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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정무비서이던 김지은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당장 온라인상에서 '믿을 수 없다' 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여성단체들은 당장 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시위를 곳곳에서 준비하고 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직후인 14일 오후만 해도 급하게 잡힌 법원 판결 반발 집회에 500명에 달하는 여성이 모였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 재판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주 주말,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 행동' 은 성차별 반대 집회를 예정보다 앞당겨 개최하기로 했다. 경찰의 편파수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해 온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 역시 추가 집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재판 결과에 분노한 여성들이 상당 수 집회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 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대한민국 여성이 얼마나 안전 취약지대에 놓여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고 여성들이 이제껏 받아온 억압과 위협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남 역 10번 출구 앞에는 한동안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하고 사회에 변화를 촉구하는 노란 포스트잇들이 붙어있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부터 2년이 지난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미투 운동' 이 한창이다. 지위를 악용한 성추행(폭행) 은 문단과 언론, 학교와 직장 등 그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곰팡이처럼 사회에 만연히 퍼져있었다. 피해자였던 여성들은 하나 둘 자신이 당해온 폭력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당신과 같은 경험이 있다. 당신의 편에 서겠다.'라는 의미를 담은 'me too, with you' 는 미투운동의 정신이자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강남 역 살인사건으로부터 미투운동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조금 더 단호해졌고 거칠어졌다.

모든 격동의 시기가 그렇듯 분노의 목소리가 거세질 때엔 논란도 존재한다. 극우 성향과 여성 혐오 발언, 범죄 등으로 매번 논란을 빚고 있는 온라인 사이트 '일간 베스트' 를 미러링하며 탄생한 '워마드' 는 천주교 성체 훼손 사건, 대학교 남자화장실 내 몰래카메라 설치 사건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을 유출한 여성에게 내려진 판결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법대로 한 판결' 과 '편파수사' 로 극명히 나뉜다. 당장 이번 주 주말,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에 반발하는 집회에서는 이제까지의 집회보다도 훨씬 많은 인원이 모여 격해진 분노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다.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도덕 혹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발생한다면 누구나 이에 대해 비판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에 앞서 지금의 분노를 만들어 낸 사회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는 넓은 시각은 필요해 보인다. 강남 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은 끊임없이 성 차별 철폐와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를 요구했으나 여성들이 돌려받은 세상은 성 추행 파문으로 얼룩진 2018년이었다. '성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라는 애매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그간 여성들이 수면아래에서 핍박받은 시간이 너무나 길다.

다수가 불편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건 세상이 변화로써 응해야 한다는 징조다. 분노에 찬 여성들이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이 바로 변화를 요하는 시점이다. 단지 일부 여성단체들의 격화된 감정으로만, 사회적 분열 조장으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이번 주 주말 열리게 될 여성단체들의 집회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특별히 언론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모든 배경들이 단지 '성별 갈등 심화' 라는 말로 뭉뚱그려지지 않도록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 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껏 잘못되어가고 있는 세상을 바로 잡은 모든 불편한 목소리들이 그러했듯 성 차별 타파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불편한 목소리' 역시 지금의 과도기를 넘어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있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온갖 분야에서 일어난 추악한 성 추문들에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남 역 살인사건부터 미투운동까지 우리는 이미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본 것이다. 불편함을 단지 불편함으로 치부하지 않는 자세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불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연대할 때 세상은 비로소 선을 지향할 수 있다.


태그:#안희정무죄, #여성, #METOO, #WITHYOU, #여성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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