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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텃밭에 있는 충남 보령시 대천여중 학생들
 학교 텃밭에 있는 충남 보령시 대천여중 학생들
ⓒ 장삼순 충남교육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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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도시인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채소와 과일을 심고 직접 수확해 먹는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 농부가 점차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시 농부의 숫자가 이미 160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고도 내놓고 있다.

도시에 도시농부가 살고 있다면 충남에는 '학교 텃밭'을 가꾸는 학생들이 있다. 아산, 보령, 당진, 서산 등 도농복합도시가 많은 충청남도의 특성과 학교 텃밭은 비교적 궁합이 잘 맞는다. 실제로 충남의 경우 타 시도에 비해 유난히 학교 텃밭이 활성화되어 있고, 인기도 좋다. 물론 그 이유는 도농 복합도시가 많은 지역적 특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국회 보령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충남은 농업 기반의 도농복합도시가 많다. 환경 조건 자체가 텃밭에 접근하기가 유리하다"며 "신규로 임용된 교사의 경우 텃밭을 낯설어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텃밭을 지도하는 교사 중 상당수는 농업을 경험한 분들이다. 일부 교사들은 자원 봉사 형태로 학교 텃밭을 가꾸고 있다. 학교 텃밭이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것도 헌신적인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남교육청은 지난 2015년부터 농촌체험학습과 함께 학교 텃밭 가꾸기 사업을 도입했다. 특히 학교 텃밭 사업의 경우 '충남형 학교 텃밭'이라고 불릴 정도로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120여개의 학교로 시작한 충남형 학교 텃밭은 현재 252개 학교로 그 숫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

김지용 공주생명고학고등학교 교감은 "충남 교육청에 근무할 때 일본 농어촌 학교의 운영 실태를 점검한 적이 있다"며 "일본의 학교 텃밭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도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충남교육청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충남형 학교 텃밭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충남형 학교 텃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농어민 명예교사 제도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충남교육청은 학교 텃밭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듬해인 지난 2016년부터 농어민 교사 제도를 두고 학교 텃밭 현장에 베테랑 농어민 교사들을 투입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농부들을 학교로 초대한 것이다. 충남교육청은 농어민 교사들을 상대로 해마다 2박 3일, 15시간 이상을 교육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된 농어민 교사만도 200여 명이 넘는다. 학교 현장에 투입된 농어민 교사들은 텃밭 컨설팅과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일부 농어민 교사들은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학생들에게 자연농법을 가르치고 있다. 농어민 명예교사와 학생들은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더 친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학교 텃밭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교육계에서는 텃밭 교육을 통해 국어, 미술, 수학 등 다양한 과목의 융복합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 공동 작업을 통한 사회성 교육, 작물 재배 과정에서 벌어지는 변수들에 적응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학교 텃밭은 어린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정서적 고향'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퇴로나 쉼이 없는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도시농부들은 텃밭을 가꾸며 삶에 쉼표를 찍고 여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 텃밭 아이들에게 '정서적 고향'이 되어 줄 듯
 

지방의 중소 도시에서 자란 학생들의 상당수는 성인이 되면 직장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 등의 대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텃밭을 경험한 학생들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살더라도 도시농부로 살 수 있는 기반을 좀 더 쉽게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도시생활에 지쳐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더라도 학교 텃밭에서 얻은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경쟁 교육으로 내몰기를 꺼려하는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대도시가 아닌 시골 작은 학교로 전학 보내고 있다. 물론 그 숫자는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천안 신방초등학교와 아산시의 남창 초등학교는 최근 학생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두 학교의 공통점은 학교 텃밭을 통해 아이들에게 생태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방초등학교의 경우 2016년 19명, 2017년 27명, 2018년 30명으로 입학생이 늘었다. 2019년에는 42명의 학생이 입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학교 측은 오는 2019년에는 병설 유치원 원생 9명을 포함해 총 42명의 학생이 학교에 입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방초등학교에 입학생이 늘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학교 텃밭 때문이다.

김정희 신방초 교장은 "학교 텃밭을 중심으로 생태 교육을 진행하고 홍보를 했다"며 "그런 노력 때문인지 자연주의 교육을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인근 지역의 학부모들은 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충남에는 어느 학교의 텃밭을 가더라도 기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곳이 많다. 보령시의 경우 바다와 어촌이 있는 해양 관광도시이다. 보령시 인근에는 논과 밭 뿐 아니라 산업 단지 등이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인 것이다. 김국회 보령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교과목이 아닌 비교과정에서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체험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대천여중의 텃밭에 가볼 것을 권했다.

