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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서훈 취소와 구상권 청구를 통한 국가배상금 환수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서훈 취소와 구상권 청구를 통한 국가배상금 환수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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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명단입니다."

그가 노트북에 있던 문서 파일을 열었다. 뒷말이 따랐다. "추악한 훈장"이라고 했다. 간첩 조작사건으로 훈·포장을 받은 거로 추정되는 이들의 명단이었다. 여기엔 구타와 고문으로 가짜 간첩을 만들어낸 수사관들의 실명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만든 건지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 판결한 사건을 정리해 그 당시 수사관들을 추적했다. 여기에 역대 훈·포장 수상자 리스트 확보해 소속과 이름, 생년월일, 공적 사유 등을 일일이 대조해 만든 거다."

이 명단에 A(65)씨가 있었다. 간첩 조작 사건으로 두 개의 훈장을 받고 취소는 한 개만 된 거로 확인된 당시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수사관이다. 명단의 신빙성을 따지기 위해 A씨를 취재했다. 그 결과, '간첩 조작해 받은 두 개의 훈장, 취소는 한 개만'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추악한 훈장'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를 만났다. 변상철 '지금 여기에' 사무국장이다. 한때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일했다. 여기서 군사독재 정권 시절 일어난 간첩 조작 사건을 맡아 진실을 규명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를 세 차례 만났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53명의 서훈 취소자를 발표한 뒤였다. 그때마다 그는 부실한 서훈 과정에 목소리 톤을 높였다. 훈장을 반납해야 할 고문 수사관이 여전히 훈장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목에 힘만 준 건 아니다. 노트북에 저장된 자료를 이것저것 모니터에 띄웠다. 그리곤 "정부가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추악한 훈장을 골라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피해자와 가족은 조작된 사건으로 고통당하고 인생이 망가졌다"

1985년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사건'의 서창덕씨(오른쪽)는 고문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됐다. 그리고 지난 5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85년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사건'의 서창덕씨(오른쪽)는 고문후유증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됐다. 그리고 지난 5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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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추악한 훈장"을 가려낼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노트북에 명단을 띄웠다. 현재까지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가 파악한 '반드시 서훈이 취소돼야 하는 대상자'였다. 모두 76명이다. 이중 지난 10일 행안부가 발표한 서훈 취소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23명뿐이었다. 어디서 차이가 난 걸까? 변상철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10일) 서훈 취소 명단이 발표된 후 행안부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지금 여기에)가 파악한 명단과 차이가 너무 커, 어떻게 (서훈 취소 명단을) 뽑았는지 물었다. 기가 차는 대답을 들었다. 공적 사유에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했다고 했다. '검색어'에 걸려는 사람만 서훈을 취소했다는 거다. 치밀하게 따져봐야 하는 일을 '단순 검색'으로 확인했다는 거다. 정부 내부에 추악한 훈장을 골라낼 시스템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였다."

이걸, 증명하려 그가 지목한 게 '박동운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이다. 이른바 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불리는 1980년대 일어난 주요 간첩 조작 사건이다. 박동운(73)씨는 지난 2009년 1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건 발생 28년 만이었다. 변상철 사무국장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훈·포장을 받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수사관은 모두 6명이다. 죄다 이번 행안부가 발표한 서훈 취소 명단엔 이름이 없다. 그가 입을 열었다.

"(모니터에 뜬 명단을 가리키며) 여기 공적 사유를 봐라. '간첩검거유공'이라고 쓰여 있다. '간첩을 검거하여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했다는 표현도 있다. 이 사람은 또 다르다. '간첩검거와 특수정보업무수행으로 국가안보에 기여'라고 적혀 있다. 이래서 '단순 검색'에 걸리지 않은 거다.

반대로 여길 봐라. 이번에 서훈이 취소된 정삼근 간첩조작 의혹 사건이다. 수사관들의 공적 사유에 이렇게 쓰여 있다. '고정간첩 색출을 위한 납북귀환어부 중심 근원 발굴 시찰활동을 추진하여 간첩 정삼근 검거', '납북귀환어부를 대상으로 대공근원발굴 시찰활동 중 체북시 지령사항을 은폐하고 군사기밀탐지 등 간첩행위를 자행한 정삼근 첩보'라고.

