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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르쿠츠크 미술관
 이르쿠츠크 미술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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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주립미술관은 레닌대로 5번지에 있다. 그린라인 번호로는 9번이다. 미르쿠츠크 미술관은 미술작품을 기증한 수카체프(V.P. Sukachev)의 이름을 따 수카체프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로, 2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대로 쪽으로 정원이 있고 가운데 문이 있어, 표를 끊고 들어가 좌우 전시실을 돌아볼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알리려고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책방과 기념품점이 없으니 말이다. 건물의 구조와 전시실을 설명하는 간단한 리플렛도 없고, 전시품 도록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입구에는 표 파는 사람, 표 받는 사람, 가방과 옷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눠져 있다. 모든 전시실에는 관리인이 지키고 있다. 이들 인력 대신 교육과 홍보가 가능한 사람들을 채용해 도록을 만들고 자료집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수카체프 동판
 수카체프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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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미술관의 유물과 작품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어도 자료집을 구할 수 없으니 글의 수준을 높일 수가 없다. 이들 작품의 제목을 기록하고, 느낌을 기록하려면 하루에 서너 개의 박물관 보기도 어렵다. 자료집을 통해 중요한 작품을 확인하고, 그들 유물작·품에 대한 평은 자료집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텐데 아쉽기 이를 데 없다. 그게 북극곰 러시아인의 기질이고 자부심인가?

러시아의 전통화

 예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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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곳 미술관에는 영어로 러시아 미술을 개괄하는 패널이 걸려 있다. 이것을 토대로 러시아 미술을 조금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콘화 전시실이다. 이콘은 10세기 후반 러시아가 비잔틴제국으로부터 정교를 받아들이면서 신앙과 포교의 수단으로 함께 들어왔다. 이콘화가 러시아적인 특징을 갖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다. 1400년대 류블레프(Andrei Rublev), 디오니시우스(Dionisius) 같은 화가들에 의해 러시아 이콘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이곳에 전시된 이콘화는 16~17세기 작품들이다. 의사 출신의 벨리치코(Velichko)가 기증한 것으로 모두 100점이 넘는다. 숭고함, 희생, 사랑과 같은 종교적인 의미와 조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의미를 담은 이콘화는, 보이지 않는 천상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림은 대개 3단계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성모자상
 성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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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리수, 소나무, 오크나무로 만든 판 위에 밑칠을 한다. 그리고 전형(canon)에 따라 드로잉을 한 다음 배경을 금박으로 칠한다. 마지막으로 '금빛 은총의 바다에 성스러운 빛이 흘러드는' 것처럼 채색을 한다. 광물질과 달걀노른자를 섞어 템페라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때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한다.

황금색은 성스러움과 천상의 사랑을 상징한다. 흰색은 순수함을 상징한다. 빨간색은 성스러운 불꽃과 순교를 의미한다. 녹색은 생명과 희망을 보여준다. 진청색은 천국 또는 천상에 계시는 존재들과 연결된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모스크바 대주교 니콘(Nikon)의 개혁정책을 통해 이콘화에 변화가 일어난다. 서유럽의 화풍이 도입되어 기교와 세부묘사가 중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이콘화는 전통에 충실하고 있다.

 예수 탄생
 예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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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화의 핵심인물은 예수, 마리아, 천사, 사도들이다. 예수는 구세주로 표현된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이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돌보는 자비로운 어머니다. 예수 탄생을 보여주는 이콘도 있다. 성모 마리아가 누워 있고, 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사람들은 천사와 함께 이를 축복한다. 이곳에는 사도들 이콘이 적은 편이다. 베드로와 바울의 이콘이 보인다.

18세기 러시아 미술의 특징

 앙가라강 너머 이르쿠츠크를 그린 풍경화
 앙가라강 너머 이르쿠츠크를 그린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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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까지 미술이 이콘의 시대였다면, 18세기는 초상화의 시대다. 17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미술학교가 만들어졌고, 초상화와 유화 등에 프랑스식 기법이 도입되었다. 이곳 박물관에도 엘리자베트 페트로브나, 예카테리나2세, 데르자빈 등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 후 러시아 미술은 프랑스 영향을 벗어나 유럽의 미술사조를 받아들인다. 당시는 바로크시대로 종교화가 중심이지만, 풍경화와 풍속화, 역사화 등으로 장르가 확대된다.

