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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앞 항의시위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 14일 오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 서부지법앞 항의시위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 14일 오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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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을 보며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옛날 옛적 우리 때는 어림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 손목이라도 잡히면 "여자의 행실이 어떻길래..."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 숨기는 게 상책이었다. 남학생이 문 앞까지 따라오면 부모님에게 "한 번 더 그런 꼴을 보면 등록금을 끊겠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섹시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천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수모가 줄어들었다. 늙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이 나이에도 남의 살이 자기 살인 줄 알고 혼동해서 만지는 사람이 아주 가끔 있긴 하다. 권력관계가 아닌데도 대놓고 무안을 주기가 망설여졌다. 적당히 말하고 넘겨 버리려 하면 "속으론 좋으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희정(전 충남도지사)씨와 김지은씨는 어떤가. 그들은 나의 피해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칼자루를 쥔 사람과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쥔 사람, 누가 봐도 부등한 권력 관계다. 칼자루를 쥔 자가 아주 조금만 힘을 써도 칼날을 쥔 사람은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쉽진 않겠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정의롭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안희정씨가 '무죄'란다. 위력이 존재하는 관계인 건 맞지만 안희정씨가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한 번 피해를 당했으면 됐지, 왜 자꾸 당하고 있냐"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더 암담했다. 이러다가는 내 딸도, 손녀도, 이런 사회에서 계속 살게 되겠구나 싶었다. 내 나이 69세. 안희정 무죄 판결 규탄 집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여성으로서, 여성들과 함께 일어서다


 
안희정 무죄 규탄 대규모 집회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안희정 무죄 규탄 대규모 집회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들이 18일 오후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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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장소를 검색해서 지하철 편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삶은 계란 두 개와 떡 한 조각으로 배를 채웠다. 날씨가 더우니 시원하게 반바지를 입으려 했지만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면 품격에 책잡힐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긴 바지를 입었더니 너무 막 입은 사람 같았다. 제 설움 쏟아내려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나올 정도로 삶에 한 맺힌 사람처럼 보여서도 안 될 일이었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단정하지도 않은, 그러나 절대 만만해 보이지 않는, 누구도 흠 잡을 수 없는 샤넬라인의 옷을 차려입었다. 익명성을 확보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은 채로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겼다. 집회에서 행진도 한다니 편안한 플랫슈즈를 신고 나섰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길을 헤매느라 좀 늦었다. 어떤 청년이 구호 쓴 종이를 나누어 주는데 나이 때문인지 내게는 안 주려고 했다. 달라고 해서 하나 겨우 얻었다.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가지고 온 책 위에 넓은 보자기를 펴고 앉았다. 아무래도 얼굴을 가리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가져온 선글라스도 쓰고 모자도 챙을 푹 눌러 썼다.



무대가 멀기도 했고, 마이크 성능이 안 좋은지 구호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 들리는 말이 있어서 소리를 좀 내보려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여자가 목소리 크면 안 된다'고 세뇌당하며 자라서인지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 뿐이었다.



옆사람 보기에도 쑥스러웠다. 자유발언 시간에 나도 할 말은 있었지만 얼굴이 알려질까 봐 참았다. 잘못하면 내 신상이 파헤쳐져서 돌아다닐까 봐 무서웠다. 용기 내 나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남녀문제가 아닌 권력문제다



어떤 남자분들은 미투운동을 남녀관계의 대립으로 이해했다. 아니면 골치 아프다는 듯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미투 문제는 남녀를 넘어 권력의 문제다. 나보다 약한 사람이 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면 바로 따진다.



그러나 나를 지배할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못 따지고 얼버무린다. 제발 다시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 지금 직장을 잃으면 다른 직장 구하기 힘든 세상이다. 위력을 가진 사람도 이미 상대가 못 대들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상대의 인격을 쉽게, 자주 침해한다.



나는 태어나보니 여자였고, 내가 태어난 세상은 남자들의 힘이 센 세상이었다. 그들의 힘에 치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남자 위주의 보이지 않는 법칙이 존재한다 해도 눈치껏 살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힘의 균형도 돌고 도는 법.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이 동등하게 제힘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살기를,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쥐고 버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기를 감히 꿈꿔본다. 물론 내 딸과 손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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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것도 대단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약자도 웬만하게 살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구요. 힘닿는대로 애써보려구요.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