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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 곡 들어볼까요. 오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과 연관되는 음악이니까 잘 들어보세요."

가이드가 들려주는 CD 음악이 흐릅니다. 귀에 익숙한데, 제목이 얼른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내는 금세 노래 제목을 생각해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네.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을 찾아가니까 들려주는 모양이야!"

버스 안에 퍼지는 클래식 기타 선율이 감미롭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스페인이 낳은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년~1909년)가 작곡한 곡입니다. 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여러 번 반복되는 연주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타레가가 달빛 드리워진 언덕 위의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작곡했다고 해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유명한 곡이죠."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니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커집니다.

아랍과 유럽문화의 공존, 그라나다! 

하룻밤 묵은 발렌시아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약 500km가 넘는 여정으로 다섯 시간 남짓 걸립니다. 낮은 평원에는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수도 없이 많은 산등성이 풍력 발전기가 여행자의 눈길을 끕니다. 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살 아래 가끔 보이는 마을이 정겹습니다.


산니콜라스광장에 바라본 알람브라궁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산니콜라스광장에 바라본 알람브라궁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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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꽃, 그라나다에 도착합니다. 그라나다에는 이슬람 왕조의 아련한 향기가 남아있는 알람브라 궁전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사비카 언덕 알람브라 궁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슬람 세력이 800여 년 동안 안달루시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무어인들의 흔적은 그라나다에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1492년 그라나다를 탈환한 이사벨1세는 이슬람 문화를 지우기 위해 점령하는 곳마다 파괴를 명령하였지만, 알람브라 궁전만은 불을 지르거나 건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사벨 여왕이 아름다운 알람브라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알람브라 궁전, 과연 어떤 모습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까? 그것은 건축공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아름답고 온전하게 이슬람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슬픔을 간직한 아름다움의 극치, 알람브라 궁전   

'정의의 문'을 지나 알카사바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성은 9~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알카사바'란 성을 지키고 방어하는 요새화된 성체를 뜻합니다. 지금은 집터 형태로 남아있는데, 전성기에는 수만 명의 병사가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알카사바의 남아 있는 옛주거지의 모습. 사방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 감시탑 벨라탑이 보입니다.
 알카사바의 남아 있는 옛주거지의 모습. 사방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 감시탑 벨라탑이 보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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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문'을 지나면 광장에 지하 감옥 입구와 우물이 있습니다. 원형의 탑에서는 알람브라 주변 경관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저기 탑이 보이죠? 알카사바에서 가장 높은 벨라탑이에요. 무슨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혹시 감시탑!"
"맞습니다.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최적의 감시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시탑에 종이 달려있나 봐요?"
"이사벨1세가 그라나다를 탈환하고, 승리를 기념한 종이래요."


감시탑에 승리의 종이라니! 권력의 쇠락을 감시탑에서 속절없이 지켜보았을 이슬람 병사들의 심정은 어찌했을까? 승자는 기쁨의 종을 매달고, 패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무상함을 벨라탑에서 봅니다.

이후 벨라탑에서 종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492년 1월 2일은 이사벨 1세가 그라나다를 정복해 이베리아 반도를 통합하는 날인데, 매년 1월 2일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종을 치면, 그 해 안으로 결혼하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못한 많은 처녀들은 이날 종치기를 기다린다고 하니 참 재미있습니다.


알카사바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아름다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알카사바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아름다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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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에서 바라보는 그라나다의 전망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중세 무어인들의 정착지였던 언덕에 빼곡히 들어찬 이슬람 후예들의 하얀 집들이 인상적입니다.

"야간투어 때 저곳에서 이곳 알람브라 궁전을 보면 색다를 겁니다."

우리의 발길은 벨라탑을 뒤로 르네상스풍의 카롤로스 5세 궁전으로 향합니다. 건물 외벽이 커다란 벽돌을 툭툭 박아놓은 것 같습니다. 거칠고 투박합니다.

1526년 카를로스 5세는 이곳에 알람브라보다 더 멋진 스페인 제국의 상징이 될 궁전을 지으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전쟁의 승리와 기독교 통합을 기리는 르네상스식 건물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슬람 집단의 세금으로 충당하여 짓기 시작했으나, 여러 이유로 공사는 미완성이 되었고, 그 후 아무도 살지 않은 궁전으로 남았습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알람브라에서 가장 규모가 큽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사각형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줄지어 늘어선 기둥들로 원형 안뜰구조입니다.

"자, 여기 중앙에서 소리를 질러보세요!"


