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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다락 전경
▲ 협동조합 다락 전경  협동조합 다락 전경
ⓒ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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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떠올려 보자. 구체적으로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피라미드 모양의 가장 아래 단계에 있는 생존의 욕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가 기본욕구에 자리한다.

폭우 속에서 편안히 거할 수 있고, 늦은 밤에도 안전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없다면 우리는 상위 단계에 있는 욕구를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도시라지만, 내 옆에 사는 누군가가 불안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협동조합 '다락'이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일이다. 주거 환경이 불안한 독거노인가정,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집을 수리하고, 나아가 그들이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 이를 통해 마을이, 그리고 도시 모든 이가 안정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다락은 매일같이 동네 곳곳을 손본다. 수리비 대신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오는 날도 있지만 이마저도 행복하다며 웃는 사람들, 다락이 만들고 싶은 마을이 이제 조금씩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다.

집과 마음의 상처를 손보다

대전시 대덕구 대화동에 자리한 협동조합 다락은 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공공시설 인테리어 사업 등을 진행한다. 저소득층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족 가정을 방문해 집을 수리하는 게 다락의 일이다.

"이전에도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무료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돕곤 했어요. 회사가 자리한 대화동에는 저소득층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정이 많은데, 그분들은 집에 문제가 생겨도 방치하세요. 수도관에 문제가 생겨 집안에 물이 차는데도, 수리비용을 지불하기가 어려워 손을 쓰지 못하는 거죠. 그런 가정을 방문해 크고 작은 수리를 하다 보니 이 일을 업으로 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함께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김창일 이사장과 원종승 이사장을 중심으로 뜻이 맞는 사람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힘닿는 만큼이라도 돕겠다며 생업과 협동조합을 병행하는 조합원도 생겨났다. 그렇게 조합원 일곱 명이 모여 지난해 10월 협동조합 다락이 탄생했고, 올해 초에는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며 더욱 확실한 목표도 설정했다.

김창일 이사장이 취약계층 주거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사회활동가로 일하던 김창일 이사장은 수많은 현실의 벽을 경험했다. 생계를 위해 잠시 활동을 접고 다양한 직업에 뛰어들었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삶의 무게들이 때때로 무겁게 다가왔다. 좌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쯤 다락에서 함께하는 원종승 이사장을 만났다.

"불안전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어려웠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절망과 상실감을 경험했던 만큼 지금 절망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건네고 싶었죠."
 
협동조합 다락 김창일 이사장
▲ 협동조합 다락 김창일 이사장  협동조합 다락 김창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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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움을 주고 뻔뻔하게 도움을 받는다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건넨 손길이었지만 이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들은 따뜻한 손길에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창일 이사장와 원종승 이사장은 상처받는 대신 "생각해 보시고 연락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들이 천천히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대상자가 마음을 바꿔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무료로 집을 수리했고, 마지막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경우에는 수리에 드는 재료비를 지불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이 다치지 않고 자존심 상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예전에 한 할아버지 집을 수리해 드린 적이 있는데, 이후 그분이 조금씩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봤어요. 인간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걸 보면서 다락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물론 재료비를 돈으로 내지 않으셔도 돼요. 집주인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힘닿는 만큼의 비용이나, 도움을 저희에게 주시면 그걸로도 충분해요. 라면 한 그릇 얻어먹고 나오는 날도 있는 걸요."

집수리를 받은 한 할머니는 반찬을 만들어 조금씩 가져다주기도 하고, 다문화가정에서는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며 커피를 내밀기도 했다. 다락 조합원들은 이를 가치를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순히 한 사람이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주고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얽혀 있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가치를 나누고 그 개념을 풀뿌리까지 넣어 보고 싶은게 다락의 작은 욕심이다.

"저는 도움 받은 사람이 건네는 걸 뻔뻔하게 받으려고 노력해요. 받는 사람이 미안하지 않게 도움을 주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거든요. 도움 받은 사람이 미안하지 않으려고 나에게 무언가를 건넨다면 당연히 반갑게 받아야죠. 그래야 사회적 가치가 두 사람 사이를 편하게 오갈 수 있어요. 누군가 뻔뻔해져야 한다면, 제가 먼저 뻔뻔해지는 게 좋죠. (웃음)"

사회적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다

김창일 이사장이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건 시민연대에서 활동하던 2004년도다. 당시는 유럽에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을 배운 유학생들이 한국에 돌아와 그 개념을 전국 단위에 알리는 시기였다.

김창일 이사장도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 사회적경제를 국내에 도입하고 이를 육성할 수 있는 법안과 센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과거의 경험이 남아서인지 회사를 설립하는 단계에서 구성원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함께 일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협동조합으로 회사를 꾸려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개인적인 욕망도 더해졌다.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서만큼은 사회적가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희망, 그렇게 조합원 모두가 존중받는 협동조합으로 다락을 운영해야 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협동조합 다락이 만들고 싶은 가치 있는 사회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다. 이를 위해 다락은 앞으로 주거환경 개선 사업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다락이 가장 먼저 주목한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 여성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직업소개소를 통해 직장을 얻는데, 소개소에서는 6개월 단위로 일자리를 교체하게 한다. 3개월 동안 한 곳에서 일하고, 3개월 동안 잠시 일을 쉰 뒤 다른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일의 연속성이 떨어져 전문성을 얻기가 힘들다. 불안정한 고용상황은 결국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고 만다. 그래서 다락은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이 인테리어 작업 등에서 필요한 일손으로 참여하며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전문성도 높일 예정이다.

행복한 삶을 고민해 볼 여유를 주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이 하루에 벌수 있는 수익은 천 원에서 2천 원 사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생활비로도 모자란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정적인 주거환경은 상상할 수 없는 꿈이 돼 버리고 만다. 힘든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그래서 다락은 월급 형태로 폐지 수거 사업을 진행해 저소득층 노인에게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할 예정
이다. 생활비를 제하고도 조금씩 저축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을 지불해 저소득층 노인에게 의·식·주 외에도 행복한 삶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다.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절감 난방 지원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저소득층 대부분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집에 거주한다. 또한, 전기요금을 지불한 여력이 없어 추운 겨울을 그대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락은 최소한의 전기로 최대한의 보온성을 가진 신소재 전기담요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공공기관에 판매하고 얻은 수익은 저소득 가정을 위한 전기담요 구입비로 충당할 예정이다.

"저희가 계획한 일들이 쉬운 일은 아니죠. 정말 성공만 보고 간다면 훨씬 빨리 갈지도 몰라요. 그런데 빨리 가서 뭐해요.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살아보니 의미 없더라고요. 저도 삶에 많은 굴곡이 있었어요. 제가 어렵던 시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건 그래도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 가면 외로운 법이죠. 더디지만 같이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태그:#협동조합, #다락, #사회적경제연구원, #월간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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