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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조경사가 부러 다듬기라도 한 것처럼 겉모습도 아름답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조경사가 부러 다듬기라도 한 것처럼 겉모습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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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 들어 늙으면 아프기 십상이다. 병원에도 자주 오간다. 병이 깊어지면 시름시름 앓다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게 섭리다. 나무도 매한가지다. 비바람에 가지가 가리가리 찢겨지고 여기저기 부러진다. 속도 썩는다. 외과 수술을 받아 지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나무는 다르다. 지난 겨울의 혹독했던 추위도 거뜬히 이겨냈다. 같은 나무들이 많이 말라 죽어 안타깝게 하는 것과 대비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튼실하다. 말라 죽은 나뭇잎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파리가 하나같이 파릇파릇하다. 지금도 새싹을 틔워 올리고 있다. 찢기거나 부러진 나뭇가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다. 자그마치 400년을 넘게 살았다.
  
 장흥 정남진전망대. 서울 광화문에 빗대 정동쪽의 포구를 정동진, 정남쪽의 포구를 정남진으로 부른다. 삼산리 후박나무를 지나서 만난다.
 장흥 정남진전망대. 서울 광화문에 빗대 정동쪽의 포구를 정동진, 정남쪽의 포구를 정남진으로 부른다. 삼산리 후박나무를 지나서 만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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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그루의 후박나무 가운데 두 그루. 얼핏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다르다.
 세 그루의 후박나무 가운데 두 그루. 얼핏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다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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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으로 가는 길에 만난 후박나무 이야기다.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산서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을 지나는 조붓한 도로의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다. 가을이 무르익는 지금도 싱싱한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나무의 형태도 넓고 아름답다. 누구라도 발길 멈추게 한다.

나무는 저만치 떨어져서 보면 영락없이 한 그루다. 조경사가 다듬기라도 한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면 놀란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닌 세 그루다. 두 그루는 가까이 붙어 있고, 한 그루는 조금 떨어져 있다.

자라는 모습도 저마다 다르다. 두 그루는 얼핏 한 그루처럼 보인다. 뿌리가 눈에 띄게 다르다. 나뭇가지도 나란히 사이좋게 올라 바깥쪽으로 많이 펼쳤다. 따로 또 같이 서로 불편하지 않게 거리를 뒀다. 조금 떨어진 다른 한 그루는 가지를 위로 많이 뻗어 올렸다. 두 그루는 옆으로, 한 그루는 위로 펼친 모습이다.

서로 배려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라도 한 것 같다. 세 그루가 사이좋게 영역을 나눠 전체적으로 완벽한 반원형을 만들었다. 평소 소통이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모양새를 갖췄다. 흡사 숲을 연상케 한다. 세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이룬 숲이다. 상대를 배려하며 함께 잘 사는 모습 그대로다.

우리의 정치가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배려와 양보, 타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치판이다. 서로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비방하고 막무가내로 헐뜯기 일쑤다. 후박나무가 보여주는 공존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배우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리네 인간살이에서도 배우고 닮아야 할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후박나무의 위용. 가슴 높이 둘레가 2-3m에 이른다. 두 팔을 양쪽으로 두 번은 펼쳐야 겨우 닿는다.
 후박나무의 위용. 가슴 높이 둘레가 2-3m에 이른다. 두 팔을 양쪽으로 두 번은 펼쳐야 겨우 닿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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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인심이 후한 나무


삼산리 후박나무는 세 그루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키가 13m, 폭이 동·서로 각 12m, 북으로 13m에 이른다. 가슴 높이 둘레도 놀랍다. 나란히 붙은 두 나무는 3.2m와 2.3m, 남쪽 나무는 2.9m에 이른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려서 가슴 높이 둘레를 가늠해 본다. 두 번은 완전히 펼쳐야 겨우 닿는다.

후박나무가 뭍에서 이만 한 크기로 자라는 일이 흔치 않다. 문화적 의미는 물론 학술자료의 가치도 크다. 천연기념물 제481호로 지정돼 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르고 키가 큰 나무다. 한자로 두터울 후(厚), 클 박(朴)을 쓴다. 나무껍질이 두껍고 큰 데서 이름 붙었다.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이 두꺼울수록 약효가 좋다고 한다.

완도와 신안 등 남해안과 제주도 같은 해안지방이나 섬에서 주로 자생한다. 수형이 대체로 아름답다. 동백나무처럼 잎에서 윤이 흠치르르 난다. 이파리보다 누런 잿빛의 나무껍질 향이 좋다. 구토, 곽란, 복통, 설사 등에 좋다고 전한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산서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을 지나는 조붓한 도로 변이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산서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을 지나는 조붓한 도로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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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 된 삼산리 후박나무 두 그루. 얼핏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다르다. 나뭇가지도 나란히 사이좋게 올라 바깥쪽으로 펼쳤다. 따로 또 같이 다정스런 형제 같다.
 400년 된 삼산리 후박나무 두 그루. 얼핏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다르다. 나뭇가지도 나란히 사이좋게 올라 바깥쪽으로 펼쳤다. 따로 또 같이 다정스런 형제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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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리 후박나무는 1580년경 경주 이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동·서·남·북에 심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심은 것이 이 나무다. 마을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 당산나무다.

어르신들은 크고 작은 소원을 이 나무신에게 빌었다. 어린이들에겐 신나게 뛰놀던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나무에 오르고, 매미와 사슴벌레도 잡았다. 숨바꼭질도 했다. 여자아이들은 둘러앉아 종잘종잘 이야기를 나눴을 테다. 누군가는 서슴서슴 망설이며 아랫마을 미경이한테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을 고백했을 것이다.

"옛날에는 여그 나무 아래에 큰돌들이 많았어.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새참을 먹던 곳이었어. 아그(아이)들 놀이터였고. 그때는 그냥 큰돌이었는디, 나중에 그것이 고인돌이라더만. 고인돌은 지금 따로 옮겨졌지. 그래서 우리는 고인돌자리 쉼터라고 불러. 여그를."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한 어르신의 얘기다.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후박나무. 삼산리 후박나무는 찢기거나 부러진 나뭇가지 없이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후박나무. 삼산리 후박나무는 찢기거나 부러진 나뭇가지 없이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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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서마을에 사는 어르신이 유모차에 기대 삼산리 후박나무 앞을 지나고 있다.
 산서마을에 사는 어르신이 유모차에 기대 삼산리 후박나무 앞을 지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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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지금도 마을사람들에게 쉼터를 내주고 있다. 나무 아래로 널빤지가 깔려 있다. 높낮이도 판판하게 맞춰져 있다. 평상 같다. 지난 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식혀주던 공간이다. 사람들은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에 눕거나 앉아서 땀을 식혔다. 그제서야 널빤지에 붙여놓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문구가 이해됐다. 한켠에 빗자루가 놓인 이유도 짐작됐다.

삼산리 후박나무는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줬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는 잠시 두 다리 펴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어린이들에겐 놀이터를, 선남선녀들한테는 사랑을 속삭이는 공간을 빌려줬다. 나아가 마을의 안녕과 평화도 지켜줬다.

후박나무를 닮은 마을사람들은 지금껏 순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무와 사람이 항꾸네 오순도순 정답게.
  
 삼산리 후박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면서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나무를 닮은 마을사람들도 순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무와 함께.
 삼산리 후박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면서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나무를 닮은 마을사람들도 순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무와 함께.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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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