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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외곽에 자리한 타이완 고궁박물원은 소장 유물의 수와 규모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1949년 중국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퇴각할 때 사람보다 유물을 먼저 배에 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을 옮겨올 수만 있었다면, 현재 타이완에 전시돼 있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취옥백채(翠玉白菜)'와 '육형석(肉形石)' 등 박물관의 얼굴격인 것들을 제외하곤 수시로 유물을 교체 전시할 정도로 수장고가 넘쳐난다고 한다. 박물관을 매일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한 사람이 타이완 고궁박물원 유물을 모두 만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유물마다 지닌 역사적, 예술적 가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2015년 타이완 중부의 작은 도시 자이(嘉義)에 분원을 열었다. 공식 명칭은 '타이완 고궁박물원 남부 원구(이하 자이 박물관)'다. 높은 석축 기단에 좌우 대칭의 엄격하고 권위적인 타이베이 고궁박물원과는 사뭇 다른,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세련된 디자인의 현대식 건축물이다. 외관만 보면, 박물관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이 망라된 과학관 같다.

박물관을 찾아가기 불편한 곳에 만든 이유

앞의 아치가 입구에 놓인 지메이다리이고, 뒤로 보이는 장방형 건물이 박물관 본관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지메이다리를 건너 본관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소요된다.
▲ 타이완 고궁박물원 남부원구 전경 앞의 아치가 입구에 놓인 지메이다리이고, 뒤로 보이는 장방형 건물이 박물관 본관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지메이다리를 건너 본관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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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산에서 '사치스러운'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종일 유물과 함께 보낼 요량으로 자이 박물관을 찾았다. 개관하자마자 자이를 대표하는 '핫스폿'으로 떠올랐다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 중의 하나다. 더욱이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 될 거라는 기상예보를 접한 터였다. 무더운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라는 게 지론이기도 하다.

명색이 자이를 대표하는 관광지라지만, 정작 자이 시내에서 찾아가기에는 무척 불편하다. 시내에서 자이 박물관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달랑 하나뿐이고, 그나마 배차 간격이 1~2시간에 이른다. 가자면 일단 자이 고속열차(高鐵) 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탄 다음, 그곳에서 내려 다시 자이 박물관 행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편이 낫다.

애초 고속열차 노선을 배려해 입지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타이베이나 가오슝 등 다른 도시에서 자이 박물관을 찾아간다면, 자가용 외에 '무조건' 고속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차(台鐵)든 버스든 굳이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면, 출발지와 상관없이 서너 번 갈아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만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하긴 몇 해 전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에 찾아가는 길 역시 무척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하철을 이용해 가까운 역에 갔다가, 다시 인근 정류장으로 나가 고궁박물원 행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그나마 노선버스가 우리처럼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다. 스쿠터가 대중교통의 상당 부분을 분담하는 타이완에서는 시내를 여행할 때 노선버스를 이용하는 건 무척 불편하다.

다른 곳도 아닌 굴지의 세계적인 박물관이라면, 부러 지하철을 뚫고 없던 버스 노선도 새로 만드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타이완에선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그 정도의 불편쯤은 감수하라는 듯 배짱을 부리는 모양새다. 물론, 당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만난 그 누구도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은 없었다. 유물이 주는 감동이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매개로 한 교육기관일진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하는 것이 취지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열악한 접근성을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이 박물관의 경우만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는 이들은 거의 없고 주차장엔 단체관광객을 태우고 온 전세버스들만 늘어서 있다.

접근성보다 중요한 것

통층으로 뚫려 있는데, 언뜻 공항의 대합실 같기도 하고, 작은 돔구장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표를 끊고, 3층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 본관 중앙 홀의 모습 통층으로 뚫려 있는데, 언뜻 공항의 대합실 같기도 하고, 작은 돔구장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표를 끊고, 3층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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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컨대, 타이완의 경우엔 박물관의 설립 목적에 대한 관점이 다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아 관람하도록 하는 것보다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실제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자이 박물관을 신축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빈번한 지진 등의 대규모 자연재해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더욱이 건물의 규모로만 본다면 수천 명을 동시 수용하는 데도 별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관람객 수를 1회에 150명으로 제한하는 것부터 이를 방증한다. 다양한 언어의 오디오 가이드 등을 활용해 관람의 수준을 높이는 한편, 박물관 관리의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다. 참고로, 평일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은 시간이면 몰라도, 주말이나 휴가철이라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

자이 박물관 전경은 항공사진으로 봐야 제 맛이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박물관 본관은 용의 몸통이고, 입구에 놓인 지극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지메이(至美) 다리'는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용틀임을 하며 비상하기 직전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인데, 본관의 중앙 홀에 서면 용의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대신 동선만큼은 관람하기 편하도록 짜여있다. 2층으로 들어가 표를 끊은 뒤,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며 관람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각 층마다 전시실이 세 곳뿐이어서 그다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또, 전시실마다 입구와 출구가 동일해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벽을 한쪽 방향으로 더듬어가듯 관람을 하면 내실 있게 다 돌아볼 수 있다.

