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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 로마에 둘러싸인 세계 최소 국가
▲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 로마에 둘러싸인 세계 최소 국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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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자가 될 뻔하다

2017년에 겪은 일이다. 헝가리에서 체코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에서 내 여권에 문제가 있다며 잠시 나를 불렀다. 담당자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본 뒤 나에게 말했다. 내 여권이 현재 분실 신고된 상태란다. 신고된 때와 장소는 2014년 이탈리아 로마라고 했다. 

로마!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렇다. 분명 난 당시 로마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러나 소매치기당한 물건은 여권이 아니라 휴대폰과 지갑이었다.

영미권에는 "유럽에서 지옥을 맛보려면 이탈리아인이 관리자인 곳을 가보라"는 농담이 있는데, 당시 나의 분실 사건을 맡은 이탈리아 행정관이 무엇인가 태만하게 일을 처리한 나머지 애꿎은 내 여권까지 도난당한 것으로 접수한 모양이었다(이때 갑자기 의문이 들었는데, 그럼 3년 전 로마에서 난 어떻게 출국할 수 있었던 걸까?)

결국 여차여차 사정을 검문소 직원에게 설명했고, 다행히 그 직원이 이탈리아 쪽 관련 행정처와 통화를 잘 마쳤다. 덕분에 내가 탄 버스는 우여곡절 끝에 체코에 입성했다.
 
테르미니 기차역 로마의 중앙 철도역
▲ 테르미니 기차역 로마의 중앙 철도역
ⓒ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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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해진 경계심, 아마도 날씨 탓이었겠죠

"유럽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해라!"

"나 유럽 가요"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면 귀에 딱지가 들을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유익한 경고도 자주 들으면 둔감해진달까. 제아무리 발생 확률이 높은 사고라 할지라도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체감 확률은 0%에 수렴하는 법이다.

앞서 몇 년간 유럽의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사소한 경범죄조차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어느덧 내 경계심은 슬슬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이탈리아의 로마를 여행한 시점은 그러한 무방비 심리가 극에 달할 때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10월의 지중해성 날씨가 완연한 하루였다. 그날은 피렌체로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한 날이라 아침 일찍 테르미니(Termini) 기차역에 갔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이 선선해 무척 포근하면서도 설핏 시원한 느낌이었다. 아! 고대 로마인들의 가을은 이토록 쾌청했겠구나! 10월의 문턱을 넘어서기만 하면 찬 기운이 제법 완연해지는 한국의 가을과 대비하자니, 이들의 축복 어린 기후 환경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발권을 마치고도 출발 시각까지 한참 남았다. 잡지나 CF에서 본 것처럼 느긋한 자세로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기 딱 좋을만큼의 여유였다. 한국식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진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맑고 건조한 햇볕 아래서 김이 살포시 피어오르는 에스프레소도 괜찮을 듯했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군중들이 범람하는 역 근처 노천카페에 자리 잡았다. 물론 이 행동이 내가 유럽 여행 중에 저지른 최대 패착이자 실수였음을 잠시 후에 깨달았지만.
 
유럽의 노천카페 낭만과 위험이 공존하는 휴식처
▲ 유럽의 노천카페 낭만과 위험이 공존하는 휴식처
ⓒ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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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때문에... 150만원 어치 도난당하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막 들이켰을 때였다. 저 멀리서 진한 이목구비에 제법 큰 키, 그리고 마치 혼자만 여름 속에 사는 듯 시원한 차림새의 여성 한 명이 카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갓 대학생쯤 되려나.

당시에 가졌던 내 찰나의 사심을 조금 섞어서 말하면, 흡사 바네사 헤슬러가 카메라 마사지를 듬뿍 받아 스타가 되기 직전의 일반인 시절이었다면 혹 이 사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미인이었다(물론 지금 와서 그 사람을 명명하라면 비속어부터 튀어오겠지만).

여하튼 여러모로 의심을 살 만한 인물을 아니었다. 그러던 그녀가 내가 앉은 테이블로 오더니 다짜고짜 엽서를 한 무더기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부분 바티칸 공화국과 관련한 사진들이 인쇄된 엽서였다. 공중에서 바티칸 시국을 찍은 사진, 바티칸 공화국 내 건물들이나 예술작품들이 그려진 사진, 역대 바티칸 교황의 초상화 사진 등 하나같이 미적으로 괜찮은 수준의 엽서들이었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피렌체 두오모 성당 소매치기를 당해도 여행은 계속된다
▲ 피렌체 두오모 성당 소매치기를 당해도 여행은 계속된다
ⓒ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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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이 듦과 동시에 그녀의 설명이 쏟아졌다. 남유럽계 특유의 '아르르~'한 발음과 빠른 말 속도 때문에 그녀의 영어를 전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이해한즉슨 "내가 대학에서 사진과 디자인을 전공하는데 과제로 엽서를 만들어봤다. 사람들 반응도 알아보고 보고서도 쓸 겸 너한테 3장을 공짜로 주겠다. 네가 베스트라 생각하는 3장만 골라줄래?"라고 말했던 것 같다. 

