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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쓰'의 1차 일회용 플라스틱 컵 모니터링 후 모인 컵들. 뚜껑과 컵홀더 재질도, 컵 색깔도, 표면 직접인쇄 모습도, 빨대 색깔도 모두 제각각이다. 이런 다양함은 플라스틱 컵 재활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어쓰"의 1차 일회용 플라스틱 컵 모니터링 후 모인 컵들. 뚜껑과 컵홀더 재질도, 컵 색깔도, 표면 직접인쇄 모습도, 빨대 색깔도 모두 제각각이다. 이런 다양함은 플라스틱 컵 재활용을 더 어렵게 만든다.
ⓒ 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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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아파트에만 쭉 살았다. 쓰레기는 언제나 정해진 곳, 정해진 시간에 관리사무소 관리하에 내놓았고, 모인 쓰레기는 잘 정리되어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단지는 늘 깨끗했고, 내가 버린 쓰레기는 내 곁에 한 조각도 남지 않았다. 길을 가다 거리에서 보이는 쓰레기는 그저 남의 것, 누군가가 치울 것으로 여겼다.

독립 후에는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즐비한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밀도 높은 서울의 골목에는 손으로 눌러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와 같은 경고문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골목의 전봇대 앞은 쓰레기로 일주일에 세 번씩 뒤덮였다.

비닐봉지와 택배 상자에 담겨 배출된 쓰레기 중 미처 엮이지 못하고 흘러나온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와 비닐 포장지들은 곧잘 담배꽁초가 촘촘히 박힌 하수구 구멍에 조마조마하게 걸려 있다 비가 오면 휩쓸려 내려갔다. 비 온 후 하수구 아래를 볼 때마다 무척 괴로웠다. 재활용되기를, 바다 생명과 우리가 삼키지 않기를 기도하며 분리수거에 공들인 나의 시간과 노력이 무용하게 느껴졌고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지난 4월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중국 등지에 쓰레기를 수출하는 업체에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판매해온 일부 아파트 단지들은 큰 불편을 겪었지만, 자치구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우리 집 앞 쓰레기는 어김없이 제날짜에 치워졌다.

빌라에 살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미루고 미루던 문제가 드디어 터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거운 마음으로 SNS 타임라인의 쓰레기 관련 글들을 훑다 평소 좋아하는 어쩌면사무소에서 '플라스틱 없이 살기 가능할까'라는 제목의 이야기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이야기 손님인 금자에게 플라스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종류와 특성이 있는지, 어떻게 분리수거를 해야 재활용할 수 있는지,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용기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들었다. 플라스틱은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재활용하기는 참 까다로운 물질이었다.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예시 플라스틱 용기가 재활용되려면 단일 재질로 생산되어야 한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www.pkg.or.kr)의 정보자료실 43번 게시물인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기준 등급 정보 사례집'을 받으면 우리가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하는 플라스틱이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한 개선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예시 플라스틱 용기가 재활용되려면 단일 재질로 생산되어야 한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www.pkg.or.kr)의 정보자료실 43번 게시물인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기준 등급 정보 사례집"을 받으면 우리가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하는 플라스틱이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한 개선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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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그만!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고 그중 두 가지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나 같은 개인 즉 소비자만 죄책감에 시달리고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자들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동참시키고 싶었다. 또 당장 플라스틱 사용을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한 번만 쓰고 쉽게 버리는 플라스틱은 줄이고 싶었다. 한 번 쓰고 바로 버리는 플라스틱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루에 한두 잔은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금자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 모니터링을 진행하려 한다며 '어쩌면사무소' 모임에 참여한 몇몇과 빠띠의 '쓰레기 덕질' 모임원들 몇몇을 모아 자리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두 모임 이름의 앞글자를 딴 '어쓰'가 탄생했다.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은 카페 업체와 협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많은 매장을 보유한 카페 업체까지 총 28개 업체를 조사하기로 했다.