부러 바닥이나 벽에 관람 순서를 표시하는 화살표를 그려놓지 않아도 꼼꼼하게 다 챙겨볼 수 있도록 한 공간 배치가 돋보인다. 전시실마다 출구를 나오면 평상 같은 벤치가 놓여있는데, 잠깐 아픈 다리를 쉬면서 팸플릿을 읽거나 메모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마치 학년을 마치고 책거리 하듯 뿌듯한 느낌이 든다.

아래의 둥글게 패인 부분에 목을 끼우고, 위에 뚤린 구멍 두 개에 끈을 매달아 수염과 물을 받아냈다고 한다. 청자 배게를 사용했던 고려시대 귀족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 면도용 물받이 도자기 아래의 둥글게 패인 부분에 목을 끼우고, 위에 뚤린 구멍 두 개에 끈을 매달아 수염과 물을 받아냈다고 한다. 청자 배게를 사용했던 고려시대 귀족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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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양가 귀족의 휘장을 문양으로 새겨넣은 예물 도자기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 결혼 예물로 사용된 아리타 자기 결혼하는 양가 귀족의 휘장을 문양으로 새겨넣은 예물 도자기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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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직 개관 초기라서 그런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옮겨온 유물들은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일관된 주제가 없을뿐더러 맛보기 식으로 전시된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자이 박물관에서의 하루해가 짧았던 건, 정말 보고 싶었던 유물들을 임대 전시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두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해야 하나.

'아리타(有田) 자기'의 명품들을 일본도, 우리나라도 아닌, 타이완에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부분 일본 오사카에 자리한 동양도자문화관에서 대여해온 것들인데, 17세기 초에서 19세기 초까지의 다양한 작품들이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에도 막부가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 작품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주지하다시피, 아리타 자기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도자문화의 효시다. 바닷길을 통해 수출된 항구의 이름을 따서 흔히 '이마리(伊萬里) 자기'라고도 부른다. 당시 일본의 실력자였던 막부의 쇼군에게 바치는 진상품이었고, 나아가 내로라하는 네덜란드 귀족들의 '신분증' 역할을 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서양 귀족들이 휴대하며 급할(?) 때 사용했다고 하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댄 여러 나라의 관람객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휴대용 요강으로 제작된 아리타 자기 서양 귀족들이 휴대하며 급할(?) 때 사용했다고 하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댄 여러 나라의 관람객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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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주문한 서양인들의 요구에 맞춰 제작한 다양한 용도의 도자기가 단연 압권이다. 휴대용 요강으로 쓰인 것에서, 면도할 때 받침으로 사용된 것, 귀족의 결혼식 때 양가의 휘장을 그려 넣은 예물 도자기도 있다. 심지어 귀족이 가래침을 받아낸 소형 도자기까지 전시돼 있는데,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이 의심될 정도로 재미있다. 동양 도자기를 통해 서양의 문화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조선인 도공으로부터 시작된 아리타 자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도자기로 일본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 도자기로 만든 인형 조선인 도공으로부터 시작된 아리타 자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도자기로 일본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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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나와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 때를 지나쳐버렸다. 개관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왔는데, 유물 만나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지막 전시실은 1층의 식당, 카페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식사나 요기를 할 수 있고, 바로 건너편에 단출한 기념품점이 보인다. 음식이든 기념품이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큰 부담이 없다.

그나저나 이곳저곳 여행하다 느낀 거지만, 타이완처럼 입장료 부담이 적은 나라도 몇 안 될 성싶다. 놀이공원 등 체험 형 관광지가 아니라면, 입장료가 100원(한화로 3800원 정도)을 넘는 곳이 드물다. 아예 별도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 관광지가 대부분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여름철 해수욕장에 들어가는 데도 '자릿세'를 받는 우리의 현실을 그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역시나 박물관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버스 시간표만 덩그러니 서 있다. 단체관광객을 실은 전세버스도 모두 떠나고 건너편 주차장도 텅 비어있다. 여름 땡볕에 다시 노선버스를 기다려 왔던 길을 돌아가려니 조금은 막막하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이 박물관이 준 감동과 재미가 그깟 불편쯤은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태그:#타이완 여행, #고궁박물원 남부원구, #아리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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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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