거절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마침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 고지식하게도 - 가족이나 지인에게 엽서를 종종 써 보내던 터였다. 타국의 미녀에게 선물 받았다고 자랑도 하고 돈도 아낄 겸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한 뒤 3장을 아주 정성스레 골랐다(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엽서를 훑어보며 고심하던 내 모습이 그녀 눈에는 얼마나 한심하고 우매해 보였을까 싶다).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고맙다고 말했고, 시원하고 화끈하게 왔던 기세처럼 갈 때도 '쿨'하고 거침없이 걸으며 군중 속으로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기차 시간이 다 돼서 자리를 뜰 때쯤에야 알았다. 그녀가 한 무더기의 남은 엽서들을 회수할 때, 그 밑에 놓여 있던 내 휴대폰과 지갑까지 통째로 챙겨갔다는 것을. 그랬다. 마지막 그녀의 미소는 이제 보니 비웃음이었다.
 
폴리스 리포트 현지 소매치기 피해사실 신고서
▲ 폴리스 리포트 현지 소매치기 피해사실 신고서
ⓒ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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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연 좀 들어봐" 대잔치

피해 사실을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다. 마침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끼리 웅성웅성 북적거리며, 반쯤은 우울하고 반쯤은 열띤 어조로 한창 하소연을 나누는 중이었다. 나처럼 소매치기당한 피해자들끼리 서로의 피해담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경찰들의 일 처리 속도가 워낙 더디다 보니, 순번을 대기하던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무료함도 달랠 겸 뜻밖의 회동이 만들어진 듯 보였다.

얘기를 듣자 하니, 기차에서 자고 있을 때 짐을 훔쳐 간 '아닌 밤 홍두깨형', 여럿이서 에워싸고 정신 줄을 놓게 한 뒤 주머니를 털어가는 '팀 플레이어형', 가방을 들어준다며 호의를 베푸는 척하다가 그대로 도망가 버리는 '줄행랑형' 등 각양각색 천태만상이었다. 현지 경찰관 왈, 이날만 유독 특별한 날이 아니란다. 차라리 가을 시즌은 양반이라나. 바캉스 시즌인 여름에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아서 신고 대기 줄이 문밖까지 늘어설 정도라고 한다.

그곳에서 신입 격인 나도 자의 반 타의 반 범죄 피해 무용담을 펼칠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이 신종 수법이라며 어찌나 희한해하던지 본의 아니게 피해자 후임(?)들이 경찰서에 유입될 때마다 나는 선임들의 권유로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반복하고는 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자꾸 나의 사건을 남들에게 얘기해줄수록 묘하게 지금껏 쌓였던 짜증, 분노, 흥분, 자책감 등이 살짝궁 사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피해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는 안도감과,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동병상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픔은 아픔으로 지우고, 상처는 상처로 낫게 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렇게 로마의 경찰서는 자칫 촌극처럼 보이는 '집단 힐링'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비록 헛헛한 하소연들과 자조 섞인 무용담들을 실없이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분명 작지만 든든한 위안을 몇 줌 얻어가는 셈이었다(물론 내 순번이 처리되기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렸지만).
 
바티칸 공화국의 우체국 우편물에 바티칸 시국의 소인이 찍힌다
▲ 바티칸 공화국의 우체국 우편물에 바티칸 시국의 소인이 찍힌다
ⓒ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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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약 150만 원 상당의 내 소지품들과 맞바꾼 엽서 3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엽서는 엽서답게 대우해줘야겠다고 결정했다. 편지 형식의 짧은 글들을 아로새겨, 두 장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 장은 친애하는 지인에게 보냈다.

엽서 사진이 죄다 바티칸 시티와 관련한 것들이어서 기왕이면 엽서 안에 바티칸의 우편 소인을 찍고 싶었다. 부러 수소문해 바티칸 미술관 안에 있다는 우체국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결자해지의 심정을 담아 국경 너머로 사연을 띄웠다. 엽서가 우체통 안으로 쏙 들어가는 순간 왠지 내 기분도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그 엽서들은 어떻게 됐냐고? 올해로 딱 4년째. 3장 중 1장은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몸값이 대략 50만 원짜리 엽서라서 그런지, 어째 다른 우편들보다 500배는 더 늦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까. 지금쯤 세상 속 어느 항공을 순항하다 거나하게 시에스타에 취해 자신의 본분을 잠시 '소매치기' 당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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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The 나아지는 글쓰기》 저자 / 글쓰기 면접 《크리티카 아카데미》 대표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