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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의 발견> 책표지
 <방언의 발견> 책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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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처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서점 산책이 제격이다. 그곳에 가면 판매대에 올라온 책들을 먼저 살펴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큰 글씨의 띠지로 눈이 가고. 낚시성 카피라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이 생겨 뒤표지까지 읽어보게 되는 책도 있다.

거기에는 책의 주요 내용이나 유명인들의 감상평이 나와 있다. 호기심이 계속되면 앞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어본다. 예전에는 이력서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자기소개서를 읽는 느낌? 저자의 삶과 책의 내용이 조화된달까. 이쯤 되면 머리말이나 후기까지 살펴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구해서 읽어본다.

이 책의 뒤표지는 "꼭 읽어야지"라는 생각이 든 방아쇠였다. 어렸을 때의 몇 장면을 떠올리게 한.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형제들과 부모님의 고향은 경북 내륙 지역이다. 명절마다 그곳으로 내려가면 내 또래 친척 아이들이 나의 서울말을 신기해하며 부러워했다. "라디오에 나오는 말"이라며.

서울말만 썼던 초중고와는 달리 대학을 가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동기들과 처음 만난 오리엔테이션에서 큰 웃음을 준 두 친구가 있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남자와 순천에서 올라온 여자 동기다.

그 둘이 자기소개를 꺼내자마자 모두 빵 터졌다. 학과 특성상 수도권 출신이 많아서 그 둘의 말은 항상 튀었다. 능력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말하기는 두려워했고. 지금 그들은 서울말을 쓴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억양은 버리기 힘들었나 보다.

이런 오래된 일화를 끌어낸 책은 <방언의 발견>이다. 저자는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방언'의 가치를 발견하고 보존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가치 있는 언어 자산인 사투리에 대한 차별과 심지어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던 역사를 얘기한다. 이와 함께 사투리, 즉 방언의 보존과 확장을 위한 노력을 얘기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사투리는 교정 대상이었다. 내 동기들처럼 학교는 물론 군대와 직장 생활에서도. 사투리 쓰는 사람들을 세련되지 못하다는 편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어느 사극만 보더라도 서울 양반집의 하인들이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현상을 저자는 "산업근대화 시대를 통해 고착화 된 표준어 의식이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개발독재 시절 국민 총화를 저해하는 사투리를 없애고 국가 구성원 모두가 표준어 하나로 소통해야 근대화를 빨리 이룩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그렇지만 "방언은 우리의 오래된 언어 유산"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방언 vs. 표준어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 즉 다섯 지역의 말이라는 뜻이다. 동서남북에 중앙까지 각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라는. 오늘날 '지역어' 또는 '지방어' 정도의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저자는 "조선 시대에는 방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예로 들은 '이덕무'는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 그 지역 방언을 수집하고 연구하기도 했고. 다른 학자들 또한 "각 지역의 풍토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로 방언을 해석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 등 지방 학자들이 사투리를 심하게 썼다던 기록에서도 부정적 인식은 없다고.

그러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며 지역마다 다른 한글 표기법의 혼란이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며 표준어가 대두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표준어가 "19세기 서양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소산이자 상징물"이라고 주장한다.

국가나 민족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꾀해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어문의 통일"을 추구했다고. 해당 사회의 구성원을 결속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 제국주의의 경우 타국을 침탈하는 수단으로, 피식민 국가의 경우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도구로.

우리나라의 경우 표준어는 조선 총독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도입되었다. 예전에도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 개념이 있었으나 정책으로 공인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위해서도 통일된 문자와 말이 필요했으니.

이때부터 방언이 표준어와의 대립 관계로 핍박을 받게 된다. 심지어 없어져야 하는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표준어가 자리를 잡아가며 사투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학교에서는 사투리를 '틀린 것'으로, 나아가 '야만적인 것'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방언의 희생, 표준어의 시대로

표준어 제정은 문맹 퇴치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문자 표기법을 통일해야 가르치기 수월했고 전달하기도 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통일 운동"이 민족 구성원을 결집해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도 저자는 평가한다.

물론 일제 강점기 일부 언론사와 학자를 중심으로 '사투리 수집'도 있었다. 이는 방언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의미보다는 "표준어를 확장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이 시기 여러 문학자가 '문학어'로서의 방언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표준어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갔다고 설명한다.

6·25가 끝나고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고운 말 쓰기 운동'이 벌어졌다. 고운 말은 표준어이고 곱지 않은 말은 사투리였다. "표준말은 바른말이고, 그렇지 않은 말은 옳지 않은 말"로 되어버린 것. 게다가 유신헌법으로 '전체'와 '통일'이 강조된 시대가 되니 사투리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고속도로로 각종 물자가 이동하기도 했지만 표준어가 보급되기도 했다. 사람과 물자가 서울로 몰린 산업근대화의 결과다. 그런 바람이 불자 서울과 시골을 부정적으로 나누는 이분법도 강해졌고. 이런 분위기는 "서울말은 근대, 사투리는 전근대"라는 인식으로 펴졌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의 한 방편으로 성인 계몽운동도 벌어졌는데 '고운 말 쓰기 운동'도 포함되었다. 예전엔 학교를 중심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다면, "쓰는 말이 이미 굳어진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

이렇듯 국어를 순화한다는 정책 때문에 "표준어는 좋은 말, 사투리는 나쁜 말"이라는 인식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정책의 하나로 '방송심의규정'에 사투리 쓰는 진행자나 프로그램에 대해 규제를 하기도 했다. 교육 당국은 수업교재를 통해 사투리 대신 표준어가 바른 언어라고 끊임없이 주입했고.

방언의 희망

저자는 방언이 훌륭한 "언어문화 자산"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시절엔 차별과 교정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개성을 표현하는 콘텐츠로 널리 퍼지고 있다고. 이미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문학 언어'로서 자리 잡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노래 가사와 랩으로도 표현되고. 저자는 방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방언의 희망"이라는 소제목을 사용했나?

오늘날 인터넷과 모바일 콘텐츠를 접해보면 표준어의 경계가 모호해진 건 아닌가 생각한다. 문법으로 정한 언어와 사람들이 실제 쓰는 언어가 다른. 연필로 글씨를 적던 시대와 키보드를 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모바일 자판을 누르는 시대다. 언어를 표현하는 도구가 달라지니 글과 말도 달라지는 걸 느끼며 산다고나 할까.

저자는 방언이 홀대받은 역사를 안타까워했지만, 머지않은 미래의 다른 국어학자는 표준어가 '디지털 언어'에 밀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규범을 정한다는 건 때론 틀에 가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이라는 게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를 재미있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충분히 담아내어야 좋은 언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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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