이곳에 있는 풍경화는 이르쿠츠크 지방을 그렸다. 앙가라 강변에 발전한 이르쿠츠크가 중경 또는 원경으로 보인다. 이들 그림은 이르쿠츠크라는 지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부 그림은 배경이 러시아가 아닌 경우도 있다. 또 유럽 바로크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여인의 누드화도 볼 수 있다. 18세기 러시아 미술은 기법과 장르가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9세기 러시아 미술은 '사람'이 중심

 예카테리나2세 초상
 예카테리나2세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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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미술 역시 초상화, 풍경화, 역사화로 대별된다. 초상화는 그 대상이 왕이나 영웅뿐 아니라 상인, 농부 등 보통사람까지 가능해진다. 요즘말로 하면 무명씨를 그린 그림들이다. '편지를 들고 있는 사람', '파이프를 물고 있는 농부', '군인 초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초상화는 직업의 특성을 살려 진지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얼굴을 통해 내면의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듯하다.

풍경화는 자연풍경 또는 일상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낭만적인 경향의 작품은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를 환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적인 경향의 작품은 대상을 목가적으로 이상화하고 있다. 풍경 속 인물을 강조한 그림도 있다. 이바노프(A. I. Ivanov) 같은 화가는 이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슐츠의 역사화
 슐츠의 역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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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독일 화가 슐츠(Carl Friedrich Schulz)가 그린 역사기록화도 있다. 혁명을 진압하는 러시아 병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시대의 아픔을 그린 그림으로 사실성과 역동성이 뛰어나다. 왼쪽 2/3는 기마부대가, 오른쪽 1/3은 보병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슐츠는 1847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1세의 초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유럽을 휩쓴 혁명 때문에 더 이상 러시아에 머물지 못하고 1848년 독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만난 최고의 화가는 러시아 사실주의 역사화가 수리코프(Vasily Surikov: 1848-1916)다. 그는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서 태어나 그림의 재능을 인정받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1875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877년부터 모스크바에서 생계를 위해 성당벽화를 그리는 한편, 그를 유명하게 만든 역사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수리코프가 그린 군인
 수리코프가 그린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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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이 '스트렐치 연대의 처형', '시베리아의 정복' 등이다. 그는 이들 그림에서 러시아 역사에 등장하는 민중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욕구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곳에 걸려있는 '눈밭에 주저앉은 군인(1898)'은 이들에 비해 소품이지만,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는 군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수리코프는 민중성과 애국심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플레노프의 "에수 앞에 끌려온 여인"
 플레노프의 "에수 앞에 끌려온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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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화 외에 종교화로는 폴레노프(Vasily Polenov: 1844-1927)의 '예수 앞에 끌려온 창녀(1888)'가 인상적이다. 폴레노프는 종교화와 풍경화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화가다. 그는 1880년대 들어 신약성서의 주제를 풍경과 연결시켜 그려나갔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동시대 도덕과 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예수는 도덕적 비유와 설교를 통해 창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준다.

이곳에는 그림 외에 조각, 도자기 등이 있다. 조각은 대리석과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식성을 더한 조각으로는 파베르제(K. G. Faberzhe: 1846-1920)의 달걀이 유명하다. 그는 1885년부터 러시아 황실에 주방용품과 장신구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그 재능이 유럽 전역에 알려져 세계적인 장신구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도자기는 서유럽에서 수입한 것도 있고 러시아 것도 있다.

 포프코프의 그림
 포프코프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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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현대의 시작을 알리는 20세기 작가의 작품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아직 생소하고, 작품경향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보니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포프코프(Popkov)가 그린 피카소풍의 그림이다. 곡선형 계단과 그 주변에 서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들 인물의 표정과 자세에서 고뇌, 불안, 무기력이 느껴진다. 피카소 청색시대의 그림들을 모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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