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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숙소가 위치한 도쿄 다이토구 이리야라는 동네. 봄이어서 그런지 동네 전봇대, 가로등에 화사한 조화를 꽂아놓았다.
 내 숙소가 위치한 도쿄 다이토구 이리야라는 동네. 봄이어서 그런지 동네 전봇대, 가로등에 화사한 조화를 꽂아놓았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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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넓고 깨끗한 방, 여기 일본 맞아?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어, 일찍 오셨군요. 도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6개월 전인 지난 3월 하순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나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났는데 오후 3시쯤 숙소에 도착했으니 일본이란 나라는 참 가까운 나라다.

도쿄도(東京都) 다이토구(台東区) 이리야(入谷)란 곳에 위치한 숙소의 관리인이 반갑게 맞아 방으로 안내했다. 방금 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즉 서울 같으면 기본요금 3000원이면 될 것을 1200엔(한국돈 1만 2천원)이나 내서 속 쓰렸던 기억은 싹 사라지고 앞으로 1년간 살게 될 방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한 사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조붓한 계단을 따라 4층에 올라갔다. '일본은 모든 것이 좁고 작다더니 정말 그렇네' 하고 일부러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올라가니 방이 서너 개 있고 그중 맨 처음 문을 여니 사진으로만 미리 봤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리모델링을 끝낸 집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 단장한 바닥이나 벽은 깨끗했고,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는 일본식 방 구조는 신기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좁은 집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생각 외로 방이 넓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에는 냉난방 겸용 에어컨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세탁기와 냉장고까지 떡 하니 들어와 있었다. 출발 전에 '방만 있지 가재도구나 가전제품은 전부 여기 와서 새로 사야 한다'고 하길래, 모르는 척하고 '거기 입주하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공용 냉장고, 세탁기같은 거 없냐'고 투정했더니 건물 사장님이 자기 딸내미가 쓰던 걸 가져다 놨다는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도쿄에 많다는 중고품 가게에 가서 세탁기, 냉장고부터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큰 일 하나 줄었다. 고마운 일이다.

창문을 여니 전깃줄이 얼기설기 쳐진 전봇대가 바로 앞에 있어 신경이 좀 쓰였지만 깨끗한 거리가 내려다 보이고, 바로 앞에 아담한 사찰(처음엔 절인지 신사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의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신사라면 왠지 께름칙한데 절이면 나쁘지 않지.

사실 이 집 관리인은 내가 일하고 있는 <오마이뉴스>의 일본 법인 오마이뉴스재팬 기자였던 사람이다. 거의 20년 전 얼떨결에 일본에 와 일본 여성이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돈 없이 아이를 넷이나 낳고 사는 비결을 내용으로 하는 책까지 써서 유명 작가 반열에 올라 있다.

얼마 전까지 식당이나 술집을 한다고 하더니 작년 이맘때부터 오래된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다음 방을 세놓는 재일교포 회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일본에 가는 게 결정되기 전부터 '만약에 가게 되면 당신이 지금 고치고 있는 건물에 들어갈 테니, 내 방 하나 좋은 거로 떼어놔라'고 신신당부한 게 이 방에 입주하게 된 계기가 됐다.

1년간 공부하게 된 대학에서 주는 학교 근처 기숙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좀 멀다는 단점이 있지만 방세가 기숙사보다 오히려 싸고, 무엇보다 타국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앞뒤 잴 것도 없이 이 집에 입주하기로 했다.
 
 돈키호테와 동네 슈퍼, 100엔샵에서 장만해온 가재도구와 식료품들. 뭐 빠진 거 없나.
 돈키호테와 동네 슈퍼, 100엔샵에서 장만해온 가재도구와 식료품들. 뭐 빠진 거 없나.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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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TV. 책상 옆의 조그만 책장은 건물 사무실에서 빌려왔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TV. 책상 옆의 조그만 책장은 건물 사무실에서 빌려왔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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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도구-생필품을 한 나절에 다 장만하다

단출한 짐 가방을 대충 풀어놓고 관리인의 손에 이끌려 인근에 있는 번화가 우에노로 향했다. 가재도구와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돈키호테'. 가게 이름이 되게 재밌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게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할인점인 줄은 몰랐다. 중저가 생활용품들이 잔뜩 들어차 있다. 싸구려 중국산 제품들이 많아 보였는데, 이걸 멋모르는 중국 관광객들이 싹쓸이 쇼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다.

이때껏 한 번도 자취를 해보지 않은 터라 홀아비생활에 뭐가 필요한지 정신이 없는데 관리인은 뭐든지 척척이다. 마구 골라주고 나는 바구니에 담기가 바쁘다. 아직 쌀쌀한 3월인데 이마에 왜 그리 땀이 나는지... 이불, 요, 매트, 베개를 고르고 전기밥솥, 냄비, 프라이팬 등을 하나씩 장만했다.

다음에 간 곳은 '햐쿠엔샵(100엔숍)'. 한국에도 비슷한 가게가 있지만, 모든 것을 100엔(1000원)에 파는 곳이다. 이곳에선 밥그릇, 국그릇, 수저, 젓가락, 휴지, 칼 같은 주방생활용품을 역시 한 개씩 구입했다.

집 근처로 와서 들른 슈퍼에서는 한국의 슈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매일 필요한 식료품은 여기서 사면 되겠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 각종 식료품 가운데 식용유, 마요네즈, 간장 등을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기무치' 한 통도 담았다. 반가운 김치. 한국 사람이 김치 없이 살 수 없지, 암. 그 기무치가 김치가 아니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러던 중 눈에 번쩍 띈 것, '참이슬 288엔'. 너무 반가웠다. 288엔이면 한국 돈으로 3000원이 안 된다는 얘긴데, 분명 1000원 남짓인 한국보다는 비싸지만 아주 부담되는 건 아니다. 한 개 130엔 정도 하는 신라면과 함께 가장 반가운 아이템이었다. 원만한 일본 생활의 서광이 비치는 듯 했다.

10년 전 아부다비의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울며겨자먹기로 시켜먹었던 3만 원짜리 소주나 2년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먹었던 1만5천 원짜리 소주가 생각났다. 그래, 외국도 외국 나름이지. 
 
 숙소의 옥상에서 본 세계 최고의 전파탑 스카이트리. 앞으로 이 연재기사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숙소의 옥상에서 본 세계 최고의 전파탑 스카이트리. 앞으로 이 연재기사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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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맨 윗집엔 누가 살아요?"

양 손에 잔뜩 짐을 들고 집에 오는데 관리인이 말했다.
"저기 보이는 게 우리 집이에요."

아까는 바로 문 앞까지 다가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건물에 들어갔던지라 잘 몰랐었는데, 이제 하얀 색 건물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새로 단장을 해서 깨끗하네'라고 생각하다가 문뜩 맨 위층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 맨 위에 옥탑방 아니에요?"
"예. 맞아요."
"저기 누가 살아요?"
"네? 저거 형님 방이잖아요."

그렇다. 저게 내 방이었다. 서울에서도 한번 살아본 적 없는 옥탑방. 도쿄 옥탑방 생활이 이렇게 시작됐다.
 
 앞으로 1년간 살게 된 도쿄의 옥탑방. 오래된 건물을 지난 겨울 리모델링했다.
 앞으로 1년간 살게 된 도쿄의 옥탑방. 오래된 건물을 지난 겨울 리모델링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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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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