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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서점엘 들른 나와 딸애는 우연히 역사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날따라 시간도 넉넉했고 강의 제목이 '딸과 하는 역사 이야기'였던지라, "너를 기다리는 강의 같지 않니?"라며 딸을 꼬드기게 되었다.

적당히 꼼지락대는 딸 덕에 끝까지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로 활약했으나 이름이 지워진 분들의 흔적을 다룬 강의 후,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친일파라 분류되는 시인의 시가 아직도 대한민국 '국어 교과서'에 번듯하게 실려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지극히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여 진 서정주의 시를 친일했다는 이유로 국어 교과서에서 빼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다.

강의장을 나서면서 나와 딸은 강사가 답변한 부분에 대해 꽤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강사의 답변에 동의했던 딸이 나의 반론을 듣고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것으로 우리의 토론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당시 나의 반론은 이랬다.

'서정주의 시는 아름답다. 그런데 그의 시만큼 혹은 더 아름다운 시가 단연코 없었던 걸까? 해방 공간 이후 내로라하는 좌익의 시인, 소설가 등의 작품은 왜 교과서에서 사라져 전무하게 된 걸까? 이것을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서정주의 시가 아름다우냐 아니냐를 논하는 게 본질일까?'

  
국어 교과서의 탄생
 국어 교과서의 탄생
ⓒ 글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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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딸애와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던 나는 <국어 교과서의 탄생>(글누림)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무척 흥미를 느꼈다. 이것이 국어 전공자나 읽을 법한 이 책을 선뜻 잡게 된 이유였다.

국문과 교수인 강진호는 국어비평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교과서의 탐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언어교육과 문화교육을 목적으로 다양한 글이 수록된 '국어교과서'를 고찰하는 것은, '근대 한국인의 탄생과 기원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대 계몽기부터 2002년 교과과정까지의 '공적 기획물로서의 교과서'를 연구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돋보인다.

<근대 계몽기> 국어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국민소한독본] [소학독본] 등은 외견상 조선민족주의를 함양하려는 의도임에도 다분히 일본교과서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의 국어교과서는 '우민화, 제국 신민화, 황민화'를 위해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 하면서도 조선은 일본의 하위주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내면화시켰다. 즉, '나를 닮되, 나와 같아서는 안 된다'는 '동일화'와 '차이화'를 모순적으로 작동시켜왔다.

해방 이후 독립이 되었다고 식민의식이 일거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초등국어교본]도 일제 때의 교과서를 답습, 교정하면서 만들어졌다. 식민주의를 종식하고 독립국으로서의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단군, 이순신을 부활시켰고, 우리나라 지리와 산물을 강조하며 근엄하고 위압적 내용을 없애 낙관적이고 천진한 동심을 강조했다.

<미군정기> 국어 교과서는 좌우익 범 문단을 포괄하며(44명중 11명이 좌익)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목적에 맞게 반공주의적 내용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승만 집권기인 <단독정부기> 동안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은 '일민주의' 고취를 위해 정권홍보를 위한 다수의 글을 실으며 좌익 문인들의 글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안호상(학도호국단 창설), 이범식을 주축으로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친일파들의 글이 대거 실리게 됐다. 이들 친일파 필자들은(김활란, 백낙준, 백두진, 유창순 등) 친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반공국인 미국을 찬양하며 애국자로 변신했다.

이후 <박정희 집권기(1963-1973)> 동안 국어 교과서는 정치적 의도를 구현하기위해 극심하게 도구화되었다. 필자 대부분이 '국가재건회의' 등의 인사들로 꾸려졌는데, 박종홍(국민교육헌장 제작), 이은상('고지가 바로 저긴데'), 김기석(새마을운동 고취) 등이 대표적으로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데 주력했다.

'멸사봉공'과 '효'를 국시로 하여 국토에 대한 주술성, 순결성을 강조해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과 '전체주의적 호전성'을 잠재시키며 무비판적인 '국민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북을 객관적으로 타자화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배제하고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악마화하게 되었다. 극심한 반공주의는 분단의 아픔을 동시대에 겪고 있는 북한을 한민족이 아니라 남한에 해가 되는 존재로 각인시키며, 남한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내부의 적을 생산해내는 이데올로기로 정권을 유지하게 작동했다. 자국민 내 '빨갱이' 혐오를 부추겨 지속적인 자기검열과 내부 분열을 초래하는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이후 2002년 교육과정에서 북을 역사 속에 편입시키는 작품들이 실리긴 했으나(윤흥길 [장마], 김용택 [그 여자네 집] 등), 북을 현실적 주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추억 속의 무시간적 원초적 공간 속으로 묶어두는 퇴영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나름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지닌 역사적 주체로 바라보는 객관적 타자화의 시점이 결여된 결과다. 국어 교과서 속 각인된 반공주의로 억압과 왜곡으로 악마화된 북의 실상을 정확히 확인하고 해체해 개방된 시각으로 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체성이란 미리 주어진 정체성을 승인하거나 아니면 자기 충족적인 예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늘 타자성의 질서를 차이화 하는 과정과 주체의 표상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p368).

교과서는 국민교육을 위한 권력의 핵심 장치로 개개인의 내면과 행동 규율들을 습득하게 하는 매우 내밀한 도구이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특히 권력에 경도됨이 심하여 교과서에 실린 내용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못했다. 따라서 "교과서의 분석은 일상, 신체 속에 구조화된 국민, 국가권력, 집단 무의식의 발원지를 찾아내는 작업"(p464)인 것이다.

과거의 교과서는 지식, 문화, 규범 등을 제시하는 전범이었으나 급변하는 시대 속에 이제 더 이상 만인을 위한 교과서는 없다.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특히,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균형 잡힌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매우 중요한 이 부분이 문제적이다. 과거에는 전무했고 지금도 균현 잡힌 관점으로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교사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서슬 파랗게 을러대던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 훌륭한 지도자라 치켜세우는 기적이 일어났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확실시 되고 국회 연설을 할 계획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을 보다 가만 생각해 본다. 나는 북한을 중국이나 일본 같은 이웃 나라만큼이나 알고 있나? 그리고 혼자 답해본다 "모르고 있다"

< 6.25, 빨갱이, 빨치산, 괴수 김일성, 삐라에 늑대의 얼굴로 분했던 북한민들,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 판문점 도끼 만행, 간첩, 무장 공비, 땅굴, KAL기 폭파범 김현희, 아웅산 테러 등 > 이런 적대적인 수사를 빼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북한이 있긴 한가? 이 모든 부정적 표상들을 나는 어디서 습득하게 되었나? 돌이켜 보니 거의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교실에서 얻은 정보였고 비판적 관점을 제시해 주는 교사를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 또한 '기획의 산물인 교과서'에 꼼짝없이 포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들 통일과 평화를 말한다. 통일과 평화는 핵만 없앤다고 우리 앞에 돌연 당도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토록 금기시하며 혐오했던 북을, 그 곳의 사람들을 알아야 할 시간이 임박했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가 내 책상에 오도카니 놓여 있다.

국어 교과서의 탄생

강진호 지음, 글누림(2017)


태그:#국어 교과서의 탄생 , #반공주의 , #교과서 , #친일파,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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