카를로스5세궁전.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힙니다.
 카를로스5세궁전.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힙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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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5세궁전의 내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들은 콜로네이드 양식을 보여줍니다.
 카를로스5세궁전의 내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들은 콜로네이드 양식을 보여줍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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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5세궁전은 음향효과가 뛰어나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면 섬세한 소리의 파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카를로스5세궁전은 음향효과가 뛰어나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면 섬세한 소리의 파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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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요청에 아내가 소리를 질러봅니다. 신기하게도 건물을 휘돌아 섬세한 파동이 퍼져나갑니다. 이런 음향효과 때문에 이곳에서 음악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의 한가운데 위치합니다. 1층은 간결하면서 우람한 남성적이고, 2층은 부드러우면서 섬세한 여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제 우리는 나스르 궁전을 지나갑니다. 나스르 궁전은 무함마드 1세에서 나스르 왕조 지배자들의 집무실이고, 왕실 가족의 공간이었던 곳입니다. 이슬람 왕국의 권위와 재정을 뽐냈던 알람브라 핵심 공간입니다.

왕의 집무실인 메수아르의 방,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궁, 그리고 왕의 정치 집무실이자 사적인 주거공간인 사자의 궁이 있습니다. 궁의 보존상태가 좋고, 화려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나스궁. 이슬람건축의 특징이 집약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나스궁. 이슬람건축의 특징이 집약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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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르 궁전은 매우 정교하면서 화려하게 조각된 건축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랍인들로부터 궁전을 되찾은 뒤 유럽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은 미개하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훌륭한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궁전이라는 평가를 합니다.

궁전 앞 벤치에서 스케치하는 화가가 눈에 띕니다.

나자렛궁 앞에서 스케치하는 화가. 그림솜씨가 대단하였습니다. 화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우리는 한참 구경하였습니다.
 나자렛궁 앞에서 스케치하는 화가. 그림솜씨가 대단하였습니다. 화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우리는 한참 구경하였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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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Hola)!"라고 인사를 하자, 화가도 웃음 띤 얼굴로 "올라!"합니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입니다. 아내가 손짓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자 기꺼이 'OK!' 사인을 보냅니다.

화가가 스케치한 그림이 궁전만큼이나 아름답고 섬세합니다. 작품을 우리 부부에게 주고 싶다는데, 다 그려지기는 걸 기다리지 못해 아쉬었습니다. 좋은 인연 하나를 남겼습니다.

여름이라서 더 예쁘고 아름다운 알람브라

헤네랄리프 새정원.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헤네랄리프 새정원.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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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에서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정원, 헤네랄리페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헤네랄리페는 아랍어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뜻을 가진 왕의 여름별장입니다. 13세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천상의 정원을 옮겨놓은 듯, 그 아름다움이 환상적입니다. 정밀하게 잘 다듬어진 수목들의 정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싶습니다. 수로 양쪽 색색의 꽃들이 조화롭습니다. 수로와 분수, 각종 꽃과 정원수가 어우러진 모습은 이슬람조경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헤네랄리페의 심장, 아세키아 중정입니다. 분수에서 쏟아지는 영롱한 물줄기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헤네랄리페의 심장, 아세키아 중정입니다. 분수에서 쏟아지는 영롱한 물줄기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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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의 정원. 수로와 분수, 정원수가 어우러진 이슬람조경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헤네랄리페의 정원. 수로와 분수, 정원수가 어우러진 이슬람조경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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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따라 흐르는 물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시원스레 떨어지는 물소리는 교향악처럼 들립니다. 따가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충분합니다.

헤네랄리페의 심장, 아세키아 중정은 사진 찍기에 참 좋은 공간입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한 아내를 모델로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아내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반한 모양입니다.

"우리 스페인 유월에 오길 잘 했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장미꽃이 만발하고, 형형색색의 꽃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알람브라 궁전은 그야말로 푸른 녹색과 물소리, 예쁘게 피어난 꽃의 잔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여름이라서 더 예쁘고 화려합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그라나다 야간투어에 나섰습니다. 알바이신은 이슬람 왕조가 축출된 후 생겨난 무어인들의 주거지입니다. 그라나다에서 유독 이슬람 색채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언덕 위의 동산 산니콜라스광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광장에는 알람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크게 붑니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 궁전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펼쳐집니다. '붉은 성'이라는 뜻을 지닌 알람브라는 야간 불빛에 비추어져 성벽은 더욱 붉게 보입니다.


알람브라의 궁전이 보이는 곳에서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의 기타연주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알람브라의 궁전이 보이는 곳에서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의 기타연주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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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어떤 신사가 기타연주를 합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선율이 그라나다의 밤을 더 황홀하게 합니다. 잔잔한 리듬의 연주에서 옛 이슬람 왕조의 아련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태그:#알람브라궁전, #카를로스5세궁전, #나스르궁전, #헤네랄리페, #알카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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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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