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물건을 선택하듯 사람도 선택하던 나

지금은 퇴사했지만 오랫동안 정 붙이고 다녔던 직장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학생인턴이었던 K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직장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내가 그 직장을 그만 두었고 K도 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몇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나에게 연락을 해온다.

"제가 처음으로 야근할 때 언니도 같이 사무실에 남아주셨잖아요."

당시 K는 23살이었던 데다가 4학년 마지막 학기였다. 첫 직장 생활이어서 모든 걸 낯설어했기 때문에 매정하게 먼저 퇴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남아서 3시간 동안 곁에 있어줬던 것뿐인데, K는 그걸 몇 년 동안 기억하면서 고마워했다. 그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게 느껴지면서 덩달아 행복했다. 나를 좋게 생각해주는 K에게 고마웠고 나도 K를 오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직장을 그만둔 후, 다음 직장에서 동갑인 친구 B를 알게 되었다. K가 부끄러움이 많고 얌전한 성격이라면, B는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거침없었다. 나도 웬만한 사람에게는 기가 안 눌릴 정도로 자아가 확고한데, 그 친구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한여름에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내 생각이 확고한 대화 주제가 있어도 그 친구가 반론을 제기하면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그 친구가 하는 말에는 늘 강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를 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말이 없어지고 듣기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매사에 부정적인 B의 기운이 나에게도 전염되었던 것이다. 나는 B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후배 K를 5개월 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서 기뻤던 우리는 금세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후배가 만남 날짜를 한 번 변경했는데, 기존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약속을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약속을 취소한 친구를 만나기로 했던 날 나와 만났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서운함을 토로했다.

"언니처럼 저에게 잘해주었던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요."

흘러간 시간이 무려 3년인데, 후배 K는 현재의 나를 앞에 두고 아직도 과거의 나를 언급하고 있었다. 게다가 같이 일할 때 있었던 일들을 꺼내어 즐거워하던 것도 잠시였다. 더 이상 나눌 대화 주제가 없었다. 앞으로의 목표 등 미래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예전에만 함께 했던 사이여서, 그 이후 각자의 삶에 대해서는 무지한 이유였다. 우리의 만남은 과거에 정지되어 있었다. 내가 K를 계속 알고 지내도 괜찮은 걸까?

친구 B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티 나게 멀리하면 서운해 할 것 같아 최근에 안부 문자를 보냈다. 대신 이제 자주 안 볼 사람이니 그동안 못했던 말을 했다.

"너는 나랑 성격이 정반대지만,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함께 있을 때 보고 배울 점이 많아."
"나도 좋아. 그래서 나도 너랑 있을 때 좋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해."


언제나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더니 나를 어려워 한다는 걸 알았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서로가 한 말에 감탄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적이 꽤 있었다. 내가 말한 연애 조언들이 결혼을 두고 고민하는 B의 연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 번도 나처럼 생각해 보지 않고 넘겨왔다면서. 남자친구와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엄마를 두고 내가 푸념할 때, 친구 B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두고 명쾌하고 똑부러지는 견해를 들려주었다. 실제로 엄마와의 심리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물, 고로 모든 게 변한다

사람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에게 좋아 보이는 모습이 다른 이에게는 안 좋아 보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좋아 보이는 모습이 나에게는 안 좋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살아있는 동물이다. 이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성격과 성향 등이 언제든지 유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걸 모르고, 나는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분류하는 오류를 저질러왔던 게 아닐까.

후배는 내가 잘해줬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따랐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건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의 애정에 보답하고 싶어져서 모질게 대하지 않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그를 대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반대로 친구의 단점에 집착한 나머지 장점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사이임을 몰랐다.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로 풀어나가면 될 일이었다. 서로 정반대였던 덕분에, 우리는 함께 할 때 빛이 났다. 서로 갖고 있는 장점이 달랐던 덕분에, 우리는 함께 할 때 늘 서로를 부러워했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가능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두고, 냉정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던 친구 B의 조언을 계속 곱씹어보았다. 가족은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분리된 개인이다. 가족이라도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데, 하물며 타인은 어떠하겠는가.

내가 상대방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건 자만일지도 모른다. 강물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흐름이 변하듯이, 사람도 세월의 무게에 따라 모습이 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겉모습이 보이는데 속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관계가 악화되는 걸 막고 상태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일 뿐일지도. 그러니 기억하자. 나도 나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타인에게 많은 걸 바라지 말자. 나조차도 불완전한 인간인데, 타인이 완벽하길 바라지 말자.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덜 상처받고 덜 상처주면서 서로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

태그:#인간관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