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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간다고요? 에이, 볼 것도 없고 갇혀 있어서 답답한 도시 아닙니까?"

한국을 방문하기 전, 내가 대구에 간다는 말을 전해 들은 후배가 못마땅한 투로 던진 말이다. 분지라서 가장 더운 곳이 대구라는 상식과 정치 지형적으로도 '섬'을 형성해 온 대표적인 도시라는 선입견에서 던진 말일 것이다. 하지만 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초가을에 방문한 대구는 이 같은 얄팍하고 알량한 선입견을 투어 초입에서부터 무너뜨렸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입구 벽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입구 벽화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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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현장에 있다'는 여행의 명언이 한순간이 떠오른 것은 첫 방문지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가면서 였다. 김광석이 누군가.

2000년대 초반 쯤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답시고 한창 낑낑거리고 있을 때 "요즘 잘 나가고 있는 '김광석 CD'예요"라며 처제가 건네준 선물로 처음 김광석을 알게 되었다.

이후 김광석 노래는 지친 이민 생활에서 무뎌져 가는 감성을 자극한 '소울(soul)'이었다. 때로 10시간이 넘는 미국 고속도로 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챙겨 듣는 노래가 되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부르는 듯하지만 절대 아무렇지 않은 김광석의 노래는 귀로 들으면 말짱 헛일이다. 가슴으로 들어야만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 마음으로 부르고 마음에 호소한 그의 곡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개미있는(감칠맛이 나는)' 노랫말과 곡조로 가득 차 있다.

김광석이 '노래하는 시인'으로, '노래하는 철학자'로까지 불려지는 이유다. 그의 시 같은 노래 '잊혀지는 것' 한 귀절을 떠올려 본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 했었지
눈부신 햇살아래 이름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에 투명하던 눈길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이하 생략)

 

처음엔 그랬었다. 그의 노래들을 무심코 들으면 풋내 가득한 20대의 질펀한 연애감성과 목표 잃은 30대의 허허로운 독백,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신파조의 구시렁거림, 역사 현실에 대한 대책없는 불만 등이 다가온다. 심지어 한 비호감 청년이 가졌을 법한 열패의식과 비극적 현실에 대한 책임회피 의혹도 뛰쳐 나온다. 최루탄 연기 가득한 그 시절에 웬 소시민 청년의 청승맞은 사랑 타령이란 말인가.

그러나 좋은 노래의 진실은 대중에게 금방 먹혀 들어온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노랫말과 곡조는 자신의 삶에 진지한 한 신도의 '간증'으로 타고 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높아지려 하지 않고 나누기를 즐겨했다는 그의 따뜻한 삶이 담겨진 노래가, 암울한 시기에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던 젊은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치료제 역할을 했다는 고백들을 들으면서부터는 진실에 대한 확신이 더해졌다.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우선 그의 아픔이 아프게 느껴지고, 듣는 나의 아픔으로 자연스레 스며온다. 그의 간증은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연애할 때, 군대에 갈 때, 서른 즈음에, 심지어는 먼 훗날의 노부부가 되어서 노래 속에 우선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담아냈고, 듣는 자들의 진실까지 담아냈다.

그의 노래는 부르는 자와 듣는 자의 실존적 고백이 되고, 그런 노래는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 불의의 죽음 후에 그의 몸에서 나왔다는 7개의 사리는 까닭 없이 나온 게 아니다.

가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걷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입구에 세워져 있는 '연주하는 김광석' 동상
 김광석다시그리기길입구에 세워져 있는 "연주하는 김광석" 동상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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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햇살이 따가운 초가을 오후에 두 세 사람이 나란히 걸면 꽉 차게 될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걷는 것은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도 이런 저런 상념을 갖게 한다.

초입에 김광석이 다리를 꼰 채 기타를 들고 벤치에 홀로 앉아 노래하는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오른 쪽 벽면에 그의 활짝 웃는 모습과 함께 그의 초기 곡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적혀 있고 그의 중저음 노래가 흘러나왔다. 역시 감미롭다.

