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최병우 센터장(왼쪽)과 필자(오른쪽)
 최병우 센터장(왼쪽)과 필자(오른쪽)
ⓒ 김환주

관련사진보기


지난 8월 14일 폭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구를 찾았다. 대구에서 주거약자를 지원하는 대구주거복지센터를 가기 위해서였다. 동대구역에 내리자 "대프리카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물론 이번엔 서울도 더웠지만, 별칭 때문인지 대구라서 특히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구주거복지센터를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운 대구에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은 어떻게 더위를 버티고 있을까? 올 여름이야 서울의 기온도 40도를 육박했지만, 매 여름마다 40도를 웃돌았던 대구의 주거약자들은 어떻게 더위를 버텼을까?'

사실 대구에 도착하기 전, 대구주거복지센터가 대구에 폭염재난지구 선포를 해달라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과연 여름철 대구의 주거약자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듣고 싶었다. 중앙로역에서 도보로 5분 쯤 걷자 마침내 대구주거복지센터가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최병우 센터장을 만나 그의 주거운동 이야기와 대구의 주거문제, 궁금했던 여름철 대구의 주거약자 상황들을 들었다.

'대프리카'의 주거약자들은 어떻게 살까

-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거권실현을 위한 대구연합'에서 일하고 있는 최병우입니다. 동시에 직접 주거현장에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대구주거복지센터' 센터장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 주거문제 해결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 졸업 이후에 바로 시작했어요.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라는 NGO 단체에 들어가서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했죠. 아파트 주민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상담하는 활동도 하면서 공동체 만들기 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를 찾는 분들이 세입자들이었고, 조금만 눈을 돌려보니 주거문제라는 게 아파트뿐만 아니라 어디에 살던,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더라고요. 저소득층이면 더 심하게 겪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주거문제에 천착해서 활동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는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거권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주거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개해보자 싶어서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주거권실현대구연합은 어떤 곳인가요?
"NGO단체죠. 1998년에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가 생겼는데, 그 때는 아파트 공동체, 도시 공동체 만들기나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비리, 비민주적 대표자회의 운영 문제 등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일들을 했어요. 그리고 도시공사나 주택공사에서 지은 영구임대 아파트가 있는데요.

당시에 공사 측에서 아파트의 임차인 대표회의를 구성할 수 없게끔 방해를 했어요. 임차인 대표회의를 통해서 임대료를 운용주체와 협의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 임차인 대표회의 구성할 수 있지만, 강제적이지 않다보니 운용주체 입장에서는 굳이 만들 필요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임차인 간에 갈등을 유발시켜서 조직을 와해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저희는 민주적인 아파트 공동체를 위해서나 임차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임차인 대표회의 구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00년 초반에 아파트마다 임차인 대표회의를 만드는 운동을 전개했죠.

활동을 하면서 일반 주택에서 쫓겨나는 임차인들, 불합리하게 이익을 남겨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간기업 등 주택과 관련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걸 보게 되었어요. 이런 전반적인 주거문제 해결은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에서 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007년도에 이름을 '주거권실현을 위한 대구연합'으로 바꾸어서 주거문제 해결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 그럼 대구주거복지센터가 개소하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2008년도에 개소했어요. 2007년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시범사업으로 주거복지센터 활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대구는 1년 뒤인 2008년에 시작했어요. 2012년까지는 모금회 시범사업으로 운영되다가 2017년과 올해는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는 문제가 곧 삶의 문제

 대구주거복지센터 모습
 대구주거복지센터 모습
ⓒ 김환주

관련사진보기


- 활동하시면서 부딪히는 갈등이나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은 많죠. 한번은 어떤 임대 아파트가 매년 4.4% 이상씩 임대료를 올린 경우가 있었어요. 임대차보호법이 있었지만, 관행적으로 매년 5%에 가까운 임대료 인상이 진행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1년마다 임대료를 인상하는 것은 법에 맞지 않다.'고 도시공사나 주택공사 측에 항의를 했죠. 나중엔 이 문제를 전국적으로 공론화시켰죠. 각 지역에 있는 주거단체와 연대한 적도 있는데, 여럿이 목소리를 낸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요. 임대주택에도 '매년'이 아니라 '2년마다' 최대 5%까지만 인상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또 다른 갈등은 관리사무소를 통해서 아파트 관리를 하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들이 임차인 대표회의를 만들려는 사람들하고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요. 임차인 대표회의가 구성될 수 있도록 돕다보니까 아파트 주민들한테 외부인이 왜 나서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죠."