지난달 3일, 보령시에 있는 대천여중을 방문했다. 대천여중에는 30평 규모의 학교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여름작물인 토마토와 고추 등이 심어져 있다. 2018년 여름 내내 지속된 고온 현상은 학교 텃밭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추와 토마토 같은 작물의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광순 대천여중 교사는 "학교 텃밭은 수확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텃밭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교육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2018년 여름의 폭염으로 학교 텃밭도 시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천여중 학생들은 방학 중에도 텃밭에 나와 시들어가는 채소에 물을 주며 텃밭 살리기에 나섰다. 대천여중의 학생, 교사, 농어민 명예 교사를 만나 그들의 '텃밭 이야기'를 들어 봤다.

학교 텃밭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교육하는 곳, 대천여중 박광순 진로교사
 
대천여중 박광순 진로교사
 대천여중 박광순 진로교사
ⓒ 남원근 충남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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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텃밭을 담당하는 교사의 경험과 의지가 꽤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대천여중에 텃밭이 생긴 것도 3년전 이 학교로 부임해온 박광순(56) 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물학을 전공한 박 교사는 아이들의 진로를 담당하는 진로교사이기도 하다.

이전에 근무했던 보령 중학교와 청라 중학교에서 일할 때 경험했던 텃밭의 추억을 대천 여중에 부임하자마자 되살려 냈다. 박 교사는 "대천여중에 부임하고 보니 학교에 텃밭이 없었다"며 "아이들의 현장 교육을 위해서라도 텃밭을 꼭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학교사로 근무할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학교 텃밭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며 "텃밭에서 아이들에게 생물의 원리를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상자형 작은 텃밭으로 시작한 대천여중 텃밭은 지금은 30평 규모의 텃밭으로 커졌다. 학교에서 배출된 폐기물이 널려 있던 쓸모없는 땅을 일궈 텃밭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박 교사는 "학교 텃밭은 다순히 수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과정을 교육하는 곳"이라며 "텃밭 활동은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가꾼 채소가 마트에서 산 것 보다 맛있어요" 대천여중 2학년 김서현 학생
 
대천 여중 김서현 학생
 대천 여중 김서현 학생
ⓒ 남원근 충남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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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텃밭을 가꾸면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학교 텃밭에서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좀 더 배워해야 할지를 일깨워 주곤하기 때문이다.

대천여중 2학년 김서현(15) 학생은 서천에 있는 외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물론 특별한 농사 경험은 없었다. 서현 학생에게 농사에 대한 경험은 사실상 학교 텃밭이 전부이다. 하지만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것이 꿈인 서현 학생에게 학교 텃밭은 꽤 흥미로운 곳이다. 그의 눈에는 토마토, 고추, 감자, 해바라기와 같은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과정이 너무나도 신기했단다. 서현 학생은 "농작물들이 줄 때 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텃밭을 가꾸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란다.

서현 학생은 "텃밭을 가꾸면서 식물이 자라는 원리도 배운다. 식물의 구조와 식물이 자라는 원리를 배우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며 "이를테면 토마토의 경우에는 곁가지를 따주면 영양분이 불필요하게 가지로 가지 않고 토마토로 가게 된다. 토마토가 더 잘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이 직접 키운 채소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산 농작물과 본인이 텃밭에서 직접 가꾼 농작물 중 어떤 것이 더 맛있는지를 묻자 서현 학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텃밭에서 수확한 고추를 고기와 함께 먹어 봤다. 역시 내가 직접 가꾼 채소가 마트에서 산 것 보다는 훨씬 더 맛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 때문에 텃밭에 물을 자주어야 했는데 그게 좀 어려웠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현 학생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정원이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고 했다. 또 하나의 도시 농부 지망생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들과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어 행복" 박동규 농어민 명예교사
 
박동규 농어민 명예교사
 박동규 농어민 명예교사
ⓒ 남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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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 복합도시가 유난히 많은 충남은 학교 텃밭이 활성화된 곳이다. 이른바 충남형 학교 텃밭이 자리 잡기 까지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농어민 교사들도 큰 역할을 했다. 박동규(67・보령시・천북)씨는 배추, 깨, 고구마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농부이다. 그는 요즘 대천여중에서 농어민 명예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농작물을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학생들은 종종 그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할아버지 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젊은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그들과 함께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비록 텃밭이 과정 중심의 교육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수확의 기쁨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박 명예교사는 "아이들은 감자를 캐거나 고추와 토마토를 따는 등 수확을 할 때 가장 재미있어 한다"며 "물론 작물을 심을 때도 은근히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대체로 잘 따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텃밭 농사에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농작업의 경우 작업도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도구를 사용한다"며 "여러 가지 작업 중에 본인이 원하는 작업을 골라서 하게 하면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느날 손톱에 예쁜 매니큐어를 칠하고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흙을 만지라고 하니까 잘 만지지 못했다"며 "그래서 그 친구에게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을 시켜 봤다. 그랬더니 일을 아주 열심히 잘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충남교육청에 발행하는 <행복나눔 충남교육> 145호에 4~5면에 기획특집 기사로 실렸습니다.


태그:#대천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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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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