조금 더 걷자니 녹색 바탕에 분홍색 벤치들이 덩그러니 주욱 길가에 붙여져 있는 사이로 일단의 청소년들이 벽면 노랫말들을 진지한 표정으로 읽으며 재잘거린다. 저들이 1980, 1990년대 젊은이들의 고민과 고통과 슬픔, 한과 희망을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까. 딴은, 김광석 노래의 생명력이라면 능히 시공을 뛰어넘어 청소년들의 폐부에까지 닿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벽화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벽화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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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바탕에 벚꽃이 흩날리는 속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고 있는 벽면 그림과 '일어나' 노래를 형상화한 벽면 그림을 지나 10여미터를 더 걸었다. 두 노인이 나란히 등을 돌리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쓸쓸한 모습의 대형 그림이 눈에 금방 들어온다. 그 유명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한 번 듣고 나면 부모님들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서, 일찍 보낸 짝에 대한 그리움을 너무 사무치게 해서 다시 듣기를 망설여지게 한다는 노래다. 운전하면서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어느 분은 슬픔이 북받쳐 갓길에 차를 세웠다는 일화도 있다. 짝을 앞세운 남편의 심정을 그린 이 노래만큼 한국민의 정서와 삶을 리얼하게 그린 노래가 있을까.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형상화한 표지판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형상화한 표지판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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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몇 분과 함께 콧노래로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흥얼대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 화살표 표지판이 골목을 향해 세워져 있는 지점에 이르자 피식 미소가 번져 나왔다. 이 노래 역시 가볍게 부를 노래는 아니다. 다가올 환희의 세계를 불안한 마음으로나마 미리 가져다 맛보는 노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현재 진행하고 있는 남북화해 무대로 가져가면 딱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역사의 길목에서 불어오는 화해의 바람을 타고 우리네들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이하 생략)

 
 
흥얼흥얼 읊조리며 네댓 발자국을 옮기니 모형 기타 하나가 쇠말뚝에 횡으로 매달려 있다. 아마도 김광석의 실물 기타를 본떠 놓은 듯했다. 모형기타를 들어 눈을 감은 채 '광야에서'를 조용히 불러본다.

며칠 전 수유리 문익환 통일의 집 행사에서 안치환도 '광야에서'를 불렀다. 잃어버린 땅에 대한 한반도 민중과 민족의 아픔을 거친 노랫말로 외쳐 부르게 하는 뜨거운 노래다.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서른 즈음에'를 그린 벽화
 김광석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서른 즈음에"를 그린 벽화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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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다보니 이틀전 윤태옥 다큐 제작자가 들려준 '길 위에서 읽는 한중현대사' 강의가 떠올랐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한 동맹 관계의 유동성을 강조한 강의였다. 그는 현재의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독립운동 시절의 '한중동맹' 역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강의 말미에 '까딱 잘못하면 우리는 조계(지)가 될수 있고,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뼈있는 얘기를 했다. 강의 후에 "현재 우리의 '조계' 정도가 60퍼세트에서 70퍼센트는 되지 않을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주저없이 "그보다 더하다"고 했다.

'서른 즈음에'를 노래하는 모습을 비롯한 여러 벽화를 지나친 후에 '이등병의 노래'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장정들을 가득 실은 입영열차 그림이 컬러풀 한 것이 왠지 낯설고 특이하다.

논산 연무대로 향하는 칙칙한 색깔의 입영열차에 실리자마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초조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옛일이 생각났다. 분단된 우리 땅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려낸 '이등병의 편지'는 북한에서도 선전용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며 비교적 한산한 평일 오후에 김광석 그리기 길을 걷자니 좁은 골목길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김광석이 통닭 꾸러미를 들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생전 김광석의 삶을 소개한 글들에 따르면, 그는 소심하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대인' 기질의 가수였다고 한다. 공연장 대기실에서 닭튀김 냄새를 풍기고 다녔던 그는 누구에게나 소탈하고 따뜻하게 대했다. 형편 어려운 후배나 동료가 있으면 선뜻 돈을 빌려주었고, 돈 없는 햇병아리 후배들의 데뷔 무대를 주선해주기도 했다.
 
  다섯번째 골목인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근대로의여행' 골목 투어 안내판.
  다섯번째 골목인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근대로의여행" 골목 투어 안내판.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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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은 친절하게 말을 시키며 긴장을 풀어주곤 했던 김광석을 그리워했고, 긴 무명 시절을 겪은 윤도현은 자신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큰 도움을 준 김광석에게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까칠이'로 이름난 한 여가수도 김광석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리움과 슬픔에 겨워 눈물을 훔쳤을 정도였다고 한다.

2010년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350미터의 그리 길지 않은 길로 소탈하고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걷는 내내 이제는 가고 없는 김광석의 노래와 그의 삶을 현장에서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대구는 그리 답답한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포함한 '근대로의 여행골목'에 꽤 신경을 써온 듯했다. 다섯 번째 골목인 김광석거리 끝자락부터 이어지는 박태준-이은상의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대구 제중원, 선교사 묘지, 삼일만세운동길, 125년 된 대구제일교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쌍탑' 계산성당 등 아름답고 우아한 대구의 근대문화유산이 줄지어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근대로의 여행골목 투어를 정말 의미있게 하려면 반드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골목에서 감동을 먼저 체험하기를 권유한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터덕터덕 두어 시간 그의 노래를 들으며 걷노라면 머리는 맑아지고 가슴은 뛸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 김광석을 팔공산 품에 안은 대구는 김광석 거리 하나만으로도 닫힌 곳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사이트에도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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