폭력을 당한) 하급자의 입을 막게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성폭력이 발생해도 가해자가 쌍방 처벌하는 현행 군형법을 이용해 피해자를 회유·협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영진 헌법재판관은 지난 9월 후보자 시절 "동성애는 개인의 기호, 성적 취향이라 존중할 부분이지만 군 내에서의 동성애는 국토를 수호해야 할 군인의 특수성의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라면서, '군형법 92조 6항이 위헌이 아니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지난해 2월 인천지방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따른 것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은 위헌)하면서, 내년으로 예상되는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한 결정도 주목받고 있다.

A~D씨의 변호인을 맡은 군 법무관 출신 김정민 변호사는 "2013년 개정돼 '계간'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진 후, 군형법에서 동성애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라며 "군형법 92조 6항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성범죄를 상정한 조항이지 막연히 과거처럼 동성애 성관계를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군사법원에선 바뀐 조항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는 상황이다"라며 "국제사회의 표준에 비춰 봐도 동성애자를 군인이란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 수준을 의심받을 수 있는 사례다"라고 덧붙였다.

태그:#동성애, #군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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