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뉴스에서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기록적인 폭염 속에 1박 2일로 골프를 가겠다는 나한테 아내가 던진 말이다. 눈치 없이 되물었다.

"무슨 뉴스?"
"미지 가리 없는(조심성이 없고 철이 없는) 아재들이 이 날씨에 골프 하다가 쓰러졌다는 뉴스 말이야."


나라고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지 가리 없는' 친구 녀석들이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시간 넘게 걸리는 먼 골프장을 예약했고 나 하나 때문에 일정이 취소되는 것이 미안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가는 마음이 많았다. 어쨌든 설마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다가 쓰러지겠나 싶어서 아내의 걱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출발했다.

아내의 걱정을 무시하고 출발은 했는데 처음부터 뭔가 꺼림칙한 조짐이 생겨났다. 트렁크가 큰 차를 가진 죄로 친구 녀석 3명을 태워서 가는데 모두 기차 화통을 열 개쯤 삶아 먹은 목청을 자랑한다.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를 3시간 넘게 동안 들었더니 귀가 먹먹하다.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원래 이 녀석들의 목소리가 크기도 하지만 운전을 하는 내가 졸리지 않도록 배려 차원에서 더 크게 말을 했단다.

큰 목소리로 운행 내내 떠드는 것을 '거룩한 소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왔다는 다른 차에 탑승한 친구들을 한심하고 무책임하다며 혀까지 찬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는데, "좀 조용히 해줄래?"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되돌아 갈 일이 걱정이 돼서 한숨이 나왔다.

 폭염에 친구들과 골프 여행.
 폭염에 친구들과 골프 여행.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간신히 도착한 골프장은 "어서 와, 영상 38도 골프는 처음이지"라며 우리를 반겼다. 첫날은 그럭저럭 버텼다. 아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운전을 해야 한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았다. '미지 가리 없는' 친구들이 강권하는 술을 대낮부터 퍼마셔야 했으니까.

저녁으로는 회를 먹는다고 한다. 난생 처음 가리비 회를 먹었다. 생소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모든 일정에서 간신히 풀려나 숙소에서 잠을 청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속이 부대끼고 헛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18홀을 도는 골프장이라서 그런지 아침이 되도록 화장실을 18번은 들락거렸다. 다른 친구 두어 명도 같은 증상인 것을 보니 전날 밤에 먹은 회 때문에 탈이 난 모양이다. 몸이 성한 친구들은 위로와 함께 설사 멈추는 약과 쓰러지지 말라고 소금 약을 두 개 내 손에 쥐여준다. 다음날은 더 더운 날씨였다.

아내의 걱정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투혼은 부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화장실 18홀을 돈 상태로 필드 18홀은 무리였다. 캐디 양반에게 부탁해서(?) 2홀은 돈 것으로 치고 라운드를 간신히 마쳤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 3시간을 운전할 일이 걱정이다.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친구 녀석들이 지역 맛집(짬뽕집)에 가서 점심을 먹자는데 간신히 도착해 보니 식사를 기다리는 줄이 100m 되어 보였다. 그래도 먹고 가잔다. 촌놈들 주제에 맛집은 끔찍이 챙긴다. 어쩌겠는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그 귀한 짬뽕을 먹었다.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안도한 순간 '미지 가리'라고는 씨가 마른 친구들이 이번엔 그 동네에서 유명한 빵집에 가잔다. 집에 있는 식구들을 챙겨야 한단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죽어 나가도 집에 있는 가족들을 챙긴다. 빵집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투지가 남다른 친구 놈들은 결국 빵 덩어리를 나에게 안겨준다. 아무렇게나 차 구석에 던졌다.

돌아가는 길에도 친구들은 나를 위해서 왁자지껄 떠들어 주는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속도 좋지 않은 데 기차 화통 소리를 듣자니 미칠 것 같았다. 참고 또 참았다. 고속도로가 주는 편의시설을 다 누려야 한다는 소신을 자랑하는 친구들은 휴게소에 들러서 구운 오징어를 먹겠단다.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서 구운 오징어는 너희들이나 배 터지도록 실컷 먹으라며 보냈다.

간신히 집이 있는 김천에 도착했는데 친구 한 놈이 지인이 운영하는 휴지 공장엘 들르자고 한다. 라운딩 기념으로 휴지를 나눠주겠단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놈들이다. 휴지와 빵 덩어리를 쥐고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건재함'을 증명한 후 곯아떨어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오래된 새 책>, <독서만담>, <아주 특별한 독서>, < 수집의 즐거움>,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의 저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