- 말씀하신 사례에서 임차인 대표회의는 잘 구성되었나요?
"사실 회의가 잘 돌아가지는 못했어요. 강제 조항도 아니라서 구성이 되는 것도 힘들고요. 설령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먹고 살기 바쁜 상황에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기는 쉽지 않죠. 일반 분양주택에서는 주민들끼리 돈을 모아서 입주자 대표회의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판공비도 주고, 작은 봉사료라도 지급해요. 그런데 영구임대 주택에는 그런 게 없죠. 그래서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식어가죠."

-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저희는 방문 상담이 기본인데, 수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수리는커녕 임대료도 체납된 집들이 많아요. 그런 집은 다 사정이 있어요. 얼마 전에 만난 분은 일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다시 현장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임대료가 체납되신 거예요. (더구나)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서 더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 관련 NGO단체와 연결해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죠. 몇 개월을 싸운 끝에 산재로 인정받고, 그 돈으로 임대주택에 들어가셨어요.

또 한 사례는 아파트 4층에 거주하는 장애인 분이 있었어요. 그 아파트가 30년 이상 되었는데, 오래된 아파트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있어요. 그 경사로를 이용해서 매번 4층을 오르락내리락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분은 1층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하셨어요.

그런데 집 주인이 임대기간이 남아서 보증금을 빼주지 않았어요. 이사를 빨리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원하시는 대로 이사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드렸죠. 다음 달에 계약 만기라 곧 보증금을 받으시겠네요(웃음)."

- 얼마 전 폭염재난지구 선포를 대통령에게 요구하셨는데, 현재 대구의 주거약자가 겪는 상황은 어떠한가요?
"얼마 전에 한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어요. 술도 드신 상태에서 더위가 빠지지 않는 낡은 쪽방에 계셨으니 몸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사실 주거가 열악한 곳일수록 더위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희는 1주일에 2번씩 쪽방 상담소와 대구 전역을 다니고 있어요. 폭염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하니까요. 폭염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쿨매트나 선풍기 등도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과 같이 폭염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처를 하고 있는 방식이 사실 도움이 되지 않아요. 물론 대구시를 통해서 여러 지원품을 받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더위를 이기지는 못해요. 워낙 더우니까요.

에어컨을 틀고 잘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주거취약계층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피해서 잠 잘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생필품도 지원하려면 정부가 폭염재난지구로 선포해줘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반빈곤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서 정부에게 요구를 한 것이죠."

- 지금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계신가요?
"더위는 한시적인 것이고, 주거권을 구제하는 상담이 저희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요. 저희의 주안점은 역시 '주거안정'이죠."

"집은 내일을 꿈꾸는 공간"

- 본인에게 '주거'는 무엇인가요?
"제가 1년 반 동안 여인숙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어요. 제 방이 2평 남짓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이었는데,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지도 않았고요. 밥도 해 먹기 싫어서 굶기도 했어요. 그냥 작은 TV를 보다가 잠드는 게 집에서 하는 일의 전부인 것이죠.

그런 시간을 겪고 나서 집은 내가 사고할 수 있고, 충전할 수 있는 공간, 내일을 꿈꾸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공간 넓이의 기준이 생겼는데, 팔짱을 끼고 방 벽에서 벽까지 최소 8걸음은 갈 수 있는 넓이는 되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사는 공간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져요. 방이 쾌적하고 넓어지면,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과 함께 살 수도 있고, 못 본 친구들도 초대해서 만날 수 있게 되죠. 삶에서 중요한 게 관계인데, 공간에 따라 사회적 관계도 달라지고,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 집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1차적으로는 저렴한 임대주택이 많이 공급되어야죠. 임대료 걱정 없이 임차인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갖추어져야할 것 같고요. 그 다음에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장되어야죠. 아직까지 임대차관계 문제가 많이 있으니까 서로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주거약자들이 자기 권리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죠. 법이나 제도를 몰라서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회적 약자가 제대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알려드리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고,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가야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