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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책을 사지 않는 시대는 아니다.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나 그림, 사진, 도표 등의 지식을 인터넷이 대체하고, 책만이 줄 수 있는 지혜가 점점 그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기에 책이 필요없어지는 것이리라. 반면 책이라는 물성은 팬시 상품화 되어 그 가치를 달리하고 있다.

인터넷이 책을 죽였지만, 인터넷이야말로 책을 다시 살리는 가장 큰 통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바라보는, 대하는 태도의 완전한 반전 또는 대대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우린 그동안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왔다. 책 자체는 사실 필요없고 책의 텍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가 안긴 인쇄혁명이 기나긴 시간 동안 인류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21세기에는 그에 필적한 혁명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혁명과 혁명의 기간이 빨라졌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혁명도 선택한다. 모든 혁명이 인간의 삶을 바꿔왔지만 이젠 인간이 혁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없이 느린 책 읽기, 그에 반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 텍스트는 멀어져가고 책만 남는다.

책의 텍스트 vs 책의 물성
 책의 텍스트
 책의 텍스트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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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도쿠, 일본어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일을 말한다. 웬만큼 책 사서 읽는 사람치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연히 나도 여기에 속하고, 그 양은 점점 속절없이 많아질 뿐이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비율을 7대3으로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엔 그 반대가 되고 말 것이다.

쓴도쿠는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보다 책의 물성을 좋아라하는 사람의 전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 직장의 대표가 작가를 겸직했는데 당연히 그도 쓴도쿠적 기질이 있었다. 수많은 책들이 있었고 계속해서 수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는 항상 "책은 중요하지 않아. 책에 담긴 게 중요한 거지"라고 말했다.

나와는 상당히 다른 책에 대한 견해였는데,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내 아내는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 어떤 책을 대하든 태도가 참으로 깍듯하다. 책을 읽을 때면 아주 살짝만 펼치는데 넓게 펼치면 책꼴이 우스워진다나. 잘 아는 번역가 선생님 한 분은 정말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책을 하나하나 고급투명비닐로 정성스럽게 싸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보관상태를 유지한다.

그에 비해 나는 책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다. 장서가를 표방하지만 애서가는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보인다. 책의 텍스트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장서가나 애서가가 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날이 상승곡선에 있는 책의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나는 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또한 책의 물성이 그나마 책이 계속 다루어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구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이다.

우위에 선 책의 물성
 책의 물성
 책의 물성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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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책 사진과 리뷰를 올리며 '힙한' 지식의 최전선을 과시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CEO도 '있어 보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참으로 '없어 보인다고' 하겠지만, 그런 이들이 좌초하고 있는 '책 배'를 떠받들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또는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책 이용 방법이지만, 전통적인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책을 텍스트로 보는 이들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책의 외형에, 즉 디자인에 신경쓰는 나라도 없다. 외국의 책들은 애초에 소장용 양장본과 일회용 페이퍼백이 동시 출간되곤 한다. 디자인에 목숨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이 과시용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말이다.

텍스트가 중요한 사람들은 아마도 일반적인 장서가, 애서가보다는 연구자일 것이다. 연구를 위해 텍스트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모으는 경우 말이다. 그런 그들이 연구의 결과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일 텐데, 책이 가지는 전통적인 측면에서 그들이야말로 책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장서가가 되는 경우, 그 책의 물질적 아닌 텍스트적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녕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을 테고 책이 아닌 형태의 것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린 모두 그러니까 책을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하는 우리 모두는 단순한 애서가가 아닌 텍스트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마도 그건 쉽지 않을 거다. 텍스트를 중요시 하다 보면, 보다 월등한 텍스트의 바다인 인터넷에 시선이 돌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책상은 점점 비워지고 그 자리를 컴퓨터나 태블릿 PC가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위대한 텍스트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텍스트들은, 결국 그 텍스트가 가지는 위대함이 아닌 그 물성이 가지는 위대함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이상 그 텍스트들은 그들만의 것도,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지도 않게 되기 때문일 것이기에. 자, 그럼 진정한 장서가는, 애서가는, 독서가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현실적으로,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이들이 책에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의 가치를 알아보아야만 하겠다. 그게 끝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책의 시대에, 책을 살리는 많지 않은 대안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다름 아닌 나부터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단순히 서평을 쓰며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건 책에 대해서만 말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가.

책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낭독을 하고 더 깊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책을 사랑하는 것, 책이 많다는 것, 좋은 책들을 선별하는 것이 다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만민독서야말로 답이다. 독서가가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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