그렇다. 공적 사유에 사건과 연관된 검색어가 없으면 골라내지 못하는 거다.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으로 추악한 훈장을 받은 이들은 '간첩검거유공'이라고 적혀 있어 이번 발표에서 빠진 거다. 반면, 정삼근 간첩조작 사건의 훈포장 대상은 공적 사유에 '정삼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이번에 서훈 취소가 된 거다. 법무부나 검찰에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고 대상자를 직접 교차 확인하는 적은 노력이라도 기울였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가 자세를 고쳐 앉고 탁자를 두드렸다. "탁상행정"이라며 말을 이었다.

"행정이 끌어안고 책상에서 검색어만 두드릴 일이 아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조작된 사건으로 수십 년간 고통을 당하고 인생이 망가졌다. 정부가 추악한 훈장을 골라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당장 그게 어렵다면,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서훈 취소자를 골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건 또 다른 국가폭력이다."

"추악한 훈·포장을 국가가 모두 취소할 때까지 끝까지 추적"

변상철 '지금 여기에' 사무국장은 오늘도 '간접 조작 사건'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변상철 '지금 여기에' 사무국장은 오늘도 '간접 조작 사건'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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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니다. 변상철 사무국장은 공적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지적했다. 행안부의 서훈 취소자의 경우 변 국장이 자체 조사한 76명보다 적다. 그는 "각 부처가 입맛대로 명단을 작성했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이다.

"오주석 간첩 조작 사건을 보자. 이번에 행안부가 당시 안기부 소속 수사관 3명을 서훈 취소했다. 근데 여기 자체 입수한 이들의 공적 사유를 봐라. '간첩 김성규 일당 검거 유공'이라고 쓰여 있다.

반대 경우도 있다. 재일동포 유지길 인권 침해 사건이다. 당시 보안사 윤모 수사관의 공적은 '재일거류민단에 위장침투간첩 유지길의 첩보입수 및 내사활동으로 범증 포착후 검거'라고 적혀 있다. 1986년 6월, 보국훈장광복장을 수상했다.

이거 봐라. 오주석 간첩 조작사건은 공적 사유에 사건 관련 검색어가 없는데 취소됐다. 재일동포 유지길 인권 침해 사건은 공적 사유에 '유지길'이란 단어가 있는데도 서훈 취소 명단에서 빠졌다. 입맛대로 명단을 작성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양승태 전 대원장의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과정이다. 지난해 12월,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한창일 때 훈장을 받았다. 공적 사유는 '대법원장을 지내며 공직에 헌신했다'란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없다.

이유가 있다. 각 부처가 공적심사위원회를 열고 자체 심사를 통해 서훈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를 공개할 규정도 없고 개인정보를 들어 회의록을 공개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현재 국회에서 훈·포장 수여 시 심사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상훈법 개정을 여러 개 발의했으나 아직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변상철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대로라면, 제2의 양승태도 훈장을 받게 된다. 가짜 간첩을 만들어낸 고문 수사관도 국민 세금으로 연금을 주고 자녀가 취업하게 되면 가산점도 부여되는 등 훈포장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된다. 불합리한 공적심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국가보훈처가 서훈 대상자들의 서훈 사유를 공개해야 한다. 각 부처의 공적심사위원회의 회의록도 공개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난 27일 변상철 사무국장을 세 번째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날 자체 조사하고 있는 '또 다른 명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 난 간첩조작 사건이 상당하다. 여기에 포함된 훈·포장 수상자까지 합하면 서훈 취소자가 어마어마해질 거다. 고문 수사관들이 수상한, 추악한 훈·포장을 국가가 모두 취소할 때까지 끝까지 추적할 거다. 이게 정의다."


태그:#서훈 취소 명단, #서창덕 간첩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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