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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일본에서 'LGBT 지자체의원연맹'이 출범했다. 해당 연맹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인권옹호 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회원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지방의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졌다. 발족식에서는 도쿄 분쿄구에서 5선을 한 마에다 쿠니히로 의원이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원들이 모인 성소수자 단체가 발족하는 자리라고 해도, 마에다 의원에게 커밍아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소수자 당사자임을 숨기면서 그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던 마에다가 동성애 관련 항의 서한까지 받아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여러모로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2017년 일본에서 이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미카와 아야 세타가야구 의원은 변화의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다.

<허핑턴포스트>와 인터뷰한 가미카와 아야 의원.
 <허핑턴포스트>와 인터뷰한 가미카와 아야 의원.
ⓒ 허핑턴포스트 인터뷰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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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례에서 보는 '소수자에 응답하는 정치'

가미카와 아야 의원은 1968년 일본에서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그렇듯 가미카와 역시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몸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성전환을 금기시하고 트랜스젠더를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시절인 1995년, 싱가포르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고 1998년부터 일본에서 여성의 삶을 시작한다.

주민등록상에는 여전히 남성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이사를 하는 것조차 애를 먹었다. 일상에서의 차별은 행정 절차로도 이어졌다. 후생성에 찾아가서 건강보험증의 성별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세타가야구의 사회보험 사무소를 찾아가 성별 정정을 요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렇게 2003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성소수자를 가시화하기 위해 출마 선언을 했고, 4월 최초의 트랜스젠더 지방의원으로 당선된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을 바꾸기 위한 성별취급 관련 특례법이 보수적인 자민당 주도로 통과된다. 물론 그냥 이뤄진 일은 아니다. 가미카야 의원이 자민당 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민주당(현재의 민진당) 의원들도 반대했기 때문에 가미카야는 이들까지 설득하러 다녀야 했다.

물론 이런 정치적 성과는 오롯이 가미카와의 설득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일본에선 1980년대에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커밍아웃을 담은 책이 출판되는가 하면, 1990년대 후반부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사람들의 차별적인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진 못했지만, 30여 년간의 '가시화' 시도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사회운동이 소수자를 가시화하고 정치권이 이에 응답할 때, 소수자에 대한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가미카와 의원뿐만 아니라 일본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당사자들과 앨라이(ally, 지지자, 협력자) 그리고 소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당파적으로 나선 정치인 등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그나마 변화를 시작할 수 있던 것이다. LGBT 의원연맹의 발족도 이런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고,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고,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 금태섭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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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말고 '지금'을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볼까. 한국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발하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도 많고, 지역 곳곳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성대히 열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 14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9번째를 맞았다.

이번 축제에선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여해 인증샷을 남긴 것이 화제가 됐다. 금 의원은 14일 본인의 SNS에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민주당은 부스라도 설치하라"는 소감을 남겼다. '연대해주셔서 감사하다, 차별과 배제와 혐오를 넘어 인권이 흘러 넘치는 사회를 위해 앞장 서달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이어졌지만, '1000만 기독교 표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거나 '동성애가 뭐가 자랑이냐'는 부정적인 댓글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저 1년 중 하루 동안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지난 대선 토론 때 문재인 당시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저는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우리 사회 전체의 인권수준이 필요한 것이고, 설령 자신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해명했으나, 많은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선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소수자 의제가 여태껏 '나중'으로 밀려나지 않았나. 지금 '당신들의 존재를 응원하고 같이 싸워주겠다'고 말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나중에 지지와 연대를 표현해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의원 개인이 '누군가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정치가 응답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론으로 채택되거나 정치적 논의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나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지 못했다.

지난 2016년 한국을 방문한 가미카와 의원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본디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제 일본의 사례에서 집권여당 민주당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싶다면, 합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합의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 한국에서도 그런 정치를 보고 싶다.


태그:#가미카와 아야 , #성소수자, #나중말고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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