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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니아 잘 익은 아로니아와 단풍이 든 이파리가 가을임을 보여준다.
▲ 아로니아 잘 익은 아로니아와 단풍이 든 이파리가 가을임을 보여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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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만 태풍 소식으로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했다. 태풍 끝에는 장맛비보다도 더 지루한 폭우가 내려 사계절이 뚜렷하던 금수강산도 이젠 추억의 옛말인가 싶었다.

여간해서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에서 벗어나 강원도 양구의 한 아로니아 농장에 섰다. 검게 익어가는 아로니아 열매와 단풍든 이파리를 보면서 '가을이구나!' 비로소 느끼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흘리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산바람에 가을을 실감했다.

곳곳에 가을이 펼쳐져 있는데, 그 작은 열매와 꽃마다 이른 봄의 꽃샘추위, 찌는 듯한 여름의 햇살, 준엄한 태풍과 지루한 장맛비, 농부의 발걸음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들어있다. 쌀 한 톨에서 작은 풀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이 무색하지 않은 들판이다.

금마타리 황금빛 노란 금마타리가 풀섶에서 한창 피어나고 있다.
▲ 금마타리 황금빛 노란 금마타리가 풀섶에서 한창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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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 가을 들판에서는 어머니에게 좋은 풀, 쓰디쓴 익모초의 꽃이 가지런히 층층히 피어나고 있었다.
▲ 익모초 가을 들판에서는 어머니에게 좋은 풀, 쓰디쓴 익모초의 꽃이 가지런히 층층히 피어나고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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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빛만 화사한 것이 아니라 꽃의 빛깔도 분명하다. 연금술사가 불순물을 다 제거하고 만든 순금처럼 노랗게 빛나는 금마타리, 고난의 빛을 상징하는 보랏빛으로 피어난 익모초는 힘겨운 삶을 살아오던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꽃이다.

도시를 떠나 잠시 자연의 품에 안기니 수없이 많은 가을의 코드가 장서 가득한 도서관의 책처럼 풀섶 사이사이 꽂혀있다. 어떤 책을 꺼내서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또 어떤 책을 꺼내 읽어도 흥미진진할 것처럼 가을 들판에 피어난 모든 것들은 잘 선정되어 진열된 베스트 셀러다.

싸리꽃 보랏빛 싸리꽃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춘다.
▲ 싸리꽃 보랏빛 싸리꽃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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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초 가을 바람에 포말처럼 흔들리는 설악초
▲ 설악초 가을 바람에 포말처럼 흔들리는 설악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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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쌀 한 톨의 무게는 온 우주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
▲ 벼 쌀 한 톨의 무게는 온 우주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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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바람은 지난여름 내내 습하고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바람과는 완연히 달랐다. 몸이 저절로 '바람은 이런 바람이어야 한다'고 반응한다. 여름 내내 쌓였던 체증이 바람에 다 날아가는 듯하다.

지난여름, 폭염과 무더위에 덥다고 불평만 했는데 그 사이에 벼는 그것을 온몸에 새기며 한 톨의 쌀로 승화했다. 쌀 한 톨의 무게, 그것이 온 우주의 무게와 같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눈으로 본다. 자연은 그 어떤 것이든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자신을 만들어간다. 때론 그런 과정에서 스러진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온 힘을 다했으므로 그에게는 열매맺음도 그렇지 못함도 다르지 않다. 자연처럼 살아가고, 자연처럼 의연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런 '너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자연을 닮은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함이 그 원인일 터이다.

사위질빵 하얀 눈이 내린듯 장모님의 사랑의 전설을 담은 꽃이 풍성한 가을이다.
▲ 사위질빵 하얀 눈이 내린듯 장모님의 사랑의 전설을 담은 꽃이 풍성한 가을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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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사위사랑이 물씬 풍기는 '사위질빵'이라는 꽃이 하얀 눈처럼 피어났다. 이 꽃이 장모님의 사랑과 연관이 되는 것은 이런 전설 때문이다.

질빵은 지게를 어깨에 맬 때 사용되는 것이다. 장모님은 사위가 오면 사위질빵의 줄기로 만든 질빵이 매어진 지게를 주었단다. 그런데 사위질빵의 줄기는 마디마디가 얼마나 약한지 뚝뚝 끊어진다. 그런 약한 줄기로 만든 지게질빵은 조금만 무거운 것을 지게에 올려도 끊어져 버린다. 그러니 사위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

평생 사랑하며 동반자로 살아온 남편의 질빵은 볏짚으로 단단하게 끊어지지 않게 만들어 지워주고, 사위를 생각하는 장모님의 마음이라니... 문득 사위의 입장에서 쑥스럽다.

갈퀴나물 보랏빛 꽃이 탐스러운 갈퀴나물
▲ 갈퀴나물 보랏빛 꽃이 탐스러운 갈퀴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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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잎국화 노란 겹입국화가 노랗게 피어나는 가을, 형형색색의 가을이다.
▲ 겹잎국화 노란 겹입국화가 노랗게 피어나는 가을, 형형색색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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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 보랏빛 칡꽃
▲ 칡 보랏빛 칡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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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렇게 성큼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꽃들은 여기저기 자기만의 색깔로 피어났으며, 열매들은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 멀어진 우리는 아직도 그 가을을 보지 못한 까닭에 아직도 여름의 끝자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막 8월의 달력을 뜯어내고 9월이 시작된 날 아침에 불어오는 바람은 거역 못할 가을바람이다.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아직도 후텁지근한데, 가을은 제때라고 이렇게 온다.

우리의 역사도 때가 되면 이렇게 결실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번 가을 아니면 늦어도 내년 가을엔 양구 을지전망대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금강산의 가을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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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