'크리킨디센터' 청소년들도 힘을 더해 총 84개 매장을 조사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제공 여부 외에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재질 확인과 빨대 제공 방식 등도 함께 조사했다. 우리는 모두 자발적으로 자신의 지갑을 열어 가까운 매장을 방문해 음료를 마셨다.

결과는 처참했다. 86.7%가 묻지도 않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제공했고, 플라스틱 빨대는 100% 제공했으며, 로고나 그림이 인쇄돼 재활용이 어려운 컵을 90.5%가 제공했다. 우리는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냈고 두 곳의 신문사와 인터뷰도 진행했다. (국민일보 인터뷰, 한국일보 인터뷰)

그리고 약 12명 정도의 우리들뿐 아니라 이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함께 카페 업체와 환경부에 전하기 위해 빠띠의 캠페인 플랫폼 '가브크래프트'에 캠페인 '28개 커피숍에 1회용컵 줄이기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를 올려 10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했다.

우리의 인터뷰를 읽고 또 읽으며, 쌓여가는 서명 참여자 숫자를 매일 확인하며 가슴이 울렁대고 눈가가 뜨끈해졌다. 나와 세상이 직접 연결된 문제 앞에 이제는 혼자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내 목소리가 홀로 울려 퍼지는 것을 꺼렸던 두려움이 사라지는 기쁨에 내 마음이 오르내린 탓이다. 나를 직접 노출하지 않아도 나의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어쓰'라는 이름과 간접 참여의 직접성을 극대화하는 캠페인 플랫폼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리 스스로 찍은 마침표 '2차 모니터링'
 
2차 모니터링 사진 모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모두 다회용 컵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일부 업체의 매장에서는 여전히 플라스틱 식기, 빨대, 컵 뚜껑 등을 제공했다.
▲ 2차 모니터링 사진 모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모두 다회용 컵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일부 업체의 매장에서는 여전히 플라스틱 식기, 빨대, 컵 뚜껑 등을 제공했다.
ⓒ 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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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어쓰' 중 몇몇이 다시 모였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테이블에 앉아 나는 계속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10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더는 나 혼자의 고민이 아니라고 느끼게 해준, 나의 적극성에 불을 붙여준 이름 모를 고마운 사람들 말이다.

이미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현격히 줄었다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들에게 우리 활동의 결과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조사했던 매장 중 일부를 다시 찾아가 조사했다. 결과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보도한 것처럼 다회용 컵 사용 100%였다. 내용을 정리해 서명 참여자들의 이메일로 발송하고 같은 내용으로 보도자료도 한 번 더 발송했다.

처음처럼 뜨거운 반응이 있거나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마무리였다. 조직된 운동이 아닌 자발적인 몇몇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었던 우리 활동에 우리 스스로 마침표를 동그랗게 잘 말아 찍은 느낌이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소비를 줄이는데 큰 몫을 한 카페 업체들에도 감사를 전하기로 했다. 10월의 휴일 오후, 한 카페에 모여 스케치북을 넘기며 감사 영상 편지를 만들었다. 감사와 칭찬의 내용 중에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컵 뚜껑, 식기 제공을 멈춰달라는 추가 메시지도 잊지 않고 넣었다.

쉽지 않더라도 분명히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변화가 있다는 믿음이 '어쓰' 활동을 통해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았기에 또 다른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 전달이 덜 낯설고 덜 두려웠다.

앞으로 '어쓰'를 어떤 형태로 지속할지, 어떤 쓰레기 문제에 어떤 방법으로 대응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쓰레기가 줄었다는 작은 승리의 기쁨에 잔잔히 젖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쓰레기 문제 중 함께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을 때 다시 모여 활동하리라 생각한다.

'자발적 협력.' 조직에 속해 있을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지만 참 이루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해관계나 깊은 친분 없는 '어쓰'가 조직 없이 움직인 이번 활동이 그 말에 가장 가까웠다. 이것 또한 작은 승리다. 두 가지 작은 승리를 품에 안고 우리들의 다음 활동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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